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가리소설. 휴 콩트-
북콘스트
-쪼가리소설-
시인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빈 플라스틱병을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묻는다.
"여러분 이 빈병을 보면 뭐가 생각나십니까?"
객석을 채운 그 누구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때 한 고등학생이 손을 들고 일어나더니
"재활용이 생각납니다."
객석에서 웃음이 새어나옵니다.
"그렇지요. 그냥 빈 병에 불과합니다.
재활용이 가능한 빈병이지요."
시인은 주전자의 물을 빈병에 따른다.
빈병에 물이 반쯤 찼다.
"그럼 이 병을 보면 무슨 생각이 일어나나요?"
한 여학생이 수줍은 목소리로
"꽃 한 송이를 꽂고 싶습니다."
그러자 한 남자가 조용히 목소리를 돋운다.
"물고기 한 마리를 키우고 싶습니다."
시인은 빙그레 웃는다.
"그렇습니다.
빈병에 물을 채우고 그 물병에 꽃을 꽂고
그 물병에 물고기를 키우면
빈병은 마침내 몸 바꾸기를 했습니다.
이 모든 행위가 빈병을 위한 마음이지요."
시인은 잠시 침묵하다가
"빈병에 아무 짓도 하지 않을 때
빈병은 순수한 제 모습으로 남을 거고
그 솔직한 모습이 아름다운 시가 된다는 것을 저는 몰랐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꽃과 물고기는 독자의 몫이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시인은 한 걸음 앞으로 나와 다소곳이 두 손을 모으고
"그동안 저는 꽃과 물고기로 여러분을 기만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객석이 쥐 죽은 듯 고요하다가
박수가 터져 나옵니다.
글. 김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