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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깨 Sep 11. 2023

‘학폭’ 시대 이전에 ‘학교의 폭력’ 시대가 있었다


 분명 학교가 매우 폭력적인 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던 시기가 있었다. 민감하고 약한 미성년기 대부분을 그 시기에 학교에서 보낸 사람이라면 학교에 대해 억압적인 기억 몇 가지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까지 올라갈 필요도 없다. 내가 마지막으로 교생 실습을 나갔던 해에도 교대에서 배운 ‘만들어가야 할 학교의 모습’과 내가 ‘목격한 학교의 모습’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었다.


 2009년, 나는 교육대학 4학년 재학 중이었고 임용 시험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교생 실습을 나갔다. 학교는 경기도 서부 한 도시의 시장 골목 끝에 위치해 있었다. 나와 실습 동기 한 명은 5학년의 어느 반으로 배정되었다. 그 반의 담임이자 우리의 지도 교사가 될 C선생님은 학교에서 몇 안 되는 남자 교사 중 한 분이셨다. 잘 모르는 우리가 봐도 선생님에게는 일이 너무 많아 보였다. 가끔 퇴근 후 삼겹살 집에 데리고 가주실 때 이외에는 학교에서 대화를 나눌 시간이 거의 없었다.


 교생으로 출근한 지 며칠 만에 나는 이 반에 독특한 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학, 국어, 사회와 같은 수업 시간이 되면 선생님은 아이 한 명을 앞으로 불러낸다. 그 아이는 그 시간의 수업을 진행할 ‘어린이 교사’이다. 배울 내용을 미리 숙지하고 온 아이는 칠판과 멀티미디어 기기를 활용해 가며 친구들을 가르친다. 이러한 시스템이 학기 초부터 정착해 있었는지 가르치는 아이들도, 가르침을 받는 아이들도 매우 자연스러워 보였다. 아이가 하는 수업이라고 하기에는 구조화된 수업이 매우 정교했고, 질문도 능숙하게 받았다. 교생인 우리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어쩌면 우리보다 누적 수업 시수가 더 많을지도 몰랐다.


 ‘또래 교수(peer tutoring)’라는 티칭 스킬이 있기는 하다. 월등히 많은 지식을 가진 성인이 아닌 수준 차이가 크지 않은 어린이들끼리 서로를 가르칠 때 발생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노린 교수법이다. 적절히 사용하면 교사 중심 수업을 벗어나 학생들 사이의 상호작용과 상호 배움을 촉진시킬 수 있다. 하지만 까다로운 사전 계획과 조건이 전제되어야만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도 하다. 교사는 각 학습 주제마다 다른 아이들 사이의 수준과 관심도를 미리 파악해야 한다. 그들 사이의 상호 작용이 그저 맴도는 대화에 머물지 않도록 지적 자료도 제공해야 한다. 또래 교수가 진행되는 동안 교사는 관찰자와 촉진자로서의 역할을 놓지 않아야 한다. 목표한 수준의 성취가 일어났는지 확인하고 모자란 부분에 대해서는 피드백도 반드시 필요하다. 소수의 학생만이 가르침을 주도해서는 안 된다는 요건도 잘 지켜져야 한다.


 학생 한 명이 앞에 나와 거의 한 시간에 가까운 수업을 교사 대신 하고 있는 것을 또래 교수로 보기는 어려웠다. 수업을 주도하는 학생은 몇 명으로 국한되어 있었다. 게다가 그 시간에 담임 선생님은 수업이 아닌 다른 일을 하고 계셨다. 아마 행정 업무였을 것이다. 나는 보지도 듣지도 못한 이 낯선 광경 앞에서 석연치 않은 기분을 느끼며 교실 뒷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담임교사의 직무유기 현장이었다. 동시에 거대한 권력으로 내리눌러야만 작동되는 비정상적으로 질서 정연한 교실의 모습이었다.


 교실에는 1미터 남짓의 각목이 눈에 띄는 곳에 놓여 있었다. 손잡이의 역할을 할 한쪽 끝부분이 검은색 절연 테이프로 칭칭 감겨 있었다. 한쪽에 손잡이가 달린 길고 파괴적인 물건의 용도야 뻔했다. 대학에 다니던 4년 동안 잠시 내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었다. 지각, 낮은 시험 점수, 예의 없음, 폭력 등이 모두 그 길쭉한 목재 물건으로 다스려지곤 했다. ‘누구도 때려서는 안 된다’고 하는 사람과 ‘맞을 만하면 맞아야 한다’고 하는 사람이 공존했다. 그 말이 한 사람 입에서 튀어나오기도 하는 이상한 시기였다.


 C 선생님은 ‘학생 주임’(초등학교에는 학생 주임 보직이 없다)으로서 전교 학생들의 기강을 잡는 일도 맡아하고 계셨다. 그 각목을 C선생님이 어떻게 사용하는지 직접 목격한 적은 없다. 어느 날 아이들 사이에서 패싸움이 일어났고 연루된 아이들이 C선생님께 소집되었다는 이야기가 들렸을 뿐이다. 학교 폭력에 준하는 사건들이 교사의 재량에 따라 해결되던 때였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이상한 시기가 드디어 끝나가고 있는 때이기도 했다.


 교생 실습을 마치고 나는 임용 시험을 준비하지 않았다. 공부를 더 하고 싶었고, 진로를 바꾸고 싶었다. 동기들이 임용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편입 시험을 준비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길이 아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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