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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디이 Oct 21. 2023

집순이, 미국 직장 재택근무 3년 차 행복 지수는 업

미국에선 연봉보다 워킹 프롬 홈 (Working From Home)

미국의 회사들은 재택근무라는 개념이 없던 팬데믹 (Pandemic) 이전으로 역행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직장인들은 재택근무가 얼마나 달콤한지 맛보았다. 다시 Into the office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회사를 설득할 수 있을까?


오피스에서만 일하다 보면 막상 나갈 일도 없는 직장 내 야외 정원, 계절감을 느끼지 못하는 게 제일 아쉬웠었다


이젠 주 5일 근무의 삶이 너무나 당연하듯이 재택근무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2019년 팬데믹 이후 한국과 미국을 포함한 세계의 업무환경은 바뀌었다. 유럽은 이미 올해 여름부터 시범적으로 재택근무를 3개월간 시행하고 완전히 재택근무를 도입하기 시작한 회사들도 있다.


미국인들도 연봉과 함께 재택근무를 이직의 이유로 꼽기도 하고 회사와 입사 조건을 논의할 때 선호하는 베네핏으로 꼽는다. 마치 우리가 토요일에 학교에 나가고 일하던 때 토요일을 어떻게 쉬냐며 의아해하던 때 같다. 에어비앤비와 같은 회사는 이미 세계 어디에서나 일할 수 있는 자율근무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점차 미국 내에서는 오피스 공실률이 높아지며 대출로 인한 은행 도산의 우려가 생기고, 회사 CEO들은 직원들의 백 투 오피스를 점차 원하고 있다.





    내가 일하는 직장에서도 용어를 변경하여 재택근무보다는 유연근무제라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병원 내 교직원의 직업 만족도와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자원으로 소수의 인원만 매니저의 요청이 있을 경우 엄격한 리뷰를 거쳐 허락한다. 전통적으로 병원이나 캠퍼스 내에서 매일 인 사이트 (In site)로 일하던 패턴에서 근무 시간 또는 업무 위치를 변경하는 것이다. 업무 공간의 유연성이 직업적 의무와 개인적 책임을 모두에 중요한 역할을 미칠 수 있고, 직원의 능률과 동기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택근무 (Work From Home 또는 Remote Work)란?

    재택근무는 정기적으로 사무실 밖에서 일하는 것(예를 들어 재택근무 또는 원격 액세스를 통한 업무)을 의미한다. 업무 환경에 따라 정규직 및 비정규직에 적용될 수 있다. 팬데믹 기간 동안 미국에서는 현장직이 아닌 이상 사회적 거리를 권장하기 위해 재택근무를 최대한 시행했다가 다시 백 투 오피스 (Back to the office) 하는 추세이다.


대부분의 기업과 회사들이 관리자의 선택에 따라서 적합한 업무 책임을 맡고 적절한 능력이 있는 우수한 직원에게 부여할 수 있도록 하지만, 이제 누구에게나 허락되지는 않으며 엄청난 베네핏이라고 여겨진다. 직원이 최근 재택근무를 하길 원한다면, 업무 수행 스케줄과 계획과 함께 보스의 확실한 추천이 있어야 하고 과정도 매우 까다롭다.




좋아하는 도시인 보스턴에서의 한 학기 살기와 줌 (Zoom)으로 비대면 논문 발표를 마친 것은 감사한 기회였다.

    나의 재택근무는 미국에 코비드가 퍼지기 시작한 2020년 3월 이후, 봄학기를 지나 가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가을학기 때는 아예 학교에 나갈 필요가 없었고 졸업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아예 근처의 다른 도시로 이사를 했다. 온라인으로 모든 수업을 진행하였고 학부생들은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 타운이 텅텅 비었다. 나 역시 자연스럽게 이 기회에 다른 곳에서 지내볼까 하는 문득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 버렸다.


