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증이 시작되었다는 진단을 받고 기분조절약을 처방받았다. 물론 불안증약과 수면제약은 그대로였다. 한봉지에 약이 많아졌다.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더 안 좋아진 셈이었다. 알록달록 많아진 알약들을 보며도 가라앉지 않는 기분이 아, 정말 나은건 아니긴 했구나 싶었다. 기분조절약이 작용해 기분이 조금 가라앉는데는 열흘정도가 걸린것 같다.
다시 우울감이 찾아왔다. 그러나 아주 깊은 우울감은 아니라, 얕은 우울감의 지속이었다. 기분이 70%정도로 계속 유지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생활이 약간의 흐림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쁘지 않았다. 약간의 우울감이 지속되었지만 감정이 요동치지 않고 평온함을 유지하니 오히려 안정적이었다. 의사선생님께서도, 이정도가 좋은 상태인것 같다고 하셨다. 오히려 나는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기전에도 오랫동안 조증의 상태로 살아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울증이 찾아왔을때 더 견디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지금의 상태가 내게 더 좋은 상태일수도 있는거라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먹어야 하는 많은 약은 부담이었다. 밤에 자기전에 다섯알 반, 아침에 두알. 먹을때마다 약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다만 다행인것은 병원에 가는 주기가 늘었다. 2주에서 3주로. 지금의 상태가 안정적이라는 반증이기도 했고, 병원에 가서 선생님께 내 상태를 보고하기 위한 나를 살피기가 꽤 여유있어졌다. 기분이 안정되어있는것도 여유에 도움이 되었다. 급할때 먹으라고 주신 불안약도 거의 먹지 않았다. 견딜수있을만큼의 불안, 적정한 우울감, 잔잔한 기분. 약간의 우울감이 이전의 나와는 다른 모습이었지만 괜찮았다.
다만 집중력은 떨어졌다. 무언가를 오랫동안 지속하기는 힘들었다. 이전에는 몇시간씩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보고 하던 집중력이 사라진 것 같았다. 회사에서도 한시간에 한번은 화장실을 다녀와야했다. 반토막난 집중력. 이건 약때문일까. 아니면 이전의 내가 이상했던 걸까. 아니면 그저 삶이 지루해진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