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정약용 250주년 특별전시회 자료
1) 다산 정약용 유적지
2) 다산 정약용 탄생 250주년 특별기념전시회
1)【다산 정약용 유적지】
하피첩(霞帔帖)은 귀양지인 전남 강진에서 쓴 글씨첩으로 부인이 보낸 치맛감에 종이를 붙여 만든 것이며, 아들인 정학연과 정학유에게 보내는 편지글 등이 담겨있다. 제작연대는 1810년(순조 10년) 음력 7월과 9월 무렵이며 하피(霞帔)란 중국 당나라 시대부터 신부가 입던 예복이다. 조선 시대에는 비(妃)·빈(嬪)이 입는 법복(法服)이기도 했다. 하피첩이라는 이름은 첩(帖)을 만들 때 사용한 홍 씨의 치마를 비유한 것으로, 직역하면 ‘노을빛 치마로 만든 첩(帖)’이란 뜻이다. 자료출처:다음 백과
다산은 유배기간 중 농민들의 생활에 깊숙이 들어가 그들의 애환을 몸으로 느끼며 살았다. 그는 <애절양>을 비롯한 여러 시에서 농민들이 느끼는 슬픔과 기쁨을 사실적으로 노래했다.
정약용은 1818년 8월에 기나긴 귀양살이를 마치고 고향인 마재로 돌아갔다. 1836년 2월 22일은 다산이 혼인한 지 6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황상은 잔치 날짜에 맞추어 찾아뵙고 인사를 올리기 위해서 열흘 넘게 걸어 스승 집에 도착했다.
다산 정약용은 생애 많은 업적을 남기고 그날 2월 22일 아침 8시에 세상을 떠났다. 먼 친척이었던 홍길주는 부음을 듣고 "수 만권의 서고가 무너졌다"라고 다산의 삶을 한마디로 압축했다.
황상의 삶을 바꾼 다산 정약용은 조선 후기의 위대한 철학자다. 또한 2,500수의 시를 남긴 위대한 시인이다. 다산이 실학사상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한 시인의 마음으로 정치를 한 곳이 바로 곡산이다. 정약용에게 곡산의 백성, 조선의 백성은 또 다른 황상이었다.
다산 정약용에 대해 철학자 도올 김용옥은 다음과 같이 색다른 평가를 했다.
"다산 정약용은 오늘날로 말하면 철학자일 뿐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의 위대한 수학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우리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였다면 영국 옥스퍼드로 유학을 보내 위대한 물리학자로 만들었어야 할 사람이에요."
우) 지금은 세월 지난 나의 어린이
당시 다산 학술재단에서는 이 만화(목민심서 전 6권)의 원고를 검증했고 본 재단에서는 세계유네스코에서 2012년 다산의 해로 정한 다산 탄생 250주년 기념사업으로 출판하고 싶어 했다.
새로 거른 막걸리 젖빛처럼 뿌옇고
큰 사발에 보리밥,높기가 한 자로세
밥 먹자 도리깨 잡고 마당에 나서니
검게 탄 두 어깨햇볕 받아 번쩍인네
옹해야 소리 내며 발맞추어 두드리니
삼시간에 보리 낟알 온 마당에서 가득하네
주고받는 노랫가락 점점 높아지는데
보이느니 지붕 위에 보리 티끌뿐이로다
그 기색 살펴보니 즐겁기 짝이 없어
마으미 몸에 노예 되지 않았네
낙원이 먼곳에 있는게 아닌데
무엇하리 벼술길에 헤매고 있으리오 「정약용.보리타작(1801)」
다산이 1801년에 쓴<보리타작>은 노동속 에서 삶의 보랍과 즐거움을 찾는 농민들의 모습을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게 묘사한 작품이다.농민들은 즐겁고 흥겨운 마음으로 보리타작에 열중한다. 시적 화자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육체와 정신이 조화를 이룬 삶의 긍정성을 깨닫는다.
「자료출처:시인의 가슴을 물들인 만남.저자 고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