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아이들과 지낸 지도 벌써 반년이 지나 있었다. 첫 학기를 보내며 나는 1학년의 생태에 대해 알게 되었고 여름 방학이 지나자 아이들은 부쩍 자라서 교실로 돌아왔다. 여름 방학 기간 동안 화장실 공사를 마쳐 아이들이 더 이상 쪼그려 앉아 용변을 보지 않아도 되었다. 1학년 교실이 있던 별관 건물의 변기는 바닥에 붙어 있는 형태의 화변기였다. 7년 인생에서 이런 변기는 본 적도, 써본 적도 없던 아이들은 변기 앞에서 어쩔 줄 몰라했다. 남자 화장실에는 입식 소변기가 있었으므로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여자 아이들은 변기에 빠질 것 같다며 화장실에 가는 것을 무서워했다.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쉬는 시간에 한 아이가 내게 다급히 달려왔다. 친구가 화장실에서 울고 있다는 것이다. 달려가 보니 급하게 큰 용변을 본 아이가 어쩔 줄 몰라하며 울고 있었다. 뒤처리를 해주고 물을 내린 후 아이를 교실로 보냈다. 금방 울음을 그친 아이는 콩콩 뛰며 교실로 뛰어들어갔다. 그날 오후 아이 어머니에게 감사하고 죄송하다는 전화가 왔다. 입학 전부터 용변 뒤처리 연습을 시켰는데 아직 혼자서는 잘하지 못한다고, 집에서 더 잘 훈련시키겠다며 여러 번 감사를 표하셨다. 나는 방금까지도 울던 아이가 어떻게 그렇게 금세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지 너무 귀엽더라고, 괜찮으니 마음 쓰지 마시라고 말씀드렸다.
아이들도 부쩍 자라 있었고 변기까지 양변기로 교체되었으니 2학기는 즐겁게 지내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학교 내부적으로는 그동안 직권남용과 각종 비리의 피의자였던 교장이 직위해제 끝에 전근 처리되었고 새로운 교장선생님이 부임하셨다. 새 교장 선생님은 아버지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 시골길을 통근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시간이 이렇게 많이 흘러 교장이 되었다는 말씀으로 취임사를 시작하셨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치마를 입고 아버지가 모는 자전거 뒷자리에 비스듬히 앉아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시골 선생님이 머리에 그려졌다. 여러모로 산뜻한 2학기의 출발이었다.
1학년 아이들은 방과 후 수업을 애용했다. 수업이 2시 전에 끝났기 때문에 방과 후 수업은 매우 매력적인 선택지다. 가격이 저렴하고, 프로그램이 다양하고,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동의 위험성도 전혀 없다. 인기 있는 프로그램의 경우 대학 강의 수강신청급으로 신청이 어렵기도 했다. 아이들이 듣고 싶어 하는 프로그램과 부모님이 원하는 프로그램이 다르기도 했다. 혹시라도 내 안내가 늦거나 착오가 있어 우리 반 아이들에게 방과 후 수업 신청에 불이익이 있으면 안 되었기에 학기 초에는 바짝 긴장하고 있어야 하기도 했다.
새로운 방과 후 수업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의 퇴근길이었다. 지하철 문가에 기대서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학교 번호로 전화가 왔다. 교감선생님이었다. 방금 우리 반 학부모에게 연락을 받았는데 아이가 방과 후 프로그램 선생님에게 뺨을 맞았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듣고 거의 자리에서 주저앉을 뻔했다. 정말 큰일이었다. 교감선생님은 내일 출근해서 바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퍼뜩 아이가 지나치듯 한 말이 떠올랐다. 아이는 방과 후 수업에 너무 가기 싫다고 푸념을 했었다. 내 대처가 어땠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 대충 달래 보냈을 것이다. 그게 아이의 시그널이었나, 하는 생각에 저녁 내내 동동거리다 밤잠을 설쳤다.
뭐든 똑 부러지는 아이였다. 수업 시간에는 언제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고 숙제도 열심히 해오고 학급 규칙도 잘 따르려 노력했다. 내가 하는 일에도 관심이 많아서 쉬는 시간이면 내가 무엇을 하는지 자주 관찰했다. 수업 시간에 떠드는 아이가 있으면 나보다 먼저 ‘조용히 하자’는 말을 외쳤다. 글씨도 성격처럼 야무졌다. 2학년이 된다면 분명 반장 선거에 나갈만한 아이였다. 아침에 아이가 등교하자마자 아이에게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해주겠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방과 후 선생님이 자신을 앞으로 불러내 뺨을 때렸다고 했다. 너무 아파 울음을 터뜨렸다고 했다. 같이 수업을 듣는 옆 반 아이가 그 장면을 다 보았다고 했다.