보스턴의 찰스 강 위 하버드 대학과 비컨 스트릿을 연결해 주는 윅스 브리지 (John W. Weeks Footbridge)
내가 지내던 보스턴의 서블렛, 온전하게 혼자 살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논문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학기였는데, 디펜스 (Thesis defense)도 줌으로 하게 된 것은 나에게 운이 좋은 일이었다. 영어로 몇십 분을 혼자서 발표하는 일이 당시 너무너무 스트레스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비대면으로 논문 발표를 할 수 있어서 포스트잇을 노트북 화면 옆에 다닥다닥 붙여놓고 혹시 모를 질문에 대비했다. 친구들도 줌으로 내 발표를 지켜볼 수 있어서 힘이 되었고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조교로서 학교 수업에도 참여하고 과제를 채점하는 등의 일은 계속하였는데, 비교적 수월한 수업이었고 줌 수업과 구글 시트 (Google Sheets)를 통한 채점이 이미 보편화되어서 별다른 무리 없이 학기를 마무리했다.


코비드 때문에 예전부터 공부가 좀 마무리되면 하고 싶었던 제주도나 파리에서의 한 달 살기는 무산되었다. 그래도, 뉴 잉글랜드에서 가장 좋아하는 도시인 보스턴에서의 3개월은 첫 온전한 자취 생활이자 평온하고 잔잔했던 경험으로 남아있다. 처음으로 룸메이트없이 사는 생활이 편했는지 이때는 살도 포동포동 쪘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재택근무로 일주일은 밖에 나가지 않아도 거뜬하고 행복하기 만한 집순이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시작된 재택근무는 뉴욕에 잡을 잡으면서 계속되었고 어느덧 재택근무 3년 차가 되었다. 미국에서도 이렇게 오랫동안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환경에 있게 된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재택근무의 좋은 점은 너무 많기 때문에, 하나씩 나열해보려고 한다.


출퇴근 관련


출퇴근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아침에 집을 나서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없다. 기분 좋게 일어나서 여유 있게 아침을 먹고 내 책상으로 가면 된다. 아침 스트레스가 높은 편인 나에게 너무 행복한 조건이다. 차 한잔을 하며 차분하게 모니터를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이토록 평온할 수가 없다.


출퇴근에 드는 대중교통비를 아낄 수 있다. 대략 하루 10불 정도이니 한 달이면 약 200불 (한화 25만 원)을 아끼는 셈이다. 뉴욕 내 지하철은 $3.25이다. 역 내에서 갈아탈 때는 돈을 거의 안내지만 환승 개념이 없어서 역을 나서는 순간 지하철이든 버스이든 추가로 돈을 내야 한다. 뉴저지와 뉴욕을 오가는 경우 차로는 교통체증비 $18이며, 시외버스를 타면 $3.75이다.


옷을 덜 사게 된다. 밖으로 나가는 일이 거의 없으므로 직장용 외출복을 살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옷을 안 사는 것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2번 출근하기 때문에 갈 때마다 똑같은 옷을 입고 가도 별로 알아보는 사람도 없다.


내가 간혹 일하곤 하는 우리 집 식탁 공간. 아늑한 분위기라 일하면서도 기분이 좋다

업무 관련


미팅을 연속해서 몇 시간이나 할 수 있다. 나와 일하는 보스는 여러 프로젝트에 연관되어 있어서 직장에서 미팅을 할 때면 항상 중간중간 급한 질문을 하거나 의견을 묻는 다른 동료들이 있어서 흐름이 깨지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줌으로 미팅을 하면 2-4시간 끊기지 않고 집중하여 결과를 보고하고 피드백을 받는 것이 가능하다.


스스로 문제해결하는 능력이 늘었다. 보스와 같은 오피스에서 일할 때는 나도 모르게 자꾸 문제가 생길 때 질문을 하고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그런데 재택근무하는 날은 최대한 해보고 질문을 메일로 보내거나 회사에 나가는 날 질문을 하기 때문에, 그전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나 스스로 해결을 할 때가 많다.


