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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록 May 09. 2021

인천공항도 연착이 되는구나

시작부터 심상치 않았던 몽골 도착기

 




 시간은 정말 화살처럼 빨랐다. J와 함께 몽골을 가자고 말을 모았을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덧 짐을 챙겨 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1월부터 7월까지, 윤종신의 노래 제목처럼 짧지만 길었던 기다림이었다.


 그러나 그 반년 간의 기다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생각지도 못한 기다림은 정작 출국 당일날 도사리고 있었다. 나와 J는 광주에서 거주했기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버스를 타고 인천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의도적으로 비행기표를 늦은 오후로 끊어놨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째는 대한항공을 타기 위함이었고, 둘째는 새벽에 올라가는 것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몽골의 비행기편은 몽골항공을 타고 가는 점심 즈음의 항공편과 대한항공을 타고 가는 저녁 즈음의 항공편이 있었다. 나와 J는 저녁에, 그리고 나머지 네 명은 점심에 타고 가는 여정이었다. 그렇다 보니 둘이 버스를 타고 한창 쿨쿨 자고 있을 때, 다른 아이들은 이미 공항에 도착해서 면세점을 털고 있었다.


폭풍 연착


 그러나 휴게소에서 잠에 깨었을 때, 메신저는 난리가 나 있었다. 본래 1시에 출발했어야 할 비행편이 2시간 연착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인천공항을 적지 않게 이용했지만, 비행기가 연착된 것을 본 적이 없던 나였다. 그래도 조금 있으면 이륙하겠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버스에서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데자뷔를 느꼈다. 아까와 똑같은 상황이 다시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다시 2시간이 연착되었다고 했다. 그러면 예상 이륙시간이 5시라는 건데, 그때라면 나와 J가 출국심사를 마치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나는 신나서(?) 부랴부랴 짐을 부치고 출국심사대로 향했다. 아이들은 화가 잔뜩 나서 로펌(?)을 찾고, 보험사를 찾았다. 황금 같은 연차를 내고 여행을 가는 건데 시작부터 사고가 나니 화가 날 만도 했다. 그러는 사이 출국장에 들어선 나와 J는 아이들을 찾았다.


- 몇 번 게이트야?
- 우리 52번 게이트!
- 52번?? 여긴 200부터... 아...


 그랬다. 몽골항공은 1 터미널, 대한항공은 2 터미널이었다. 기묘한 이야기의 뒤집힌 세계처럼, 우리는 같은 시간에 비슷한 장소에서 서로 닿을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또 연착이 되어서 5시가 넘어서도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각자 면세점을 털면서 시간을 죽였다. 우리의 이륙시간은 7시였으므로 시간이 꽤 있었다. 비행기에 타게 되면 기내식을 줄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에 일단 저녁은 먹지 말고 버티기로 했다. 요즘 향수에 관심이 많아진 나는 향수점을 요리조리 뒤져가며 시향을 하고 다녔다. 그리고 카페에 앉아서 못 다 받은 콘텐츠들을 다운로드하였다. J는 내 핸드폰을 뺏어서 본인이 듣고 싶은 노래를 두 번 세 번씩 받았다. 랜덤 재생하면 듣게 될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얌체였다. 나는 넷플릭스를 통해서 영화 몇 개와 TV시리즈 몇 개를 받았다. 그러나 맨 처음 언급했던 것처럼 이것은 쓸데없는 짓이었다. 다운로드하여 간 콘텐츠는 단 1분도 보지 못한 채로 그대로 귀국했기 때문이었다.


착하게 살아야 했는데


 그러는 사이 여섯 시가 조금 넘어서 단톡 방은 조용해졌다. 아이들이 드디어 이륙을 한 것 같았다. 공항에 도착한 지 무려 7시간 만이었다. 우리도 게이트로 향했다. 가까운 곳에서 기다리다가 사람들이 다 탑승하면 들어갈 요량이었다.


- 응?
흘러가는 영어방송을 붙잡은 J였다.
- 잉? 뭐라고 하는데?


 뭔가 심상치 않은 표정에 나도 귀를 쫑긋하고 들었다. 그러나 영어 공부를 수십 년 해도 뭐라는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이윽고 게이트에서 승무원의 외침이 들렸다. 연착이 되었다고.


