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저 빅토리아 케이크를 먹고 싶었는데

by 읽고쓰는스캇

며칠 전부터 빅토리아 케이크를 먹고 싶었다.

예전에 아내가 카페에서 판매용으로 몇 번 만들었는데, 그 맛이 정말 좋았다. 촉촉하고 달콤한 시트, 라즈베리 베이스로 만든 새콤달콤한 콩포트, 그리고 고소함과 달콤함이 조화로운 버터크림까지. 그 맛을 다시 맛보고 싶었다.

아내에게 만들어달라고 부탁할까 하다가, 이번 기회에 연습 삼아 아내의 레시피를 받아서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다. 레시피도 있으니 조금은 자신감이 생겼다.



시작은 순조로웠다.

빅토리아 케이크는 처음 만들어보는 거라 아내가 적어 준 레시피를 차근차근 읽었다. 유튜브 영상도 몇 개 봤다. 시트 제작은 조금 어려웠지만, 비슷한 느낌의 디저트를 몇 번 만들어본 경험이 있어서 그럭저럭 할 만했다. 시트를 만들고 틀에 부어 예열된 오븐에서 45분간 구웠다. 혹시나 시트 속이 덜 익었을까 봐 꼬치로 찔러서 확인까지 했다. 시트 냄새는 나쁘지 않았다.


라즈베리 콩포트는 조금 더 쉬었다.

라즈베리 콩포트를 처음 만들 때 아내가 곁에서 지켜봐 준 덕분이다. 그 이후로도 가끔 만들어봤던 터라 나름 몸에 익어 있었다.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버터크림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난이도가 갑자기 올라갔다.

문제는 버터크림이었다. 아내가 버터크림 만드는 걸 곁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다.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라고 했으니 용기 내며 만들기 시작했다. 만들기 전에 아내가 적어놓은 레시피를 한 번 더 읽고, 유튜브에 영상도 다시 봤다.


첫 시작은 괜찮았다. 그런데 물과 설탕을 녹이는 단계부터 조금씩 꼬이기 시작했다. 설탕물이 특정 온도에 도달했을 때 휘핑되고 있는 노른자에 조금씩 넣어주고, 그다음 이즈니 버터를 조금씩 넣어줬다.

레시피대로 따라 했는데 버터크림이 내가 봤던 영상과 달랐다. 분리되는 것처럼 보였다. 휘퍼를 고속으로 돌리면 될 거 같아서 고속으로 돌렸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뒤로하고 AI에게 현재 상황을 말하고 해결책을 물어봤다. 몇 가지 해결책을 받고 그대로 해보니 조금씩 나아지는 듯하다가 상황은 비슷했다. 순간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버터크림을 살리고 싶다.

휘퍼가 돌아가는 소리는 계속 나고, 내 마음은 초조해졌다. 휘퍼가 돌아가는 횟수만큼 내 정신도 돌아가는 듯했다. 어떻게 하면 버터크림을 살릴 수 있을지 고민하던 중, 갑자기 휘퍼를 비터로 바꿔서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모르겠고 그냥 휘퍼보다는 비터가 좀 더 나을 거 같았다.

비터로 바꾸고 돌리고 나니 버터크림 상태가 조금씩 나아졌다. 그렇게 버터크림이 부드럽고 윤기가 돌게 되었다. 조금은 버터크림다운 모습이 되자 작은 스푼을 떠서 먹어봤다. 다행히 맛은 괜찮았다.


시간이 지체되면 버터크림에 문제가 생길 거 같아서 빨리 빅토리아 케이크를 완성하기로 했다. 시트를 반으로 자르고, 아래쪽 시트 위에 버터크림을 올리고, 라즈베리 콩포트도 올렸다. 그 위에 나머지 시트를 올리고 남은 버터크림과 콩포트로 마무리했다. 우여곡절 끝에 빅토리아 케이크는 그럭저럭 모양이 나왔다.



케이크를 잠시 냉장고에 넣어두고 자리에 앉았다. 45분 정도 만든 거 같은데 너무 힘들었다. 예전에 아내가 빅토리아 케이크를 만들 때 예민해하던 모습이 이해됐다. 그리고 아내가 만들어 준 빅토리아 케이크가 여러 번 반복을 통해서 완성됐다는 게 새삼 대단하고 고마웠다.


나의 첫 빅토리아 케이크를 들고 퇴근했다. 아내에게 웃음을 보이며 자랑했다. 아직 먹어보지는 않았다. 맛이 어떨지 궁금하다. 과연 아내가 만들어줬던 맛과 비슷할까? 만약 맛이 별로면 다시 한번 만들어보자. 한 번 만들어봤기 때문에 다음번에는 조금 더 쉽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난 그저 빅토리아 케이크를 먹고 싶었을 뿐인데, 이렇게 긴 여행이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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