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을 다니기 시작한지 3개월정도가 지났을 때, 최상의 컨디션이 왔음을 깨달았다. 에너지가 넘쳤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취미를 새로 시작했고, 잠을 적게자도 활력이 넘쳤다. 친구들을 만나고 싶었고, 만나서도 E의 기질이 뻗쳐나왔다. 책읽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취미생활을 하는데 지치지 않았다. 순간순간 울컥할 때도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활력있는 생활이라면 이정도 기분문제는 정상인 것 같았다. 실제로,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고, 러닝을 시작했으며 주말에 등산을 다니기 시작했다. 주3일은 친구들을 만났으며 일주일에 한권씩 책을 읽었다. 시간이 모자르면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선생님, 저 다 나은거 아닌가요?”
2주만에 병원에 가서 선생님께 물었다. 나의 넘치는 활력을 자랑하듯 말했다. 나는 완전히 우울에서 벗어났음을 확신하고 있었고, 단약의 꿈에 부풀어 있었다. 선생님이 나를 자세히 관찰하는 동안, 내가 요즘 얼마나 에너지 넘치는 사람이 되었는지, 한주에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는지 끊임없이 떠들었다.
“저는 양극성장애가 의심되네요”
놀란 눈을 하고 선생님을 바라봤다. 선생님말로는 우울증이 나은 것이 아니라 조증이 된 것이라고 하셨고, 조증의 다음으로 더 극심한 우울증이 찾아올 수 있어 더 나아진 것은 아니라고 하셨다. 양극성장애의 경우 조증과 우울증이 번갈아가면서 찾아오며, 조증을 경험한 다음 우울증이 찾아오면 대개 더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이라 다른 약물을 처방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순간 우울해지는 기분이었다. 우울증약은 중단했고, 다른종류의 기분조절 약물과 수면제의 종류도 바꿨다. 불안증약은 추가되었다. 선생님이 손을 내밀어보라고 하셨는데 손을 미세하게 떨고 있었고, 요즘 생활에서 손을 자주 떨었던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기분조절약도 먹는다고 해서 바로 효과가 나타나는 약은 아니었다. 일주일정도가 지나자 조금 진정되는 기분이었고, 그동안 내가 흥분한 상태였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다시 조금 우울해졌다. 흥분상태의 조증이 지나가자 약간의 우울은 오히려 안심되는 상태같았다. 고요한 느낌. 내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것이라는 우울감과 함께 약간의 안도감이 찾아왔다. 이건 나에게 좋은 상태일까? 오히려 조증의 상태가 살아가는데 더 도움이 되지 않나? 의사선생님은 인간의 에너지는 한정되어있고, 그 에너지가 조증을 견디지 못하면 무너질 것이라고 하셨다. 그래, 고요한 우울을 받아들이자.
처음으로 내 우울을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