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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깨 Sep 12. 2023

아이들은 상담실에 가는 친구를 낙인찍지 않는다


  분명 학교가 매우 폭력적인 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던 시기가 있었다. 체벌을 동반한 교사의 권위로 학생들을 내리누르던 시기가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2009년 내가 마지막으로 교생 실습을 나갔던 때만 해도 교실에 체벌용 각목이 있었다. 뉴 밀레니얼 시대에도 학교는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3년 간의 외유 끝에 다시 교직에 발을 들였을 때 학교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2010년에는 경기도에서, 2012년에는 서울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학교 분위기는 아주 빠르게 변했다. 내가 첫 발령을 받은 2013년에는 이미 체벌이 사라져 있었다. 최소한 물리적 체벌은 잔존하지 않았다.

 

 교사들의 의식도 이 시기를 거치며 많이 성장했다. 체벌을 사용하던 교사는 완전히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고 체벌하지 않던 교사도 아이들을 더욱 인격적인 방식으로 대해야 했다. 다소간의 진통이 있었다. 수업을 방해한 학생을 교실 뒤에 서있게 하는 것도 어려웠으므로 아예 교실을 운영하는 패러다임을 바꿔야 했다. 벌보다는 긍정적 강화가 시도되었다. 권위, 엄격함, 강한 규칙 등의 가치보다 다정함, 즐거움, 소통 등의 가치가 권장되었다.


 사실 이미 많은 교사들이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를 자체적으로 추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도에 부스터를 달아준 것이 학생인권조례였다. 여전히 동의되지 않는 승진 시스템이 불러오는 부조리는 잔존했지만 적어도 교사-학생 관계는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개선되었다. 놀이, 체험, 프로젝트 수업 등 학생들이 학교에 더욱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시도되었다.


 학교는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잘 변하지 않는 주체도 있었다. 바로 학부모들이었다. 주로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학창 시절을 보낸 부모들은 자신이 경험한 방식대로 여전히 학교가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체벌이 없어졌다는 가시적인 성과 이외에는 달라진 것이 없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세 번째로 담임을 맡게 되었을 때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아이들끼리 다툼이 생겼다. 아이들 몇몇의 말다툼 끝에 물리적 폭력이 있었다. 맞은 아이의 몸에는 빨갛게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때린 아이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관련된 아이들끼리 진심 어린 사과를 나누고 다시는 싸우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폭력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으므로 때린 아이는 방과 후에 남아 나와 단 둘이 상담을 했다. 맞은 아이 부모님에게 상황을 설명해 양해를 구해야 했고, 때린 아이 부모님에게도 같은 과정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갈등이 생겼다. 때린 아이의 부모님이 왜 ‘우리 아이만’ ‘상담’을 했느냐고 따져 물었다. 물리적인 폭력은 사과만으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고 전에도 손이 먼저 나가는 위급 상황이 몇 번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부모님은 불만 섞인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내 입장에서는 매우 온건한 방식의 후속 처치였다고 생각했는데 부모님이 이렇게 분노하는 것이 이해가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문제는 ‘상담’에 대한 아주 큰 인식 차이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내가 아이와 방과 후 빈 교실에서 20분 정도 나눈 이야기는 개인적인 대화에 가까운 것이었다. 부모님과의 관계는 어떤지, 방과 후에 무엇을 주로 하는지, 학교에서는 누구와 친한지, 교실에서 어떤 점 때문에 힘든지 등을 물었다. 아이는 허심탄회하게 속을 털어놓고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며 하교했다. 그 상담을 통해 나는 아이가 개인적으로 겪고 있는 어려움과 그 어려움이 교실에서 어떤 때에 표출되는지 파악했다. 그 시간은 아이를 야단치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아이가 교실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시간이었다.


 나중에 아이를 통해 들어보니 자신이 문제를 일으켰고, 선생님께 따로 불려 가 야단까지 맞았다고 부모님께 많이 혼이 났다고 했다. 내가 아이와 상담을 했다고 말했을 때 부모님이 떠올렸을 분위기가 그제야 연상되었다. 나도 비슷한 세대로서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경험했으므로 그 간극이 이해되었다. 부모님이 떠올린 상담이라는 것은 교무실에 불려 가 손바닥을 맞기 전에 가지는 형식적인 문답, 자기 잘못을 인정하길 강요받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사실상 ‘신체 접촉만 없는 체벌’인 것이다.


 그 후 몇 주가 지났지만 아이의 문제가 도통 해결되지 않아 부모님께 학교 상담실에서 아이를 도울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드렸다. 부모님은 완강히 거절하셨다. 학교에서 상담실에 간다는 건 문제아로 낙인찍히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계셨다.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이었다.


 이미 학교의 상담실은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문을 두드리고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공간이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힘든 일이 생기면 내게 말을 하기도 했지만 더욱 개인적이고 전문적인 도움을 받고 싶을 때는 상담 선생님을 찾아가 상담을 요청하곤 했다. 상담 선생님은 어려움이 있는 교실을 방문해 참관한 후 컨설팅을 해주기도 하셨고,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한 수업을 직접 진행하기도 하셨다. 필요한 경우 가족 상담도 가능했다. 상담실을 이용하면 담임교사와도 연계가 쉬우니 교실에서도 아이를 돕기 용이했다.


 여러모로 학교 상담실은 이 아이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설명해도 부모님은 학교 상담실은 절대 안 된다고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아이는 외부 상담센터에서 유료로 상담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상담을 받으면 문제아로 낙인찍힌다는 인식은 이제 좀 사라졌으려나 모르겠다. 아이들은 상담실에 가는 친구를 낙인찍지 않는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교실 생활을 두렵게 만드는 친구라면 몰라도 말이다.


이전 02화 ‘학폭’ 시대 이전에 ‘학교의 폭력’ 시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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