병가를 내지 않고 일할 수 있다. 코비드에 걸린 후에도 2-3개월 정도 포스트 코비드 컨디션과 캐나다에서 난 산불 먼지로 인해서 컨디션이 급격하게 안 좋을 때가 많았다. 기관지가 원래 약한 편인 나는 감기도 평소보다 심하게 걸리고, 공기 오염도가 높은 경우엔 밖에서 조금만 있어도 기침을 심하게 했었다. 게다가 회사 건물이 오래된 탓에 에어컨이나 난방 조절이 원활하지 않아서 너무 추운 온도로 인해 증상이 더 안 좋아지기도 했다. 집에서 일하면 공기 청정기도 틀고 온도를 내가 조절할 수 있으니 컨디션이 안 좋더라도 데드라인이 급한 일을 어떻게든 할 수 있었다.


인간관계 관련


연구 생활이 길어지며 내향인으로 변한 나에게 사람을 대면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은 그야말로 축복이다. 미국 시골에서 공부를 하고 집 학교만 다니며, 사회적 거리 두기를 2년간 이상 하게 되니 외향에서 내향적인 성향으로 성격이 변화했다.


일할 때 자잘 자잘한 스몰토크를 안 해도 된다. 직장 동료와는 웬만하면 내 사생활을 깊게 공유하거나 사적인 친분을 쌓지 않는다는 나름의 경험적 이유로 인한 기준이 있기 때문에, 일에만 몰두할 수 있는 게 좋다. 물론 직장에 나갈 때 기회가 된다면 캐치 업하고 즐거운 대화를 나눈다.


직장 동료들과의 회식스러운 모임을 가져야 하는 부담이 없다. 나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술을 마시게 되는 사적인 모임에 안 나가도 된다.


나를 초대하지 않더라도 "나는 집에서 일하니까"라고 어느 정도의 정신승리를 하며 딱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되어 마음이 오히려 편안하다.


조용한 아침의 소소한 행복. 아침은 오피스에 나가면 먹지 않고, 집에서 일할 때만 빵이나 국을 간단하게 먹는다
점심으론 직접 만든 토마토 수프를 간단하게 먹기도 한다


스트레스 관리 측면


매일매일 도시락을 쌀 필요가 없다. 간단하게 요리를 해서 점심을 챙겨 먹어도 되어서 무척 편하고, 밖에서 사 먹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 요리를 좋아하고 음식을 중시하는 나에겐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다는 게 만족스러운 부분이다.


카페에서 일하는 기분을 낼 수 있다.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고 집을 편안하고 예쁘게 꾸미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낮에 햇살이 들어오는 오후에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일을 하다 보면 카페에 와있는 것만 같다.


집에서 식물들을 케어할 수 있다. 실내 가드닝은 내가 빠져있는 취미 중 하나인데, 집에서 일하면 잠깐잠깐 쉬는 시간에 식물들을 관찰하고 식물멍할 수도 있고 물을 줄 수도 있다. 희귀 식물도 키우고 있어서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데, 일상 중 잠깐이라도 식물을 챙길 수 있다는 게 엄청난 기쁨이 된다. 이런 작은 일들이 나만의 스트레스 관리 방식이다.

요즘 열심히 키우고 있는 나의 작은 허브 정원. 물을 생각보다 많이 먹는다





연봉이 더 높은 곳으로 이직하고 싶은 마음이 종종 치솟지만, 집에서 일할 수 있기 때문에 만족감이 더 높다.


    완전한 재택근무에서 어느새 병원 정책이 바뀌어 부분 재택근무의 형태로 바뀌었을 때 마치 월급이 깎인 듯이 불안하기도 했다. 세금 보고 핑계를 대며 직원들의 재택근무 현황을 묻는 인사과 직원의 이메일을 받았을 때는 재택근무의 시기가 끝난 것 같았다. 다행히 하이브리드 형식으로 일할 수 있었고, 일주일에 정해진 요일에만 나가서 오피스 근무를 하고 미팅을 하고 있다. 그 미묘한 경계에서 재택근무의 혜택을 받고 있단 사실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며 앞으로 더 많은 회사들이 재택근무에 좀 더 우호적이길 바라본다.


오피스에서도 이런 풍경이 보이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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