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가 필요한 이유
해외여행은 보통 혼자 가는 편이다. 혼자 하는 여행은 나름의 장단점이 있다. 시간을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쓸 수 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그러나 때로는 외롭고, 때로는 심심하다. 밥을 먹기도 쉽지 않으며, 감정을 공유할 사람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여행을 혼자 가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두 개의 장점이 나에겐 정말 소중하기 때문이다. 미술관을 좋아하고, 골목길을 돌아보는 것을 좋아하며, 계획도 없고 지도도 없이 아무렇게나 걸어보는 나의 여행 스타일은 누군가와 함께 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하는 여행에서는 내 여행 스타일을 철저히 포기해야 했다. 그 편이 서로를 위해서 좋았다.
개인적으로 여행이라는 것은 새로운 장소를 만나는 것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서 더 큰 의미가 있고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언제나 혼자 여행을 떠나서 동행을 구하곤 했다. 일상에서의 바운더리는 이미 정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주변을 이루는 사람들은 변하지 않고 항상 그대로 있다. 오래되어서 편하고 좋지만, 그만큼 새로운 세상을 접하기는 힘들다. 그러한 한계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나는 여행을 떠났다. 평소에 만나기 힘든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색다른 이야기와 생각을 듣게 되었다. 그것은 나의 사고를 확장시키고 인간관계를 넓혔다. 그래서 나는 혼자 가는 것에 익숙하고, 혼자 가는 것을 좋아하고, 또 혼자 가고 싶어 했다.
혼자 갈 수 없는 곳
그러나 몽골은 다소 독특한 여행지다. 인터넷이 터지지 않는 너른 평원과 협곡을 가이드 없이 갈 수 없기 때문에 가이드를 구하는 것이 필수이며, 동행을 구하면 잠자는 시간까지 하루 종일을 같이 있어야 하는 곳이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철저히 배제되는 곳, 마음이 안 맞기라도 한다면 여행이 통째로 망쳐지는 곳. 그렇다고 친한 사람들끼리만 가기에는 내가 처한 환경상 쉽지가 않았다. 직장인들끼리 일주일 넘게 시간을 맞춰 휴가를 내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크루를 구해야 했다.
일단 한 명은 이미 구해져 있었다. 나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같이 나온 친구 J이었다. J와는 예부터 오지여행 파트너로서 힘든 시절을 동고동락해왔었다. 한겨울에 소백산 정상에 같이 올랐다가 조난을 당할 뻔했고, 제주 해안도로 일주를 자전거와 오토바이로 두 번이나 돌았다. 천문 동아리만 십 년째 활동해 별자리 전문가이며, 나에게 별 사진 찍는 법을 알려준 친구였다. 더군다나 등산이나 러닝을 좋아하는 활동적인 친구였기에 몽골 메이트로도 딱이었다. 원래는 J와 아이슬란드로 오로라를 보러 가자고 수년 전부터 노래를 불렀으나, 바닥에 돈을 뿌리고 온다는 소문을 듣고서는 일단 몽골로 틀었다. 아마도 아이슬란드는 몇 년 뒤에 갈 것 같다.
동행은 역시 카페에서
일단 두 명이 완성이 되었으니, 세네 명만 더 구하면 되었다. 보통 몽골 여행을 위해서 다섯에서 일곱 명 정도의 크루를 만드는 것이 정석이었으나, 일곱 명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느낌상 대여섯 명이 딱 맞는 것 같았다. 평소에는 카페에서 먼저 글을 올려 크루를 구하는 성격이었지만, 몽골은 왠지 이미 만들어져 있는 크루에 합류하고 싶었다. 아무래도 나이를 차츰 먹으면서 책임에서 멀어지고 싶었기도 했고, 준비를 할 여유가 많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몽골 카페를 뒤지던 중 일정이 딱 맞는 크루를 발견했다.
