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인가 닭고기인가. 오로지 둘 중 하나다. 생선으로 연어도 선택할 수 있지만, 어제 그제 이틀간 물리도록 먹었으니 쳐다도 보지 않는다. 먹거리의 양은 풍부해지고 있지만, 그 다양성은 형편없이 쪼그라들고 있다는 기사를 본 직후다. 다들 장바구니에서 체험하던 현실과 일치하는 내용이라 고개가 끄덕여진다. 마침 유방암을 극복하고 복귀해 생의 의지를 타전하고 있는, 내가 응원해 마지않는 그 기자님이 쓴 기사라 유심히 보았다.
결론은 소고기였다. 옥수수 먹고 자라 마블링과 오메가 6 지방이 풍부한, 그 사료 먹이느라 탄소 소비가 이미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사료 소화하면서 메탄 방귀 뀌느라 온실가스 배출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바로 그 소.
남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5초 정도 내 안을 스쳐간 깊은 고뇌를. 한 근도 못 먹는 연약한 소비자지만 두루두루 짚었다. 소를 먹지 말아야 할 이유는 개를 먹지 말아야 할 이유만큼 차고 넘친다. 내가 한 끼라도 덜먹어야 소고기 수요를 위축시켜 소 사육 두수가 줄어들고 사라지는 밀림도 줄이며, 기후변화도 조금 늦출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도 말이다. 정말 어쩔 수 없이, 이미 잡은 소고기 버릴 수는 없으니 누군가 먹어야 한다면, 항암이 끝난 지 1년 반이 지나가고 있음에도 늘 철분과 비타민 b12와 적혈구 백혈구 모두 항상 모자란 상태에서 영양제를 상복하면서도 어지러워 비틀거리는 내가, 이 연약한 자가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미 받을 복을 다 받은 저 근육질의 사내들 말고.
키오스크의 버튼은 눌리어졌다. 돌이킬 수 없다. 베스트 메뉴란다. 구내식당처럼 다니는 마당이니 어떻게든 한 번쯤은 만나게 되었을 것이라고 위로해 본다. 먹어보자. 푸성귀부터, 고기는 나중에. 맛있다.
미안하다. 사실 점심에도 소고기뭇국을 먹었다. 무슨 세계를 걱정하는 기후변화 사도처럼 떠들어댔지만 점심 저녁 연속 소고기를 먹은 표리부동한 자였다. 설사병에 걸렸던 아내도 회복되자마자 소고기뭇국에 밥을 말아 먹었다. 인류의 식자재 다양성이 위협받는 배경을 파다 보면 승리한 거대 식품 자본의 독식도 있겠지만, 이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간사한 입맛도 한몫했을 것이다. 소고기와 닭고기가 다른 고기 맛을 이긴 것이다.
와중에 마지막 양심은 있었는지 '마이 퍼펙트 비건 레시피'란 문구가 쓰여있는 비장한 식탁보는 점심 식탁에는 깔지 않았다. 깔고 먹은 아침에는 보다시피 육것을 올리지 못했다.실은 공모자임을 자백하는 결국 사뭇 윤리적인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