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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토끼 Jan 26. 2022

01. 꿈 많던 소녀는 커서...

좋아하는 게 많아도 너무 많았던 아이

나는 좋아하는 게 참 많았다.


그리고 덕질에도  진심인 사람이었다.  덕질은 사람이든 사물이든 경계를 두지 않았는데, 특히 청소년기에는 그룹 신화에  빠져 살았고 나중에 크면 신혜성과 결혼할  있을  알았다. 만화를 무척 좋아해 연습장에 만화를 그려 친구들에게 보여주기도 했고, 영화를 좋아할  마음에 드는 배우가 있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훑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그중 '미술' '영화'라는 카테고리는 항상 나의 주된 관심 영역에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관심은 딱히 특별한 것은 아니었고, 그저 흔히들 좋아하는 문화 예술을   깊게 좋아하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로 밥을 벌어먹는 것이 꿈이었던 나는

만화영화 몬타나존스에 푹 빠져서 초등학교 2학년 때 장래희망에 '고고학자'를 쓰기도 했으며

미술로 여러 번 상을 받고 나서서는 화가를,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쯤에는 만화가를 꿈으로 두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수학이 재밌고 동물이 너무 좋았던 나머지 수의사를 꿈으로 두었으며,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음식이 좋아 푸드스타일리스트가 되겠다며 열심히 음식 사진을 찍어대곤 했다.


이 만화 아시나요? 아시는 분들은 제 동년배이실 것 같습니다만,,

여기서 이상한 점이 눈에 띄시는지?

내가 꾸던 모든 꿈은 직업이라는 명사였다. (큰별 선생님께서 꿈은 동사로 꿔야한다고 하셨는데..!)

이 일이 좋으니 이 일을 함으로써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 뭐지?라는 루트를 통해서 계속 꿈과 직업을 연결시키려고 했던 것.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둔 사람들은 정말 극소수라는 것을 그때는 깨닫지 못했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된 해, 내 인생을 지금까지 끌고 오게 된 그 꿈을 발견했다.

'큐레이터' (역시 명사)


그림이 너무 좋았으나, 이제 와서 그림 공부를 해서 미대를 가긴 어려울 것 같았다(사실 고2에 시작해서 준비하는 친구들도 많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저 그만큼의 용기나 끈기가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직접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림을 내 주위에 계속 둘 수 있는 직업을 찾아보자

 -> 그림을 다룰 수 있으면 되잖아?

 -> 그럼 미술관에 근무하면 되겠다

 -> 미술관에서 작품을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지?

라는 나름 체계적인(?) 생각으로 '미술관 큐레이터'를 목표로 두고 갈 만한 과를 찾아보았다.


고고미술사학과, 미술사학과, 큐레이터학과 등..


생각보다 그 과를 다루는 대학의 수는 적었지만 서울대만 아니라면 해볼 만한 승부였다. 다만 내가 이과생이었다는 게 장벽이라면 장벽이었을 뿐.. 당시 이과반으로 편성이 되면 과탐 대신에 사탐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내신은 과탐 공부를 하고, 수능은 사탐 공부를 해야 했다. 내신과 수능을 다른 과목을 선택하면 이중으로 공부해야 했는데, 그렇게 투철한 공부 의지가 없었던 나는 과탐에게 불리하지 않은 점수를 주는 대학을 체크한 후 그곳에 맞춰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수포자 이과생이 되었고, 그해 수능을 쳤고(수능은 망했고) 보험으로 써둔 수시를 급히 준비해 대학교에 들어갔고, 그렇게 내 전공은 '고고미술사학'이 되었다.


그 당시 나는 현대미술을 좋아했기 때문에 미술사학을 전공하면 현대미술, 그중 서양미술을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한국 작가에 대해서도 그리 깊게 알지 못했고, 큰 전시나 교과서에서만 보던 고흐, 마네, 모네 등만 알고 있었으니까. 기대와는 다르게 우리 학교는 동양미술, 특히 불교미술에 집중된 학교였다.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학과명만 보고 대학을 결정했던 나는 1학년 교과과정을 보면서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반수를 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학교를 다니면서 편입을 준비할까? 이 과를 졸업해서 내가 현대미술 전시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앞서 적었듯 그리 수능 공부에 대한 의지가 없었던 나에게 재수라는 선택지는 존재할 수 없었고, 대학을 다니면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학교 밖에서 전시 기획 공부를 하거나, 미술잡지 모니터링 요원으로 활동하면서 그 갈증을 채워나갔다. 보는 시야가 넓어질수록 서양미술뿐만 아니라 한국 근현대 미술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학부생일 때 꽤 오랜 기간 동안 학교 박물관에서 장학생으로 근무하기도 했는데, 이때의 경험이 큐레이터라는 직업에 다시 한번 눈뜨게 해 준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는 졸업 후 대학원 진학을 위해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대학원에서는 내가 원하던 다양한 근현대미술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기 때문에 즐거웠던 기억뿐이다. 서울에 오니 다양한 문화예술을 정말 손쉽게 접할 수 있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같았다. 흥미로운 것이라면 뭐든 경험하고 흡수하길 좋아하는 나는, 서퍼처럼 멋지게 그 파도를 타며 즐겼다. 그 파도 중 하나는 영화였다. 워낙 좋아하는 것이 많았던 나는 사회생활 시작을 미술관이 아닌 영화제에서 하게 된다. 미술관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준비해도 늦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기에...(가진 게 지방 대학교 졸업장뿐인 나를 받아줄 만한 미술관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내 첫 직장은 영화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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