JH와 DS라는 친구였다. 나이대도 우리와 비슷하고, 딱 봐도 회사를 다니는 듯했다. 다 같이 직장인들이면 뭔가 마음이 쉽게 통하기도 할 것 같았고, 기왕이면 나이의 스펙트럼이 좁았으면 했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고 했고, 워낙에 활동적이며 유쾌하니 함께 하는 것에 대해서 걱정 말라고 적혀 있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크루를 많이 구하다 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곤 했는데, 그중에서도 조금은 꺼리게 되는 사람이 얹혀가려는 사람들이었다. 뭔가 주도적으로 이끌거나 준비하지 않고 몸만 맡기려는 사람이 있는데, 그럴 경우에는 배제를 하곤 했다. 딱히 좋은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JH와 DS는 딱 봐도 적극적이고 활발한 친구들 같았다. 나는 고민할 것 없이 쪽지를 날렸다. 답장이 오면 대화를 조금 나눠보고 크루에 합류할지 말지를 결정할 참이었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이미 단톡 방이었다. 크루를 모은 JH가 바로 카톡방에 초대해버렸기 때문이었다.
둘은 밝고 착했다. 그리고 낯을 가리지 않았으며, 유쾌했다. 비속어를 거침없이 날렸으며, 술을 고래처럼 마셨다. 뭐랄까, 친해지기에 얼마 걸리지 않았달까. 둘은 같은 대학교 같은 과에 입학하면서 단짝이 되었고, 근 십 년 간 같이 여행을 다녔다고 했다. 서로 모를 것이 없는 사이였다. 가만 들어보니 둘은 몽골이라는 여행지를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몽골행 티켓을 이미 끊었다고 했다. JH의 여행은 숙소 지향형, DS의 여행은 음식 지향형이었다. JH는 무조건 숙소의 컨디션을 제1 조건으로 치는 여행 스타일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몽골은 절대 JH의 목적에 맞는 여행지는 아니었다. DS는 먹는 것에 살고 먹는 것에 죽는 오로지 먹기 위해 여행하는 사람이었는데, 몽골의 음식은 그저 양고기, 양고기, 양고기였다. 게다가 가이드가 시종일관 음식을 해주고, 음식점을 데려가는 투어였기 때문에 따로 맛집을 찾아다닐 수도 없었다. DS에게도 몽골은 전혀 맞지 않는 여행지였던 것이었다. 그런데도 둘은 뭔가에 홀리듯이 몽골을 향했다. 덕분에 즐거웠지만.
그리고 우리는 두 명을 더 모집했다. 몽골 경험자인 HS와 사고뭉치 막내 YG이었다. HS는 팔뚝에 타투가 매우 인상적인 친구였다. 작년에 몽골을 이미 다녀왔지만 그때 못해본 것들이 마음에 걸려 다시 몽골을 간다고 했다. 락을 좋아하고, 흥이 넘치는 독특한 아이였다. YG는 우리보다 한참 어린 대학생이었다. 용감하게도 어린 나이에 몽골을 택했고, 우리를 만났다. 신념이 강하고 생각이 깊지만 서툴고 거친 아이였다. 그럼에도 속정이 깊은 그런 아이였다.
그렇게 모인 여섯 명
그렇게 여섯 명이 다 모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처음에는 어색하고 서먹했다.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여행지에서의 동행은 사전에 어떤 컨택 없이 현지에서 만나고 현지에서 친해지고, 현지에서 헤어졌었다. 그러나 몽골은 여행의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 해야 했다. 그래서인지 크루를 모은 JH는 고맙게도 사전모임을 두 번이나 추진했다. 맨 처음 크루가 형성되었을 때 인사차 한번, 비행기를 타기 한 두 달 전에 양고기 예습을 위해서 한 번. 처음에는 그저 자기소개하고, 각자 어떤 여행을 원하는지만 공유했지만, 두 번째 만남에서는 서로 말을 놓고 조금은 가까워졌다. 그러나 이러니 저러니 해도 현지에 닿자마자 우리의 벽은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역시나 여행지는 친밀도가 높아지는 어떤 결계가 쳐져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