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디이 Oct 19. 2023

상속녀, 뉴욕에선 렌트할 권리도 물려받는다?

전세 없는 미국, 뉴욕의 월세 (Rent) 전쟁

어퍼 웨스트사이드 (Upper West Side)에서 부모님이 월세로 살고 있던 아파트를 물려받은 상속녀에 대한 기사가 뉴욕 타임스에 게재되었다. 댓글창은 시끌시끌했다. 어떻게 소유하지도 않은 아파트를 물려받을 수 있다는 걸까?


2000년대 초 뉴욕 배경의 미드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 캐리 브래드쇼가 극 중 살았던 렌트 컨트롤 하우스, 한 달 렌트가 700불로 믿을 수 없게 저렴했다.


누군가는 살고 있다는 미국의 무릉도원, 나도 살고 싶다.


    렌트 컨트롤 아파트는 시장 경제의 원리에서 예외인 곳으로, 집주인이 마음대로 월세를 올릴 수 없다. 세입자가 원한다면 아주 낮은 월세 그대로 계약을 연장하고 거주할 수 있다. 미국에는 전세라는 개념이 없다. 개인이 자가를 구매하기 전까지는 월세를 내고 주택이나 아파트를 임대한다. 나중에 어느 정도 돌려받을 수 있는 보증금을 내고 매달 월세를 내는데 월세는 당연히 돌려받지 못한다. 보통 12개월에서 24개월 사이에서 첫 계약을 한다. 계약을 연장하길 원하면, 집주인이나 부동산 업체가 대부분 월세를 5-20% 정도 인상하는 편이다.


렌트 컨트롤 (Rent Controlled) 주택이란?

    임대료가 안정화되어 월세가 잘 오르지 않으며, 시장 가격보다 훨씬 낮은 임대료를 받는 아파트를 의미한다. 뉴욕시에서는 일반적으로 1974년 이전에 건축된 최소 6개 유닛이 있는 건물의 아파트 또는 세금 감면을 받는 새 건물에 적용된다. 임대료가 안정된 주택의 경우엔 렌트를 올리려면 뉴욕시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매년, 이사회에서 뉴욕시에 위치한 렌트 컨트롤 아파트에 대해 합법적으로 임대료를 인상할 수 있는 비율이 승인하며, 상승 비율폭 또한 매년 다르다. 예를 들어, 1년 계약 시 2-4%, 2년 계약 시 4-6% 정도이다. 미국의 렌트 상승률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편이다.


그래서 간혹 샌프란시스코 같은 곳에선 렌트 컨트롤 아파트의 집주인이 재건축하거나 리모델링을 하려면 골머리를 앓기도 한다. 재건축을 할 경우 렌트를 올릴 수 있는데, 법이 세입자를 보호하기 때문이다. 미국 법상, 임대 계약 후에는 세입자가 살고 있는 집에 집주인이 동의 없이 들어가는 경우 무단 침입으로 강한 처벌을 받는다. 이미 알 박기를 시전한 세입자를 상전으로 모실 수밖에 없고 복비를 주며 제발 이사 가달라고 하기도 한다. 공사가 예정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손해를 입는 경우도 왕왕 있다.




대도시에서 렌트 컨트롤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다면,
조상신이 도왔음에 틀림없다.
어퍼 웨스트사이드의 아파트를 렌트할 권리를 물려받은 후 인플루언서가 된 Hattie Kolp, 출처: @hattiekolp

    렌트 수저라는 말을 써야 할 정도이다. 뉴욕은 평균 월세가 4500불 (한화 약 600만 원)에 달한다. 뉴요커들의 평균 연봉은 1억 5천만 원 정도인데, 정작 월세가 비싸다 보니 월급의 1/3 혹은 절반에 가까운 돈을 당연하게 월세에 지불한다.


