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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기 Nov 11. 2024

많이 어려우셨겠어요

편안했다. 진료실 안의 풍경은. 그러나 보이는 것과 달리 마치 엄숙한 성당의 맨 앞자리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방문한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기 위한 조명과 음악과 채도에 왠지 모르게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고해성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네, 선생님. 제가 별일 아닌데 난리를 피웠습니다. 이 정도 일은 누구나 겪는 것인데 호들갑을 떨었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다시 한번 마음을 굳게 먹고 잘 살아 보겠습니다. 이런 고해성사. 나는 정말 고해성사하듯 선생님께 지난 시간의 마음과 내 상황을 말했다. 선생님이 이런 마음이 얼마나 지속된 것인지를 물으시며 내게 티슈상자를 건네셨을 때 알게 되었다. 나는 말하는 내내 울고 있었다.


나는 내가 아주 이성적으로 나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진료를 기다리며 이미 편안해졌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가벼운 기분 문제로 병원을 찾은 것으로 인한 의사의 타박을 예정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울고 있다니. 흐느끼지도 않았고, 주룩주룩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 예상과는 다르게 의사는 타박하지 않았다. 그리고 의사의 첫마디는 내 예상과는 아주 달랐고, 생각해 왔던 일반적인 반응과도 다른 것이었다.


 "많이 어려우셨겠어요“


맞다, 나는 어려웠다. 힘들거나 괴로운 감정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어려웠다. 이런 감정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는 것이 어려웠고, 이 마음으로 매일을 살아가는 것이 어려웠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려웠고, 내 마음을 타인에게 털어놓는 것은 더더욱 어려웠다. 내 의지대로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 것이 감당하기 어려웠다. 나는 내가 어려웠다. 선생님의 첫마디는 고해성사 앞에 서있던 마음을 의사 앞의 환자의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의사선생님은 내가 중증의 우울증이라고 하셨다. 자해에 대한 생각까지 하는 위험한 상태로 꾸준한 약물치료가 필요하며 매주 선생님과 상담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내가 우울증이라는 사실은 오히려 내게 안도감을 줬는데, 내가 가진 마음의 상태가 ‘병’이라는 것과, ‘치료가 가능한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덜컥 무서워졌다. 우울증약은 한번 먹으면 끊기 어렵다던데, 우울증약을 먹는다는 사실을 주변에서 알게 되면 어쩌지, 나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지인들의 평론이 두려워지는 순간이었다.


사실 우울증에 대한 내가 가진 인식은 별로 좋지 않았다. 기분과 주변사람들에 대한 믿음을 이겨낼 수 있는 마음들을 약에 의존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마음이 약하고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가 약한 사람이 가지는 병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비해 우울증에 대한 인식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울증이 가진 고정적인 이미지가 내게도 있었다. 세고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내가 우울증이라니. 그것도 자해까지 생각하는 중증의 우울증이라니. 진단을 받는 순간 더 침울해졌다. 순식간에 나는 이 병을 이겨낼 수 없고, 사람들 앞에서 가면을 쓰고 살다가 내 속이 터져 죽거나, 사람들 앞에서 우울증을 고백하고 혼자가 되어버릴 것 같았다. 순식간에 절망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는 나 자신에게 놀랐으나 의사선생님은 별로 놀랄 일은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씀하셨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꼭 괜찮아질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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