아이와 대화를 하고 있는 사이 교무실에서는 방과 후 선생님에게 연락을 취했다. 선생님은 펄쩍 뛰며 그런 일은 없다고, 자기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억울해하셨다고 했다. 그 장면을 목격했다는 옆 반 아이가 등교하기를 기다렸다. 우리 반 아이에게 잠시 교실에 있으라고 하고 옆 반 아이에게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자기는 그런 걸 본 적이 없다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고 친한 친구의 일이기도 하니 잘 기억해 보라고 다시 물었다. 아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제 방과 후 시간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했다. 우리 반 아이를 불러 셋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옆 반 친구가 물었다. ”너가 맞았어? 나는 못 봤는데.” 우리 반 아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옆 반 아이를 돌려보내고 우리 반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아이는 방과 후 프로그램에 가기 싫었다고 했다. 엄마에게 가기 싫다고 말하면 엄마가 들어주지 않을 것 같아서 거짓말을 했다고 했다. 순간 엄청난 안도감이 몰려왔다. 아이가 맞은 게 아니었다. 아이에게는 아무 일도 없는 것이었다. 너무 다행이었다. 방과 후 선생님에게는 많이 죄송했지만 잘 설명드리면 괜찮을 것 같았다. 아이에게는 선생님이 너무 놀랐다고, 앞으로는 이런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 일렀다. 더 확실하게 일렀어야 했지만 안도가 너무 커서 기쁜 나머지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아이의 집에도 알려야 했다. 곧 1교시 수업이 시작할 시간이었으므로 어머니에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고, 아이가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날은 교사 독서토론 모임이 있는 날이라 칼퇴근이 예정되어 있었다. 교실 청소를 마무리하고 교실 문을 잠그고 나와 같이 모임을 하는 동학년 선생님을 만났다. 이번에 우리 학년으로 발령받은 신규 선생님이었는데 나와 나이도 같고 마음도 잘 맞아 친하게 지냈다. 함께 주차장을 지나쳐 학교 밖으로 걸어 나가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오전에 통화했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목소리가 매우 격앙되어 있었다. “선생님 그런데 아까 우리 아이가 거짓말을 했다고 하셨어요? 우리 아이를 거짓말쟁이로 생각하고 계시는 거예요? 제가 지금 갈 테니까 교실에서 봬요.” 같이 있던 선생님을 먼저 보내고 나는 교실로 돌아왔다. 어머니와 마주 앉기 좋게 책걸상 몇 개를 옮겨 자리를 마련했다.
5분도 되지 않아 어머니가 교실에 도착하셨다. 급한 숨을 고르지도 않고 바로 화부터 내셨다. 내가 아이를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있다고 했다. 우리 아이는 그럴 리가 없다고, 얼마나 착한 아이인데 그렇게 말하느냐고 했다. 별다른 대꾸 없이 어머니가 쏟아내는 거친 감정들을 지켜봤다. 처음에는 놀라고 두려웠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침착해질 수 있었다. 왜 아이가 거짓말을 했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 앞에서도 자주 이러지 않으셨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내 앞에서 몸소 아이가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정황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계셨다.
“어머니, 아이가 평소에 거짓말을 전혀 하지 않나요?”
”네. 우리 애는 절대 거짓말 안 해요.“
“어머니, 아이들은 거짓말을 해요. 생각보다 많이 해요. 그게 이맘때 아이들의 특징이에요.”
“우리 애는 안 한다니까요?”
“저는 그래서 거짓말하는 아이를 나쁜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자라면서 누구나 거쳐가는 과정이니까요.”
“저희 애한테 거짓말쟁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제가 지켜보니까 거짓말을 특히 더 많이 하는 아이들에겐 특징이 하나 있더라고요. 자기 잘못을 어른이 용서해주지 않을 것 같을 때, 그래서 많이 혼나게 될 것 같을 때 아이들은 당장의 위험을 피하려고 거짓말을 해요.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 거짓말이 점점 늘어요.”
“……”
“평소에 아이에게 무서운 어머니이신가요?”
벌건 얼굴로 큰 목소리를 내던 어머니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화도, 슬픔도 빠르고 격렬하게 느끼는 분이었다. ‘아이가 방과 후 수업에 안 간다고 하면 엄마한테 혼날까 봐 걱정되었다고 하더라’는 말에 자신이 아이를 너무 잡으며 키운 것 같다며 또 한참을 우셨다.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완벽한 마무리를 위해 한 마디 정도 덧붙이고 싶었지만 이미 다 깨달은 사람 앞에서는 무슨 말을 보태도 사족이다. “거짓말쟁이라고 한 적은 없는데요”라는 말도 꿀꺽 삼켰다.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교실을 정리하고 나오니 먼저 가신 줄 알았던 선생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화기 밖으로 화가 난 어머니의 목소리가 다 들려서 무슨 일이 있을까 봐 걱정되어 기다렸다고 했다. 둘이 함께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걸어가는데 방금 헤어진 어머니가 아이의 손을 잡고 아파트에 선 장을 구경하고 있었다. 군것질거리를 고르고 있는 아이는 신이 나 보였다. 마음이 이상했다. 이상한 하루였다. 폭풍 같은 걱정으로 시작했다가 금세 안도했고, 무례와 분노를 터뜨리는 사람의 울음을 달래야 했던 하루. 아이의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어머니는 나를 보고 어색하게 웃었다. 나도 잠시 웃어 보이고 돌아섰다. 옆에 있던 선생님의 손을 꼭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