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미국 대학생 패션의 현실
미국 사람이면, LA나 뉴욕에서 보던 사람들처럼 모두가 다 늘씬하고 키 크고, 옷을 잘 입을 줄 알았다. 이건 나의 오산. 게다가 지역 바이 지역- 시골 사람들은 주변의 시선을 전혀 신경을 안쓰는데, 도시 사람들은 엄청나게 신경쓴다. 어떤 게 당신의 타입인가요?
사실 뉴욕 패션은 미국을 대표하지 못한다. 시골에 가야 찐 아메리칸 패션을 느낄 수 있는 법.
서양 문화권의 사람들은 다 비슷한 외모에 뛰어난 패션센스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미국 시골 생활을 시작하며 정말 예상 밖이었던 점 중 하나는 미국 로컬들의 지나치게 수수한 일상 패션이었다. 아무도 패션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은 옷차림이었다. 돌이켜 보니, 학창 시절에 본 패션 잡지나 동아 TV에서 해주던 세계 각지의 패션위크에서 하는 패션쇼에서 보았던 모델들은 미국인이 아니라 대부분 유럽인들이었을 것이다.
미디어를 통해 자주 마주친 미국 패션은 패션 종사자들 혹은 미국 인구의 10%도 안 되는 LA이나 뉴욕 같은 대도시의 단면일 뿐이었다.
내가 대학원 공부를 했던 학교는 미국 깡시골에다가 학부생들 수가 정말 많았다. 그 곳에서 전형적인 미국 대학생 패션을 접하고 띠용했다. 조교로 수업을 하러 갈 때면 백여 명이 넘는 대학생들이 맞춘 듯이 학교 스웻셔츠 (Sweatshirt), 즉 맨투맨이나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아래위 모두 예전 말로 '츄리닝'을 입는 경우도 많아, 마치 모두가 같은 운동복을 입던 중학교 체육 시간이 생각날 정도였다. 아침 수업인 경우엔 자다가 일어나서 온 것만 같은 파자마스러운 차림에 운동화가 기본이었다. 화장을 하는 학생들도 간혹 있기는 했지만, 주로 마스카라로 속눈썹을 강조한 정도이지 한국에서 대학교를 다닐 때처럼 풀메이크업한 학생들은 보기가 어려웠다.
자연스럽게 나 역시 얼굴엔 선스크린과 틴트 정도 바르고 학교를 다녔다.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을 안 해도 되어서 소중한 아침잠을 지킬 수 있었고 무엇보다 편했다. 그 누구도 내 민낯에 대해 언급하거나 패션을 신경 쓰지 않는 게 진정한 프리덤이었다. 더 좋은 점은 정말 아무도 내가 무엇을 입든 "Don't care"라는 것이다.
그냥 나는 나고 너는 너라는 인식이 강한 것 같다.
간혹 내 셔츠가 이쁘다며 칭찬은 해도, 왜 그렇게 입었냐며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미국 사람들의 오지랖도 패션에 대해선 딱히 발동하지 않는다. 그들도 눈이 있기 때문에 꾸밀 때나 본인의 패션에 대해서는 이상한지 이쁜지 엄청나게 신경 쓴다. 하지만 미국 시골 사람들은 남들 눈에 예뻐 보여서 라던지, 눈치를 보며 그렇게 입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마음에 드는 옷을 입는다. 개인의 선택과 다양성을 존중하려는 문화가 유독 깊게 배어 있어서, 다른 사람의 패션에 대해 앞에서 지적하는 언급은 평소에 들어본 적이 없다. 여기도 사람 사는 사회라 앞과 뒤는 꽤나 다른 거 같긴 하다.
미국의 대학은 단과 차원의 과티 같은 게 없는데도, 학교 후드티는 학부생들의 교복이다.
