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유적지

다산정약용 250주년 특별전시회 자료

by 려원

이곳은 사진자료가 많이 않아 다음과 같이 구성 하기로 한다.


1) 다산 정약용 유적지

2) 다산 정약용 탄생 250주년 특별기념전시회



1)【다산 정약용 유적지】


다산 정약용(1762~1836)은,

1762년 6월 16일 경기도 마재(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적부터 영특해 네 살 때 <천자문>을 배웠고, 일 곱살 때 '산'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지었다.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라니

멀고 가까움이 달라서라네


정약용은 시를 짓는 솜씨뿐만 아니라 사물을 보는 눈도 남달랐다. 1794년 10월 젊고 유능한 관리로서 정조의절대적인 신임을 받았던 정약용은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도 지방을 순찰하였다.


<자료출처:시인의 가슴을 물들인 만남. P160/저자 고광석>



1792년, 정조는 사도세자의 묘소가 있는 수원을 새로운 도시로 만들기 위해 정약용에게 화성의 설계를 명령했다. 다산은 수많은 책을 읽고 연구하여 2년 만에 설계도를 완성하고 공사 실무를 맡았다. 수원 화성은 1794년 1월에 착공하여 1796년 9월에 완공했다. 정약용은 화성을 건설할 때 백성을 강제로 동원하지 않고 임금을 주고 고용했다.


자료:시인의 가슴을 물들인 만남. 저자 고광석



하피첩(霞帔帖)은 귀양지인 전남 강진에서 쓴 글씨첩으로 부인이 보낸 치맛감에 종이를 붙여 만든 것이며, 아들인 정학연과 정학유에게 보내는 편지글 등이 담겨있다. 제작연대는 1810년(순조 10년) 음력 7월과 9월 무렵이며 하피(霞帔)란 중국 당나라 시대부터 신부가 입던 예복이다. 조선 시대에는 비(妃)·빈(嬪)이 입는 법복(法服)이기도 했다. 하피첩이라는 이름은 첩(帖)을 만들 때 사용한 홍 씨의 치마를 비유한 것으로, 직역하면 ‘노을빛 치마로 만든 첩(帖)’이란 뜻이다. 자료출처:다음 백과


(우) 애절양

다산은 유배기간 중 농민들의 생활에 깊숙이 들어가 그들의 애환을 몸으로 느끼며 살았다. 그는 <애절양>을 비롯한 여러 시에서 농민들이 느끼는 슬픔과 기쁨을 사실적으로 노래했다.



정약용이 강진에서 처음 머물렀던 곳은 한 노파의 주막집이었다. 초라한 주막 뒷방에서 의로운 나날을 보내던 다산은 아전의 아이들 몇을 가르치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듣고 열다섯 살 소년 황상이 찾아왔다. 다산에게 배움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황상(1328년(충숙왕 15) ~1382년(우왕 8)은 첫 번째 시를 지었다.


정약용은 1818년 8월에 기나긴 귀양살이를 마치고 고향인 마재로 돌아갔다. 1836년 2월 22일은 다산이 혼인한 지 6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황상은 잔치 날짜에 맞추어 찾아뵙고 인사를 올리기 위해서 열흘 넘게 걸어 스승 집에 도착했다.


다산 정약용은 생애 많은 업적을 남기고 그날 2월 22일 아침 8시에 세상을 떠났다. 먼 친척이었던 홍길주는 부음을 듣고 "수 만권의 서고가 무너졌다"라고 다산의 삶을 한마디로 압축했다.


황상의 삶을 바꾼 다산 정약용은 조선 후기의 위대한 철학자다. 또한 2,500수의 시를 남긴 위대한 시인이다. 다산이 실학사상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한 시인의 마음으로 정치를 한 곳이 바로 곡산이다. 정약용에게 곡산의 백성, 조선의 백성은 또 다른 황상이었다.


다산 정약용에 대해 철학자 도올 김용옥은 다음과 같이 색다른 평가를 했다.


"다산 정약용은 오늘날로 말하면 철학자일 뿐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의 위대한 수학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우리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였다면 영국 옥스퍼드로 유학을 보내 위대한 물리학자로 만들었어야 할 사람이에요."


자료:시인의 가슴을 물들인 만남. 저자 고광석」




2)【다산정약용 탄생 250주년 기념 특별전/천명 다산의 하늘】


당시 천명 다산의 하늘이란 주제로 다산 선생의 250주년 특별전시회가 열렸다.

그해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첫 전시회가 열린뒤 강진군 다산기념관에서 두 번째 전시회가 열렸다.



좌) 다산정약용 특별전시회 관람(중) 강진일보 김기자 님(미래일보. 강진일보외 기사).한 선생, 나, 나의 어린이


우) 지금은 세월 지난 나의 어린이


목민심서 전6권을 먹고 자란. 나의어린이

당시 다산 학술재단에서는 이 만화(목민심서 전 6권)의 원고를 검증했고 본 재단에서는 세계유네스코에서 2012년 다산의 해로 정한 다산 탄생 250주년 기념사업으로 출판하고 싶어 했다.



후에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천명 다산의 하늘이라는 주제로 열린 <다산 탄생 250주년 유물 전시회>에 특별 초청을 받게 되었다. 만화 장르로는 최초라는 예술의 전당 유리 갤러리 1,2관에서 각계각층의 지도자들을 모신 가운데, 개막식과 김영규 선생님의 목민심서 전 6권 원화가 전시되며 출판기념회를 갖게 되었다.



이 만화를 어린이부터 읽을 수 있도록 만든 이유는, 어린 시절부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배우고, 사회의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청소년에게는 다산의 愛民 사상을 자연스럽게 학습하는 효과를 얻고자 하여,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역군으로 세우는데 기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또한 부모들은 어떻게 자녀를 올바르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지침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만화이다.


만화 목민심서(저자.김영규 선생님) 유리관 갤러리 전시


새로 거른 막걸리 젖빛처럼 뿌옇고

큰 사발에 보리밥,높기가 한 자로세

밥 먹자 도리깨 잡고 마당에 나서니

검게 탄 두 어깨햇볕 받아 번쩍인네

옹해야 소리 내며 발맞추어 두드리니

삼시간에 보리 낟알 온 마당에서 가득하네

주고받는 노랫가락 점점 높아지는데

보이느니 지붕 위에 보리 티끌뿐이로다

그 기색 살펴보니 즐겁기 짝이 없어

마으미 몸에 노예 되지 않았네

낙원이 먼곳에 있는게 아닌데

무엇하리 벼술길에 헤매고 있으리오 「정약용.보리타작(1801)」


다산이 1801년에 쓴<보리타작>은 노동속 에서 삶의 보랍과 즐거움을 찾는 농민들의 모습을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게 묘사한 작품이다.농민들은 즐겁고 흥겨운 마음으로 보리타작에 열중한다. 시적 화자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육체와 정신이 조화를 이룬 삶의 긍정성을 깨닫는다.


「자료출처:시인의 가슴을 물들인 만남.저자 고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