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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토끼 Sep 22. 2021

00. 다시 퇴사하기까지 100일도 남지 않았어

30대 중반에서야 되돌아보는 나의 현주소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어느덧 추석 연휴가 다가왔다. 본래 연휴가 다가오면 어느 곳으로 여행을 떠날지 계획을 세우거나, 집안 어르신을 뵈러 갈 계획을 세우곤 했다. 하지만 올해는 작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 상황 때문에 많은 사람이 집에 머무른다고 했다. 나도 그랬다. 시가에서는 집 근처 절에서 차례를 지내니 올 수 있으면 오라고 하셨고, 본가에서는 위험하니 지역 이동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하시며(나와 같은 생각이라 역시 우리 부모님답다고 생각했다) 다음에 상황이 좀 나아지면 오라고 하셨다. 그렇게 얻어진 5일의 휴일! 이 휴일이 지나면 9월도 거의 끝물이라는 생각을 하는 찰나, 


'아니 그렇다면 이번 퇴사까지는 100일도 남지 않았네!'

이번에 다니고 있는 회사는 11월까지 계약되어 있다. 12월부터는 또다시 취준생(이라고 쓰고 백수라고 읽는다)의 신분이 될 예정이다. 겨울을 맞이해서 베짱이 시즌이 오는 것이다.


사실 놀랍지 않다. 매번 이랬으니까.

나는 서른 중반이 될 이 나이까지 한 번도 정규직을 해본 적이 없다. 처음에는 안 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못한 것 같기도 하고.. 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나는 9년 동안 계약직으로 근무했다.



9년 동안 나는 총 아홉 개의 직장을 다녔다. 직장마다 다닌 기간은 적게는 3주, 길게는 1년 6개월.

그래서 내 꿈은 매우 소박하다. 2년 이상 다니면서, 4대 보험에 가입해주고, 최저 시급 이상은 주는 곳이다. 아, 더 중요한 것 하나가 빠졌다. 눈치 보지 않고 연차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물론 병가도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무 기본적인 조건인가? 그런데 이 생태계는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그럼 내가 무슨 일을 했냐고?

넓게 문화예술계라고 말해두겠다. 내 최저 월급은 40만 원이었고 최고 월급은 200만 원 초반대였다(아, 물론 세전이다. 세후로 계산하면 아슬아슬하게 200만 원을 넘지 못했다). 나는 지방에서 대학을 나와서 학벌 세탁(?)을 위해 서울에 있는 대학원을 졸업했다. 사실 대학원 생활은 너무나 재밌었다. 논문 쓸 때만 빼고. 이때는 순진하게도 졸업만 하면 꽃길이 펼쳐질 줄 알았다.


나는 항상 이곳 저곳 문을 두드리면서 기회를 엿보았다. 매년 한 줄씩 추가되는 이력서를 쓰면서 나름대로 조금씩 경력을 쌓아가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직장을 준비하기 위해서 올해 버전의 이력서를 클릭했다. 이번에 지원할 곳에는 어떤 이력을 골라 넣으면 좋을지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 나는 빛 좋은 개살구였구나.

토막 난 경력들로 내 인생이 서서히 꼬이고 있다는 걸 나만 몰랐던 거구나...



나는 다양한 기관에서 다양한 직급으로 근무했다. 내가 가고 싶은 곳보다는, 일단 날 뽑아주는 곳에 가서 열심히 일했다. 진짜 단어 그대로 '열심히' 일했다. 그게 내 인생의 전부인 것 마냥 앞만 보며 달렸고, 그래서 몸과 마음이 망가지는 것도 몰랐다. 그냥 무조건 회사가 먼저였다. 그리고 이제서야 깨달은 두 가지.


- 회사는 날 책임져주지 않는다(특히나 계약직은 더욱).

- 회사를 그만둔다고 해서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다(하지만 통장은 무너질 수 있다).



나는 이번 직장을 나와서도 계속 이력서를 쓸 것이다. 그리고 어느 회사에 들어가든 또 계약 만료가 다가오기 시작하면 이직을 위한 이력서를 쓰겠지.


그래서 올해는 이력서를 업데이트하면서 내가 지금까지 다녔던 회사들을 하나하나 뜯어보기로 했다. 회사에 다니면서 얻은 것도 많지만, 퇴사하면서 얻은 것도 많았다. 각각의 회사에서 얻은 게 무엇인지, 매번 퇴사하고 무엇을 했는지 되짚어 보기로 했다. 어디에서부터 꼬였는지 모를 내 인생을 풀어낼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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