뉴욕의 렌트 시장을 생각한다면, 이 상속녀는 정말 누구보다도 러키한 것이다. 지난 8월 뉴욕 타임스에 한 인테리어 메이크오버 전문 인플루언서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제목은 <Don't Hate the Influencer Who Loves Her Big, Cheap Apartment. Wouldn't You?>였고, (부모님의 도움으로) 아주 크고 좋은 렌트 컨트롤 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 인플루언서를 미워하지 말아요. 당신이라도 이렇게 하지 않겠어요?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녀는 SNS으로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집의 리모델링하는 과정을 공유하며 많은 팬을 얻었다, 출처: @hattiekolp


인플루언서 Hattie Kolp의 원래 직업은 선생님이었다. 미국에서 선생님은 박봉인 편이라 우리나라와 다르게 그리 선호되는 직업은 아니며 Hattie 역시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었다 한다.


그녀가 어릴 때부터 살았던 집을 이어서 임대하게 되었고 커리어 전환을 시도했다.


최근 부모님이 은퇴하여 버지니아로 이사를 가면서, Hattie는 뉴욕의 부촌 어퍼 웨스트라는 지리적 상징성과 34평 (1,200 sq feet)이라는 꽤 넓은 공간을 리모델링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뉴욕 특유의 앤틱함을 살리면서도 모던한 에클레틱 (Eclectic) 스타일의 인테리어 콘텐츠들을 업로드하였고, 현재는 틱톡과 인스타에서 총 40만 명의 팔로워를 지닌 인플루언서가 되었다.


기사에는 뉴욕의 렌트 컨트롤 아파트와 이를 물려주는 현상에 대하여 갑론을박하는 댓글이 달렸다. 부정적 반응들로는 "New York housing system is out of control"이라며, 이러한 기이한 행태로 인해 정말 필요한 사람들에게 렌트 컨트롤 하우스가 돌아가지 않는 것을 비판한다. 대를 이어 사회 시스템을 악용하고 부를 쌓는 과정을 지켜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다.


반면, 뉴욕의 비싼 렌트를 감안하여 충분히 이해되는 상황이며 단지 기회를 영리하게 사용하는 것뿐이라는 주장들도 많았다. 두 입장 모두 충분히 납득이 가며, 누구라도 부러워할 상황인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기사에서는 Hattie 역시 나중의 아이가 원한다면 이 아파트를 임대할 수 있는 권리를 계속해서 물려주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렇다면 현재 뉴욕의 렌트 시장은 어떻길래 렌트로 인해 직업까지 바꾸어 살게 되는 걸까?






뉴욕 주거용 렌트의 대표적인 특징들


다른 주에서 원베드룸을 렌트할 수 있는 가격으로 맨해튼에서는 고시원 크기의 방 하나를 얻을 수 있다.


특징 1. 자그마한 전용면적


    뉴욕으로 이사할 당시, 영상통화로만 확인하고 렌트 계약을 했던 방을 직접 마주한 내 반응은 이랬다: 어떻게 이렇게 비싼 방이 이렇게나 작을 수 있지? 당시엔 먼스 투 먼스 (Month-to-month: 계약기간 따로 없이 한 달마다 렌트 갱신이 가능함)로 방을 계약했다. 방이 작아도 언제든지 금방 옮기면 된다고 생각했고 예쁜 성당이 보이는 창 밖 풍경이 유독 맘에 들었던 터라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아파트는 낡았지만, 내 방에서 보인 풍경이 다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처음 이사했을 때의 내 방은 아마도 커야 2-3평 혹은 그보다 더 작은 고시원 방 크기였던 것 같다. 옷을 수납할 벽장이 있었지만, 트윈 침대 하나에 작은 책상이면 남은 공간에는 따로 누울 자리조차 부족했다.


맨해튼에 있는 구글 캠퍼스

그도 그럴 것이 뉴욕은 미국 인구 밀도 1위에다가 주거 지구보다는 각종 오피스와 관광 명소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상대적으로 주거 건물의 전용면적이 아주 적을 수밖에 없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뷰가 좋고 방이 여러 개인 아주 넓은 집은 펜트 하우스 정도 되어야 가능한 면적이다.


