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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기 Nov 25. 2024

우울증의 어려움2


누구에게도 우울증을 말할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적절한 연기가 필요했고, 때로는 거짓말이 필요했다. 연기와 거짓말로 하루를 채우고 집에 들어오면 하루치의 우울이 밀려왔다. 우울한 감정은 무기력이 되어 나타났다. 밥도 안 먹고, TV도 보지 않고, 숏폼을 소비하지도 않은 채 잠만 잤다. 무기력은 다시 불안이 되었다. 이렇게 누워만 있다가 내 삶이 끝나버릴 것 같은 불안.

불안은 공황이 되어 나타났다.


무엇보다 외로웠다. 연기와 거짓말로 가린 우울이 무기력이 되고, 다시 불안이 되고 공황이 되는 동안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어 외로웠다. 나에 대해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외로움은 생각보다 대단했는데,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고립감은 새로운 우울을 만들어내어 마음을 더 침잠하게 만들었다. 세상의 악순환은 모두 내게서 일어나는 것 같았다. 이렇게 얼마나 살 수 있을까 생각하고 나면 금방 죽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은 생각이 들었으나, 죽고 난 뒤 발견 될 유서에 쓸 말이 없었다.


우울증이 있었다고 쓰자니 부모님께 죄송했다. 나를 사랑한다고 믿는 사람들 모두에게 미안했다. 당신들의 애정이 내 우울함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고 난 뒤에 찾아올 절망과 실망이 미안했다. 무엇보다 부모님이 문제였다.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첫째가 우울증으로 죽는다는 것을 감당할 수 있는 분들이 아니었다. 적당한 관계의 친구들이나 선후배들에게는 조금 다른 감정이었다. 그들은 놀라기는 하겠지만 곧 잊을 거다. 이러쿵저러쿵 평론들을 하겠지만 길어야 한주 내지는 두 주 정도일 것이다. 그들의 삶에 나란 존재가 끼어들어 있었다는 사실조차 곧 잊겠지.


이런 생각들이 거의 매일 반복되었다. 생활은 순순히 굴러갔지만 삶은 계속해서 균열이 나고 있었다. 이런 중에 약이 효과를 보인다는 것은 유일하게 다행인 부분이었다. 약을 먹으면 잠을 잘 수 있었고, 연기가 가능했고, 거짓말이 가능했다. 의사 선생님에게도 모든 것을 다 말하지 못했지만 생활이라도 순순히 굴러가니 어려워도 살 수 있었다.


다만 몽롱했다. 정신이 흐려지는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약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나, 선생님은 약 때문은 아니라 했다. 무기력과 불안이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했고, 마음과 기분이 어떤지, 그것이 어디서 온 것인지 확인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우울과 불안과 무기력이 찾아오면 왜 그런 건지 써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쉽지는 않았다. 어두운 마음이 찾아오면 정확하게 마주하는 것이 힘들었다. 자버리거나(회피하거나), 얼른 다른 생각으로 벗어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처음 몇 주간은 기록이 잘 되지 않았다. 나를 가장 보기 싫어하는 것은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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