 아이들이 연착되어서 공항에 발이 묶여 있을 때, 나는 아이들을 놀렸다. 우리가 먼저 출발할 수도 있겠다고. 역시 사람은 심성을 곱게 써야 하는지 그 화는 우리에게로 돌아왔다. 심지어 인천공항의 대한항공 여객기인데. 연착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사실 몽골항공이 6시간이나 이륙을 하지 못했을 때 어느 정도 눈치를 챘어야 했다. 그 당시 창밖으로 내다본 하늘은 날씨가 너무나도 좋았었기 때문이었다. 날씨 탓이 아니라면 당연히 항로탓이리라고 생각했어야 했다.


한시 세끼


 기내식만을 기다린 우리는 2시간 연착에 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공항 밥이 워낙에 부실하고 비싸기 때문에 제일 저렴한 걸로 골랐다. 샌드위치였다. 아니 근데 그 샌드위치마저도 7천 원이 넘었다. 도둑놈들. 그런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야속하게도 샌드위치는 너무 맛있었다. 적당히 배를 채우고 우리는 다시 게이트로 향했다. 더 이상 면세점에서 놀기도 지쳤고, 그냥 쉬고 있을 요량이었다. 그러나 저 멀리서 승무원이 우리를 보더니 비행편을 물었다. 그리고는 신분 확인이 되자 밀 쿠폰, 즉 식사를 할 수 있는 바우쳐를 주었다. 하하하...


 만 원짜리 밀 쿠폰은 우리가 먹었던 그 식당가에서 쓸 수 있는 것이었다. 만원이면 밥 종류까지도 먹을 수 있는 매우 큰돈이었다. 10분만 참고 늦게 갔어도 7천 원도 아끼고 밥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이었는데. 일찍 일어나는 새가 잡아먹힌다는 말이 어느 정도 사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J와 나는 고민하지 않고 밀 쿠폰을 쓰러 식당가로 다시 향했다. 그리고는 원래 먹고 싶었던 음식을 주문했다. 나는 몽골에 가기 전에 먹고 싶었던 한식, 순두부찌개를 시켰고, J는 얼큰한 짬뽕밥을 시켰다. 순두부 한 개가 통째로 들어간 듯 한 찌개는 꽤나 얼큰하고 부드러웠다. 우리는 샌드위치로 이미 한 끼를 먹었지만, 공짜밥 두 끼를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그리고 배를 통통 두들기며 다시 게이트로 향했다.


두 끼...


 한 번의 연착 이후 항공기는 이륙할 수 있었다. 저녁쯤이 되자 꼬인 항로가 풀린 모양이었다. J와 나는 연착도 되었고, 밀 쿠폰도 주었는데 설마 기내식을 주겠어라는 생각을 하며 앉아 있었다. 언제나 예상은 벗어나듯이, 이륙을 하자마자 승무원들은 분주하게 카트를 밀며 나타났고, 기내식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이 것을 먹기 전에는 잠들지 못할 거라는 메시지를 날리는 것 같았다. 자리가 맨 뒤에 있던 터라 늦게 받기도 했고, 먹고 싶었던 치킨을 못 먹었지만, 게 눈 감추듯 기내식마저도 해치웠다. 세끼였다.


세 끼...


예상과는 많이 달랐던 칭기즈칸 공항


 인천에서 몽골까지는 약 3시간에서 3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연착이 되어 늦어져서 그랬는지, 3시간 30분으로 예정되어 있던 비행은 어느새 3시간으로 단축되어 있었다. 기내식을 먹고 영화 한 편을 보니 어느새 몽골 상공에 근접해 있었다. 창가 쪽에 앉아 밤의 울란바토르를 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가운데 자리에 앉아서 볼 수 없었다. 기장님은 운전을 매우 잘하셔서 안정적으로 착륙하셨다.



 첫 발을 내디딘 칭기즈칸 공항은 생각보다 작고 아담했다. 칭기즈칸의 이름만큼이나 크고 웅대할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마치 어릴 적 많이 봐왔던 고향의 버스 정류장 같은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봐왔던 샤를 드골 공항, 엘 프라트 공항, 칸사이 공항 등과는 전혀 다른 기분이 들었다. 진정한 여행의 시작 같았다. 꽤나 흥분된 채로 몽골인들과 관광객들 사이를 지나 입국장으로 나갔다. 연락을 했던 대로 여행사 사장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우리는 두 명 정도를 더 기다린 후 승합차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사장님은 한국말을 아주 잘하셨고, 숙소는 그리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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