뉴욕 아파트는 대부분 화장실, 거실, 방 크기 할 것 없이 작은 편이라 그런지, 뉴요커 대부분은 공간 활용의 신이다. 뉴욕 에어비앤비나 페이스북 마켓을 둘러봐도 이러한 뉴욕 아파트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좁은 코너에 딱 맞는 코너장, 창문 가로길이에 딱 맞는 테이블, 부엌에 나무 선반으로 수납공간을 만드는 등 생활형 인테리어의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890년대 세워진 빌딩

특징 2. 프리 워 빌딩


    아름답지만 노후된 건물이 많다. 1939년인 2차 세계대전 전에 지어진 프리 워 (Pre-war) 건물들의 경우 건축된 지 100여 년 가까이 된 경우도 상당히 많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짜리 워크 업 (Walk up) 빌딩도 있으며, 인테리어는 리모델링을 했어도 뼈대는 노후된 시설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한국의 아파트에서 많이 보이는 엘리베이터를 미리 부르는 인터폰이나 주방에 후드와 함께 USB 충전대가 있다거나 하는 최신식 시스템은 전무한 편이다. 아주 비싼 동네의 최신식 아파트가 아닌 이상 기본적으로 주거 환경이 전반적으로 열악한 편이다. 오히려 근교나 시골의 아파트들이 새로 지어진 경우가 많고, 시설 또한 더 깨끗하다. 동부의 시골에서는 항상 부엌에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뉴욕 근방의 아파트에선 좋은 아파트임에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낡고 오래된 아파트들의 월세가 저렴한 편도 아니다. 

야외에 비상용 계단이 있는 옛날 빌딩들이 쉽게 보인다



특징 3. 비싸다.


    더 할 말이 없다. 뉴욕의 렌트는 예상해도 그것보다 훨씬 더 아주 많이 비싸다. 렌트가 생활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렌트비가 가장 비싼 주 1위를 한 적도 여러 번이고 평균 렌트가 매우 비싸다.


조금만 더 부연 설명을 해보자면, 월세 자체도 비싼데 앞서 말한 전용면적과 시설에 비해서도 터무니없이 비싸다. 일리노이 같은 곳의 원베드룸을 구할 수 있는 가격의 3-5배는 지불해야 맨해튼에서 훨씬 작고 낡은 원베드룸을 구할 수 있다.


2019년 코비드 직후, 아비규환이 된 맨해튼을 빠져나가서 뉴욕 근방이나 뉴저지로 이사를 간 뉴요커들이 다시 맨해튼으로 돌아오지 않는 또는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같은 가격인데도 훨씬 작은 공간에서 상대적으로 시끄럽고 더러우며 사람 많은 동네에서 그 모든 불편함을 감수하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뉴욕에 직장이 있다면 통근 시간은 줄지만, 가족이 살기에는 메리트가 없다.


팬데믹 시기인 2020 - 2021년도에는 뉴욕 렌트와 부동산 시장의 전반적 가격이 전무후무하게 큰 폭으로 급락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이제 렌트는 다시 올랐고 매매 역시 말할 필요 없이 비싸다.


코비드 때 빚을 내서라도 맨해튼에 집을 샀었어야 한다는 부동산무새가 될 뿐이다.



특징 4. 룸메이트


    뉴욕 안에서도 맨해튼은 렌트가 정말 비싸서 한국으로 치면 셰어하우스의 형태로 룸메이트와 함께 사는 것이 너무나도 보편적이다. 캠퍼스 타운이나 렌트가 비싼 도시에서는 룸메이트 구하기가 일반적이다. 꼭 학생뿐만이 아니라 직장인들도 친구, 연인, 혹은 아예 모르는 사이의 룸메이트를 구해서 같이 사는 경우가 많다. 성별 관계없이 남녀가 룸메이트로 같은 집에 사는 것도 흔한 일이다. 때문에, 학교나 지역마다 룸메이트를 구하기 위한 페이스북 그룹이 활성화되어 있다.


