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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디이 Oct 22. 2023

팁문화, 미국에서 자발적 호구가 되어가는 중

미국 로컬들도 비판하는 외식할 때 팁, 도대체 얼마를 왜 주는 걸까

미국 여행을 알아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고민, "팁, 꼭 줘야 되는 거야?" 여행자가 아닌 로컬들도 팁 때문에 괴롭다. 도대체 왜 유럽에서 시작된 팁문화가 미국에만 생존하게 된 걸까? 미국인들은 팁 (Giving tips)에 대해서 동의하고 있을까?


통창을 통해 아름다운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을 볼 수 있는 레스토랑, 팁을 많이 내더라도 서비스가 좋아서 또 가고 싶은 곳이다



    10년 전 뉴욕에 여행 왔을 때 팁을 뜯겼던 해프닝이 있었다. 허름한 중식당에 가서 중국식 찐만두 (Dumplings)를 먹었는데, 맛도 별로고 음식 한번 갖다 준 것 말고는 서비스랄 게 없었다. 딱히 팁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 당시엔 팁을 몇 프로 줘야 한다는 정확한 기준을 몰랐다. 그래서 음식값과 추가되는 세금 외에 팁으로 갖고 있던 동전들을 탈탈 털어 영수증에 놓고 나왔다.


잠시 후, 식당에서 중국인 셰프가 달려 나와서는 나에게 뭐라 뭐라 하며 영수증에 손짓을 했다. 아마도 내가 팁을 덜 준 것에 대한 항의였을 것이다. 결국 나는 추가로 몇 달러를 줬다. 싸우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이었으면 만두맛과 서비스에 대해서 조목조목 따졌을 테지만, 당시엔 터덜 터덜 골목을 걸으며 내가 뭘 잘못한 건가라는 생각과 함께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외식을 할 때마다 자의 반, 타의 반, 호구로 변신한다.


이젠 꼬박꼬박 음식값에 내가 원하는 퍼센트를 곱하여 계산기로 확인하고 팁을 준다. 시골에서는 15%가 기본이었는데 뉴욕에서는 18%가 기본이 되었다. 내가 무슨 서비스를 받았다고 음식 가격의 거의 1/5이나 한국보다 불친절한 서버에게 떼어줘야 하는지. 방문하는 레스토랑 10곳 중에 1-2 곳 정도만 팁을 주고 싶은 의지가 생긴다. 그럼에도 내가 왜 미국의 “사회 분위기”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팁을 줘야만 할까?


아주 평범한 중국식 찐만두인 샤오롱바오 (xiaolongbao)도 팁과 세금을 포함하면 한화로 만 오천 원에서 이만 원선이다




미국의 레스토랑 서버들은 종종 최저 임금보다 낮은 기본급을 받기도 한다. 심지어 주에 따라서 불법이 아니다.

    미국의 경제 관련 팟캐스트인 Freakonomics에 따르면, 미국에서 팁을 주는 금액이 연간 최소 400억 달러 (무려 한 화 52조 원 정도)에 달하며, 이는 미국 항공 우주국 (NASA:  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의 연간 예산의 두 배에 해당한다. 아마도 이 금액의 대부분은 미국에서 식음료 업계에 종사하는 250만 명 이상의 웨이터와 웨이트리스에게 지불될 것이다. 말도 안 되게 엄청난 돈이 유독 미국에서만 팁이라는 독특한 카테고리 안에서 소비자의 짐이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팁을 주는 것은 선택 사항이지만, 미국의 레스토랑에서 음식 값에 몇 프로를 더하여 팁을 주는 것은 사실 의무 (Mandatory)에 가깝다. 레스토랑 서버들은 급여의 대부분을 팁을 통해 메꾸기 때문이다. 미국 국민들 모두가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고 때문에 레스토랑 종업원에게 팁을 준다는 행위에 대해 크게 문제 삼지 않아 왔다.


팁문화를 없애고 싶어 하는 미국인 친구조차 레스토랑에서 팁을 주지 않는 것은 "Very very rude"라며 아주 무례한 것임을 강조했고 하면 안 되는 일인 것처럼 말했다.


미국에서 팁을 어디서 얼마나 줘야 할까?

    레스토랑이나 바와 같은 식음료 관련 매장을 방문했을 때, 종업원이 직접 음식이나 음료를 서빙한다면 일반적으로는 팁을 줘야 한다. 테이크 아웃 (Take out) 매장이나 스타벅스와 같이 음료만 받는 카페, 음식을 픽업만 할 때는 팁을 주지 않아도 된다. 현재 미국에서 팁을 줄 때 일반적인 퍼센트는 음식 가격의 15-25% 정도이다. 점심에는 15-18% 정도, 저녁일 경우엔 18-25%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단말기에서 팁을 주는 퍼센트를 선택하기도 하고 직접 영수증에 팁 부분 옆에 작성하기도 한다.



최근 팁으로 줘야 하는 기본 퍼센트가 무려 음식 가격의 20%이 넘는 등 지나치게 상승했다.


    미국 내에서도 그동안 눌려왔던 불만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보통 레스토랑의 결제 단말기에는 팁을 줄 때 누를 수 있도록 3가지 옵션이 보인다. 10년 전에는 10%가 좋은 팁이었고,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10%, 15%, 20% 이렇게 세 가지가 기본 팁 퍼센트로 제안되었다.


하지만 팁으로 줘야 하는 금액이 엄청나게 상승했다. 이제 10% 팁은 서비스가 정말 별로이고 주고 싶지 않을 때 주는 금액이 되었다. 15%, 18%, 심지어 25% 팁주기가 기본 선택으로 제시된다. 평소 뉴욕의 레스토랑은 그다지 친절한 편이 아니기 때문에 팁을 10%라도 주고 싶지 않을 때가 많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우리나라의 체면을 생각하게 된 걸까.


