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무기 Nov 04. 2024

병원을 가다



그날 퇴근직후 병원을 갔으면 좋았으련만, 살려달라고 구조신호를 보낸 병원은 매정했다. 이미 예약이 가득차서 이틀 뒤나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정신과병원이야 주변에 생각보다 많으니 전화를 끊고 다른 병원을 검색하면 될 일이었지만 나는 부탁했다. 오늘이 안되면 내일이라도 방법이 없을지 말이다. 오늘 죽어버려야겠다 생각했던 내 기운이 전해진건지, 당일 취소도 종종 있으니 병원에 와서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취소자리가 나지 않더라고 일찍 상담을 끝내는 경우 시간이 비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우선은 이틀뒤로 예약을 해두고 다음날 병원으로 갔다. 의사선생님을 만날 때까지는 견뎌보자는 생각으로 하루를 버텼고 다음날이 되자마자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 가면 우선 접수를 하고, 사전검사를 한다. 질문이 쉴새없이 나열된 스무장 남짓한 검사지에 지난 얼마간의 내 기분과 생활에 대해 체크한다. 이걸바탕으로 의사선생님께서 상담을 하시는 것. 몇달간의 내 고통과 견주어도 모자르지 않을만큼 많은 양의 질문을 해치우는데는 30분이나 걸렸다. 그리고는 긴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의외로 기다리는 시간은 고통스럽지 않았다. 편안하다못해 졸릴정도여서 자신도 의아할 정도였다. 이정도면 어제 내가 그냥 감정이 좀 격해졌던건가. 그런걸로 병원에 와도 되는걸까. 연차 하루 쓰고 푹쉬고나면 괜찮아질거를 괜히 병원에 온거 아닐까. 별일 아닌걸로 병원 왔다는 얘길 들으면 어쩌지. 평소에 내가 호들갑떠는 스타일이었던건가. 별 생각이 다 들정도로 병원에 앉은 나는 편안했다. 마음이 편안해지니 내가 잘 못온 것 같았다. 우울증같은 치료가 필요한 상태가 아니라 그냥 몇일 감정이 격해진건데 죽고싶으니 어쩌니 하면서 유난떤것 같았다. 연차를 쓰고 푹 자고 일어나니 마음이 편안해지는걸로 봐서 그냥 피곤하고 스트레스가 많았던 것 같은데, 예약도 다 찼다는데 굳이 병원까지 와버렸으니 진짜 유난이다 싶었다. 어떻게 얘기하지 그냥 간다고 해야될거 같은데 병원은 너무 조용하고 사람도 없다. 오늘 때마침 한명이 취소되어 한시간만 기다리면 된다고 하셨는데 그사이 예약다찼다는 전화를 몇번이나 받은 간호사에서 제가 그냥 갈게요라고 할 수 있을까.


그냥 간다는 말도 못하고 안절부절하고 있던 그 때 이름이 불렸다. 갑자기 의사를 만나기 너무 겁이 났다. 믿었던 사람들마저도 다들 그만큼 힘들어하며 산다고 얘기했다. 의사마저 내게 별일 아닌걸로 왜 왔냐고 하면 어쩌지. 너는 참을성이 부족한거라고 하면 어쩌지. 성질이 못돼처먹어서 화가 나는걸 제대로 못내니까 그저 화가 쌓인거 뿐이라고 하면 어쩌지. 연차못써서 여행못가고 그저 짜증이 난거뿐이라고 하면 어쩌지. 대기실에서 진료실로 걸어가는 1분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도망도 못가고 들어가지도 못하고 문에 손을 대고 심호흡했다. 그래 별일아닌걸로 왔다고 쪽팔리면 어때, 다행이다 생각하며 살지뭐. 그리고 감정 좀 다르리고 착하게 살라는 신호로 받아들이자. 습습후후. 그리고 문을 열었다.

이전 01화 살려달라는 구조요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