룸메이트와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일단 뉴욕엔 고시원 같은 개념이 없을뿐더러 혼자 살 수 있는 스튜디오 (한국의 원룸) 가격이 너무나도 비싸게 책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혼자 살 수 있는 아주 저렴하고 작은 스튜디오의 가격이 기본적으로 2000불 (한화 260만 원선)부터 시작한다. 혼자 살 수 있을 정도로 렌트가 저렴하다고 할지라도 한국에선 생활필수품인 세탁기나 부엌이 없는 경우가 많다. 렌트가 조금이라도 낮다면, 언제나 그에 합당한 이유와 불편함이 따른다.


룸메이트를 구하면, 한 사람당 렌트는 줄어들고 전용면적이 넓어지고 생활 인프라가 좋아지는 엄청난 베네핏이 있다. 방이 2개 이상이면 스튜디오와 달리 거실과 부엌이 분리되어 있고 화장실이 1.5개 이상일 경우가 많다. 예산을 줄여도 학교나 직장과 가까운 동네에 집을 구할 수도 있고, 그로 인해 생활의 편리함이 상승한다.


실제로 보면 상당히 작은 거실, 룸메이트와 셰어 했다

또한, 건물 내 세탁 시설이 있고 도어맨도 있는 괜찮은 건물의 경우, 혼자 사는 스튜디오나 원 베드룸은 3000불 이상이지만, 투 베드룸은 4500불 정도인 경우도 있다. 렌트도 나눠내고 인터넷, 전기세, 히팅, 물 등의 유틸리티 (Utilities) 비를 나눠 낼 수 있어서 더욱 유리한 것이다. 심지어 원베드룸의 거실에 커튼을 치고 룸메이트를 구하는 것이 아주 보편적이다.



특징 5. 시끄럽다.


    뉴욕은 차도와 아파트 주거 단지 사이 간격이 매우 가까운 편이라 도시 소음이 잘 들린다. 주상복합 아파트들이 많은데, 레스토랑이나 상점가 위에 위치한 아파트이거나 다운타운 근처일 경우엔 행인들이나 차에서 나는 소리가 시끄러울 수 있다. 또, 병원 근처나 길목에 있는 아파트의 경우라면 소방차와 경찰차, 앰뷸런스가 시도 때도 없이 다니며 내는 소리가 정말 크다. 처음 이사한 곳은 7층이었는데도 병원 가는 길목에 이라 밤에도 앰뷸런스 소리가 종종 들렸었다.


친구들과 전화할 때마다 앰뷸런스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내가 사실 길에서 사는 것 아니냐며 농담할 정도였다.






    한국 역시 최근엔 매매보다 전세가 더 비싸거나, 반전세나 월세를 어쩔 수 없이 전전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서울은 내려가지 않는 부동산 가격 때문에 내 집 마련이 정말 어려운데, 미국도 도시라면 별반 다르지 않다.


무조건 월세로 렌트를 내야 하기 때문에 돈을 모으기에 유리한 상황은 아니다. 최근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이전에 1-2%였던 모기지 이율 (Mortgage rates)도 8%대 초반으로 치솟아서 집을 쉽게 살 수 있는 타이밍은 아니다. 괜찮은 직장과 학군이 있고 한인 커뮤니티가 형성되어서 살기 좋은 텍사스나 아틀랜타 역시 최근 5년 새 집값이 많이 올랐다.


맨해튼 한복판에 집을 살려면 로또를 맞아야 할 것 같다.


그래도 뉴욕과 가까운 곳에 살고 싶기 때문에 내 집 마련을 꿈꾸며 앞으로도 부동산 공부를 계속할 생각이다. 학생이라면 공부를, 직장인이라면 부동산 공부를!


어디에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을까
이전 02화 팁문화, 미국에서 자발적 호구가 되어가는 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