뒤에서 아시아인이라 짜게 군다고 욕할까 봐 꾸역꾸역 팁을 낸다.


New Year's Eve에 새해를 기념하기 위해 갔던 레스토랑에서 서버의 서비스가 너무 별로라서 팁을 한 푼도 주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엔 주고 나왔던 적도 있다
어떤 일본식 바에서도 스무디 기계가 시끄러운 자리로 안내를 받고 직원이 주문을 제대로 받지 않는 등 서비스랄 것이 없었는데도 의무감에 팁은 줬다


한국에서는 '나'로 당당하게 행동했는데  미국에선 어쩐지 내가 아닌 '한국인'으로 살아간다.


    왜 외식 분야만이 직원들에게 정해진 임금을 지불하는 대신, 준자발적 세금의 형태로 직원의 인건비를 고객에게 전가하는 것일까? 레스토랑 업체는 물가 상승으로 인해 높아진 원가로 인해 메뉴 가격을 낮게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직원에게 팁을 주는 게 좋은 동기 부여 수단이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너그러웠던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애초에 팁문화를 시작하지 말았어야 한다며 소비자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악습을 그만두고 레스토랑 오너들이 돈을 내야 한다는 의견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제 팁을 받으면 주방에서 일하는 키친 크루와도 모두 다 나누는 방식이 보편화되어 (서버만 팁을 받는 게 공평하지 않단 인식 때문에) 사실 서버 개인을 위한 인센티브라는 개념이 다소 무용해졌다. 또한, 동네 레스토랑의 단골이 아닌 이상, 도시의 레스토랑에서 다시 똑같은 서버에게 서비스를 받을 일은 옛날과는 달리 거의 드물다. 평소에 잘해달라는 의미의 팁으로서의 기능이 불가한 것이다. 대부분의 산업과 같이 직원의 임금은 철저하게 고용주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 아닐까?


코스메뉴를 먹는 하이엔드 레스토랑은 서비스는 유지하되 팁문화에 반대하여 팁을 안받는 시스템을 정립한 곳도 있다




팁을 줘야 한다 VS 팁 대신 고용주가 직원의 임금을 올려야 한다.


    현재의 미국 내 팁문화에 대해서 공통적인 의견은 둘로 나뉜다. 요점은 단순히 팁을 줘야 한다와 주지 말아야 한다가 아니다. 음식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임금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팁을 이제 누가 감당할 것이냐에 대한 논의이다.


미국의 팁 문화는 현재 미국 내 최저 임금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회 문제이기도 하다. 현재 한국의 최저 임금은 9,160원 (약 8불 정도)이다. 최저 임금 인상 논의가 있을 때마다 근거로 사용되는 주로 서구권의 최저 임금은 사실 유럽 기준이다.


미국의 20개 주가 여전히 채택하고 있는 연방 기준 최저 시급은 7.25불 (한화 9천 원 정도)이다. 놀랍게도 어떤 주에서는 최저 임금을 채택하지 않아서 이 낮은 최저 임금마저도 의무가 아니다. 2022년 기준, 미국 수도인 워싱턴 D.C.와 30개 주의 최저 임금은 시간당 $7.25이었다. 앨라배마,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사우스 캐롤라이나와 테네시의 5개 주는 최저 임금 제도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다른 2개 주인 와이오밍과 조지아는 최저 임금이 7.25불보다 낮다.


우리는 서구권인 유럽과 북미 대륙을 퉁쳐서 복지가 좋겠거니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미국은 극도로 자본주의적인 사회이며 복지가 좋은 나라가 아니다.


18세기 경에 유럽에서 미국으로 팁문화가 전해졌을 당시에도 많은 반발이 있었다. 1897년 뉴욕 타임스에서는 팁을 주는 행위가 “다른 나라에서 전파된 가장 끔찍한 악덕”라고 칭했다. 1900년대 초, 실제로 사회적 압력으로서의 팁문화가 세금처럼 작용하는 것을 반대하는 6개 주가 팁제도를 폐지한 적도 있다. 하지만, 현재 팁문화에 대한 갑론을박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고 소비자들만 괴로울 뿐이다.




최애 음식인 냉면은 미국에서 팁까지 포함하면 기본 2만 원 선이지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지덕지하다


    이럴 땐 한국의 외식 환경이 참 부럽다. 밖에서 음식을 사 먹는 가격이 미국보다 훨씬 저렴하다. 게다가 팁을 안내도 되고, 거의 모든 음식이 배달되기도 한다. 뉴욕에서는 한 번 외식하면 2명이 음식과 함께 음료수를 시키면 70불은 기본이고, 세금과 팁까지 포함하면 거의 100불 (한화 약 13만 원)은 지불해야 한다. 항상 그리운 한식도 비싼 음식 종류 중에 하나이다. 물론 원 재료값이 양식보다 더 나갈 가능성이 크지만, 뉴욕은 김밥 한 줄에 무려 10불 (한화 만 삼천 원)이다. 한국에서처럼 파는 곳도 많이 없을 뿐더러, 가격 때문에 생각 없이 밖에서 사 먹기가 어렵다.


덕분에 내 집밥 실력은 나날이 상승해서 우거지 소고기 국밥도 집에서 만들고 심지어 프랑스 가정식까지 도전하고 있다. 이렇게 미국에서 생활하는 법을 터득해 간다. 어떻게든 미국에서도 잘 먹을 방법을 궁리하면 길이 있다.


이번 연말에는 어떤 메뉴로 외식을 해볼까, 팁 걱정 없이 외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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