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에서야 되돌아보는 나의 현주소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어느덧 추석 연휴가 다가왔다. 본래 연휴가 다가오면 어느 곳으로 여행을 떠날지 계획을 세우거나, 집안 어르신을 뵈러 갈 계획을 세우곤 했다. 하지만 올해는 작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 상황 때문에 많은 사람이 집에 머무른다고 했다. 나도 그랬다. 시가에서는 집 근처 절에서 차례를 지내니 올 수 있으면 오라고 하셨고, 본가에서는 위험하니 지역 이동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하시며(나와 같은 생각이라 역시 우리 부모님답다고 생각했다) 다음에 상황이 좀 나아지면 오라고 하셨다. 그렇게 얻어진 5일의 휴일! 이 휴일이 지나면 9월도 거의 끝물이라는 생각을 하는 찰나,
'아니 그렇다면 이번 퇴사까지는 100일도 남지 않았네!'
이번에 다니고 있는 회사는 11월까지 계약되어 있다. 12월부터는 또다시 취준생(이라고 쓰고 백수라고 읽는다)의 신분이 될 예정이다. 겨울을 맞이해서 베짱이 시즌이 오는 것이다.
사실 놀랍지 않다. 매번 이랬으니까.
나는 서른 중반이 될 이 나이까지 한 번도 정규직을 해본 적이 없다. 처음에는 안 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못한 것 같기도 하고.. 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나는 9년 동안 계약직으로 근무했다.
9년 동안 나는 총 아홉 개의 직장을 다녔다. 직장마다 다닌 기간은 적게는 3주, 길게는 1년 6개월.
그래서 내 꿈은 매우 소박하다. 2년 이상 다니면서, 4대 보험에 가입해주고, 최저 시급 이상은 주는 곳이다. 아, 더 중요한 것 하나가 빠졌다. 눈치 보지 않고 연차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물론 병가도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무 기본적인 조건인가? 그런데 이 생태계는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그럼 내가 무슨 일을 했냐고?
넓게 문화예술계라고 말해두겠다. 내 최저 월급은 40만 원이었고 최고 월급은 200만 원 초반대였다(아, 물론 세전이다. 세후로 계산하면 아슬아슬하게 200만 원을 넘지 못했다). 나는 지방에서 대학을 나와서 학벌 세탁(?)을 위해 서울에 있는 대학원을 졸업했다. 사실 대학원 생활은 너무나 재밌었다. 논문 쓸 때만 빼고. 이때는 순진하게도 졸업만 하면 꽃길이 펼쳐질 줄 알았다.
나는 항상 이곳 저곳 문을 두드리면서 기회를 엿보았다. 매년 한 줄씩 추가되는 이력서를 쓰면서 나름대로 조금씩 경력을 쌓아가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직장을 준비하기 위해서 올해 버전의 이력서를 클릭했다. 이번에 지원할 곳에는 어떤 이력을 골라 넣으면 좋을지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 나는 빛 좋은 개살구였구나.
토막 난 경력들로 내 인생이 서서히 꼬이고 있다는 걸 나만 몰랐던 거구나...
나는 다양한 기관에서 다양한 직급으로 근무했다. 내가 가고 싶은 곳보다는, 일단 날 뽑아주는 곳에 가서 열심히 일했다. 진짜 단어 그대로 '열심히' 일했다. 그게 내 인생의 전부인 것 마냥 앞만 보며 달렸고, 그래서 몸과 마음이 망가지는 것도 몰랐다. 그냥 무조건 회사가 먼저였다. 그리고 이제서야 깨달은 두 가지.
- 회사는 날 책임져주지 않는다(특히나 계약직은 더욱).
- 회사를 그만둔다고 해서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다(하지만 통장은 무너질 수 있다).
나는 이번 직장을 나와서도 계속 이력서를 쓸 것이다. 그리고 어느 회사에 들어가든 또 계약 만료가 다가오기 시작하면 이직을 위한 이력서를 쓰겠지.
그래서 올해는 이력서를 업데이트하면서 내가 지금까지 다녔던 회사들을 하나하나 뜯어보기로 했다. 회사에 다니면서 얻은 것도 많지만, 퇴사하면서 얻은 것도 많았다. 각각의 회사에서 얻은 게 무엇인지, 매번 퇴사하고 무엇을 했는지 되짚어 보기로 했다. 어디에서부터 꼬였는지 모를 내 인생을 풀어낼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품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