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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elaide Son Jan 21. 2022

집을 세놓았다

나의 세입자 찾기 대장정(?)

월요일 아침, 부동산 몇 군데에 전화를 걸어 전세 매물을 등록했다. 전화를 끊고 몇 분이 되지 않아 네이버 부동산에는 우리 집이 확인 매물로 등재되었다. 32평, 확장, 시스템 4대, 로열층, 관리 잘된 집, 추천 매물 등으로 요약된 우리 집의 키워드를 보고 있자니 새삼 여기서 보낸 2년의 시간이 덧없게 느껴졌다. 우리 집은 귀여운 남자 아기가 둘이나 살고, 독특하게도 나이 많은 처남을 데리고 살고 있으며, 육아휴직 중인 엄마가 매일 가족들을 정성껏 보살피며 살아가고 있는 따뜻하고도 아늑한 집....이라는 설명을 네이버 부동산엔 쓸 수가 없겠지. 연어가 회귀하듯 나는 결혼 전 살던 동네로 기어코 전세를 얻기로 결심했다. 미운 정은 그만 들고 고운 정만 들기를 바라며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글을 업로드 한지 겨우 딱 2주 만이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세 번째 글이었는데 이 글의 조회수만 4000이 넘었다. 아마 어딘가에 노출이 된 듯 하나 찾지는 못했다. 제대로 노출이 되면 1만 조회수를 넘기도 하고 신규 구독자 유입도 생긴다던데, 나의 글은 어딘가 구석에 소심하게 잠시 고개를 내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브런치 새내기에게는 나름 폭발적인 반응이었기 때문에 유입이 지속되는 2~3일간 쉴 새 없이 통계 창을 눌러보며 신기해하곤 했다.


학기 시작 전에는 이사를 해야 우리 모두의 일정에 차질이 없기에 좀 급하게 세를 내놓느라 시세보다 조금 싸게 내놓았더니 그날 오후에 금세 연락이 와서 다음날 저녁으로 방문 일정을 잡았다. 이제는 상품(?)이 된 우리 집의 첫 공식 데뷔전인 셈이다. 퇴근하고 온다는 손님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집을 치우고 닦고 또 닦았으나 큰아이가 자꾸만 블록놀이를 하고 싶어 해서 어찌나 속이 타던지. 결국 약속한 시간보다 1시간이나 늦게, 8시가 다 되어서야 우리 집에 들어선 손님들은 30대 중반의 부부였다. 그리고 1시간 후, 그들은 이 집을 계약했다.(!!)

추...충격..


"우리 집을 마음에 들어 했을까?"

"엄청 마음에 들어 하긴 하던데...(마스크 위로 동공이 커지는 것을 보았음) 경험상 저렇게 마음에 든다면 예산과 안 맞을 확률이 커. 우리도 못 갈 집만 보면 그렇게 침을 흘렸잖아?"

남편은 그래 네 말이 맞네 하고 수긍하는 듯했다. 집 보러 온 손님들이 떠나고 늦은 저녁을 먹고는 잠시 시어머니와 목요일에 있을 아버님 환갑 행사 관련하여 전화로 이것저것 조율을 하고 있었는데 캐치콜이 9통이나 찍힌 것을 발견했다. 방금 전 부동산 소장님의 전화였다. 계약하겠다는 전화에 금요일까지 좀 말미를 줄 수가 없겠냐고 하니 당장 계약금을 보내겠다고 성화였다.


그 전날 월요일에 전세 매물을 등록해놓고, 이사 갈 곳 부동산은 목요일에 방문하기로 해서 아직 내가 갈 집도 구하기 못한 마당에 덜컥 우리 집을 세 내주자니 불안한 마음이 컸지만. 우선 일정상 보관이사를 해야 하는 분들이라 이미 망친 몸(?) 입주일이 예상보다 며칠 늦어져도 전혀 문제는 없다고 일정을 우리에게 충분히 맞춰주기로 하였고 옆 단지에 사는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으러 오시는 거라 금방 살고 나갈 세입자는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는 이 분들을 우리 집의 새 주인으로 맞아들이기로 했다!

이제 주인이 잠시 바뀔 안방


늦은 밤까지 손님들을 기다리고, 아이가 쏟아내는 블록을 주우려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이 짓을 몇 번이나 더 해야 집이 계약될까 아득했었는데 첫 손님과 계약하게 될 줄이야. 후련한 동시에 시원 섭섭한 생각도 들고, 만감이 교차하기 시작했다. 앞선 나의 글에서도 열심히 피력한 적이 있었지만 정말 구석구석 나의 손이 안 들어간 곳이 없는, 이 집은 신혼집보다도 더 내 애정이 담긴 공간이었다. 어느 집이고 안주인의 손이 안 가는 집이 있겠냐마는 여기 사는 내내 거의 육아휴직 중이라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고 이제 제법 살림에 능숙해져서 서랍장 몇째 칸에 무슨 물건이 있는지까지 머릿속에 훤한 나의 온전한 공간.

그러나 상념에 잠길 틈이 없이, 이제 무조건 들어갈 집을 구해야 한다. 집을 빼주고 거리에 나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마음이 복잡해지고 계산도 복잡해졌다. 이런저런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계획을 짜느라 밤을 홀딱 지새우기 일쑤였다. 나는 월스트리트 직원보다 더 바빠졌다. 하루에 3시간가량을 자고, 식음을 전폐한 채 전화기를 붙들고 시간과 돈과 사람과 공간을 모두 짜 맞추는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목요일이 되었다.








(인간 불도저 같은 작가의 집 구하기 여정은 다음 주 금요일에 계속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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