한국에서도 패션 아이템으로 종종 보이는 미국 대학교 로고가 달린 스웻셔츠 (Sweatshirt)와 후디 등은 단과 대학이나 전공, 학교 스포츠팀 종목에 따라 종류도 다양하고 대학교 기념품샵에서 판매한다. 언더아머 (Under Armour)나 챔피언 (Champion)등의 브랜드에 따라 스타일이 꽤 달라 고르는 재미도 있다. 후드티 하나에 60-80불 (한화 8-10만 원 선) 정도는 기본이라 의외로 저렴한 편은 아니다. 재킷류는 20만 원도 넘는다. 그런데도 색깔 별로 스웻셔츠를 구매하는 학생들이 많다. 때문에 캠퍼스에서 학교 로고 스웻셔츠를 입고 학생증과 키가 주렁주렁 달린 랜야드 (Lanyard)를 목에 건 학부생들을 아주 쉽게 마주칠 수 있다.
간혹 미식축구 (Football)이나 농구 같은 학교 간 경기가 있는 날이면 선착순으로 학교 티셔츠를 나눠주기도 한다.
한국에서 가져온 블라우스나 직장인 스타일 팬츠를 입으면, 나 혼자만 과하게 꾸민, 흡사 꾸꾸꾸의, 당장 데이트를 나갈 것만 같은 복장이 되었다.
이런 분위기이다 보니, 연구실에 갈 땐 전혀 옷을 신경 쓰지 않았다. 알래스카에서 직송한 것 같은 에어컨 바람으로부터 체온을 보호할만한 편한 옷에 운동화를 매치하면 끝이었다 (미국에서는 아직도 18도가 에어컨 기본 온도라서 여름철 실내는 마치 냉동고 같다). 대학교 신입생 때는 힐을 신고서도 아침 수업에 늦지 않기 위해 언덕을 달리곤 했는데, 덕분에 이젠 편한 신발만 찾는 발이 되어 버렸다. 미국물 먹은 나는 민낯을 얻은 대신 구두 신는 법을 잊었다.
한국에 갈 때마다, 입을 일이 절대 없었던 단정한 정장스러운 옷들을 다시 부모님 댁으로 가져갔다. 대신, 에버레인 (Everlane), 메이드웰 (Madewell)이나 제이크루 (J.Crew) 같은 미국 브랜드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코튼이나 울과 같은 천연 소재를 선호하는 내가 애정하는 브랜드들이다. 모두 20-30대에게 인기 있으며 메이드웰은 어반 아웃피터스 (Urban Outfitters)나 아릿지아 (Aritzia)만큼이나 20대가 사랑하는 브랜드이다.
미국에서도 감을 잃고 싶지 않아 인스타로 열심히 한국에서 유행하는 패션이나 헤어스타일 같은 것들을 찾아보곤 했지만, 주변에 아무도 그렇게 꾸미고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점점 귀찮아졌다. 추운 날씨를 피해 종종 몇 주씩 지내던 LA에서는 자유분방한 분위기였다. 본인이 돋보이는지는 신경 쓰지만 타인의 패션엔 그다지 큰 관심이 없어서 있는 옷으로도 충분히 커버 가능했다. 그러다 보니, 몇 년 새 내 옷장은 어쩐지 홈웨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놀러 나갈 때 입기는 애매한 편한 옷들로 가득 차고 있었다.
한국에서 고이고이 가져온 정장 스타일의 재킷과 단정한 검정 구두는 뉴욕에 와서야 다시 빛을 발하게 되었다.
뉴욕에 이사한 뒤 나는 다시 "직장인스러운 옷"을 사기 바빴다. 내가 살던 동네에서 차로 올 수 있는 거리인데 (미국에선 서울-부산처럼 차로 5시간 정도에 갈 수 있는 거리라면 가깝게 편이다), 같은 동부라도 이렇게 다른 건지... 새삼 신세계였다. 여전히 핫한 웨스트 빌리지 (West Village), 소호 (Soho)나 노호 (Noho) 등에 가면 모두가 인플루엔서들처럼 보일 정도였다. 인스타에서 보일만한 힙한 사람들이 넘쳐난다. 내가 살던 뉴 잉글랜드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고, 뉴요커들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 지를 항상 신경 쓴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회사에 나갈 일이 있더라도 힘주지 않아도 되는 일상이 편하다. 오늘도 나는 운동화를 신고, 청바지를 입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