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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기 Nov 18. 2024

우울증의 어려움 1

중증의 우울증을 진단받을 무렵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일상생활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수시로 터져나오는 눈물과, 출퇴근하며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때의 자해충동을 억누르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한 일이었다. 조절되지 않는 감정은 집에 와서 혼자 있을 때 더 심각해졌고, 두통과 피로가 쏟아져도 잠들기가 어려웠다. 제대로 자지 못하니 악순환은 반복되고 피로감까지 더해진 생활은 제대로 된 사고를 하기도 어려워졌다. 그러나 이런 문제 들은 약을 먹기 시작하고 일주일이 지나자 모두 사라졌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약을 잘 받는 편이라고 하셨다. 다행히 부작용도 크지 않아 금세 약에 적응했다. 처음 약을 처방받았을 때는 취침 전 약만 먹었는데 항우울제, 항불안제, 수면제 세 가지를 먹었다. 잠을 잘 자니 에너지가 생겼고, 자해충동이 줄어들어 출퇴근 시의 두려움이 줄었다. 이것만으로도 삶의 질은 쭉 상승했다. 우울함이나 불안함도 해소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의 진폭이 줄어든 느낌이었다. 약을 먹기 이전처럼 “살만하다”와 “죽어버리고 싶어”를 오가는 정도는 아니었고, “살만하다”와 “너무 힘들어”를 오가는 수준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너무 만족스러웠다. 이 정도의 상태라면, 애쓰며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병원은 두어 달간은 매주 오갔다. 한주의 기분이 어땠는지, 특별히 불안하거나 우울했던 날은 어느 정도였는지 그때의 마음이나 생각은 어땠는지 선생님께 알렸다. 선생님이 하시는 질문에 답하며 나도 내 마음이 어떤 건지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기분을, 마음을 텍스트화하는 일은 쉬울 것 같았으나 항상 어려웠다. 마음을 써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말에 병원에 가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쓰기 시작했다. 내 마음과 그 마음이 생겨났을 때 떠오르는 생각과,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쉽지 않았고, 여전히 어렵다. 쉽게 규명되는 마음이 있으면서,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기분이 들 때가 있었고, 이런 상황에 이런 마음이 생겨났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우울과 불안이 치욕적으로 느껴 저 차마 쓰지 못한 날은 날짜와 시간만 쓰고 지나갔다. 모든 순간이 보이지 않는 것과의 싸움이었다.


병원을 격주로 가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공황이 찾아왔다. 출장을 다녀오는 기차에서 갑자기 숨을 쉬기 어렵고 어지러웠다. 다음날 아침 출근에도 같은 증상이 찾아왔고, 선생님은 그게 공황이라고 하셨다. 처음 병원에 가던 날의 두려움이 다시 찾아왔다. 병원상담의 간격이 처음보다 길어졌고, 수면제도 줄이던 때의 일이라 당혹스러웠다. 다시 찾아온 불안감, “내가 나을 수 있을까.” “사람들 앞에서 공황이 찾아오면 어쩌지.” 그런 것들. 지갑에 약을 넣어 다니면 불안감이 덜 할 거라는 선생님의 말씀과 달리 약의 무게는 상당했다. 약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안 된다는 걱정이 생겨 공황은 더 자주 찾아왔다. 일주일에 한두 번이 곧 일주일에 서너 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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