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문학관

그에게로 안겨서....

by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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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을 펼쳐 들고 그에게로 향했다.

비 오는 날의 문학기행은 처음이었다.

먼지를 씻겨 내려간 비로 인해 이날 박경리 문학공원은 어느 때 보다 산뜻함을 맞이할 수 있었다..

우산 위로 이슬비가 내려앉으며 비의 냄새와 함께 그의 향기가 스며 오기 시작했다.

박경리 문학공원 이날이 세 번째 방문기였다.

겨울날 풍경은 쓸쓸해 보였다. 그러나 그는 따스했다.

지난 그해와 같은 계절의 두 번째 방문.

여전히 그의 숨결은 푸른 자연에서 온것 같은 향수같은 냄새가 난다.2023.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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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경리 문학공원 입구 2)박경리 생가로 들어서는 입구 3)박경리 생가 마당 한가운데


1). 박경리 문학공원 입구 오른쪽에 있는 분수대가 하늘을 향해 마음껏 날개를 펼쳤고,

2). 나무 기둥을 감싼 잎새들 위의 스피커 에선 개구리 소리가 여름날을 한창 즐기고 있었다.

3). 나는 그의 생가 마당 한가운데 들어서서 그가 살아있을 그날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게 젖어서:그를 생각하면 흙냄새가 떠오른다. 흰색 목장갑을 끼고 호미를 든 그의 모습.

여름날 마당 한가운데서 빨간 고추를 햇볕에 말리던 그의 모습이 눈을 감고 있으니 나의 목젖까지 잠겼다.목젖에 잠긴 그의 숨을 깊게 들어 마셨다.

그의 숨이 내 안으로 깊이 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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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하면

바늘로 손톱 빝 찔러서 피 내고

감기 들면

바쁜 듯이 뜰 안을 왔다 갔다

상처 나면

소독하고 밴드 하나 붙이고


정말 병원 에는 가기 싫었다

약도 죽어라고 안 먹었다

인명재천

나를 달래는 데

그보다 생광스러운 말이 또 있었을까


팔십이 가까워지고 어느 날부터

아침마다 나는

혈압약을 꼬박꼬박 먹게 되었다

어쩐지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허리를 다쳐서 입원했을 때

발견이 된 고혈압인데

모르고 지냈으면

그럭저럭 세월이 갔을까


눈도 한쪽은 백내장이라 수술했고

다른 한쪽은

치유가 안 된다는 황반 뭐라는 병

초점이 맞지 않아서

곧잘 비틀거린다

하지만 억울할 것 하나도 없다

남보다 더 살았으니 당연하지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 자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박경리 산다는 것 전문」 박경리 유고집(2008) 버리고 갈 것만이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20230529_110345.jpg 박경리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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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문학관 내(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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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어느 한 곳을 주시하며 미소를 짓고 있을 때

나도 그를 한참 바라보았다.

미소 속에 그의 생각은 무얼 담고 있었을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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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선생님께서 생전 즐겨 입으시던 옷(좌)

생전 사용하셨던 흙 묻은 흰 목장갑과 호미 그리고 모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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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찾아오는 느낌

그릇 속에 들앉은 하나의 생물이 돌아 눕는다

껍질 속에 들앉은 굴의 속살이 파닥인다

느낀다

생체의 숨소리 전율

하늘에서 바다에서 땅 위에서

아아 그 얼마나 많고 많은 생령들

구시렁거리며 불안해하는 소리 들린다

파도 소리 바람 소리 장작 타는 냄새


「박경리 한밤중 전문」 박경리 유고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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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밑으로 내려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 사진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진으로 익명의 사진작가가 찍었다고 한다.

그의 영정사진으로 사용했던 사진.

우리에게 그의 모습은 아직도 그날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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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필사본 기증(우)


마음 바르게 서면

세상이 다 보인다

빨아서 풀 먹인 모시 적삼같이

사물은 싱그럽다


마음이 욕망으로 일그러졌을때

진실은 눈멀고

해돠 달이 없는 벌판

세상은 캄캄해질 것이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욕망

무간지옥이 따로 있는가

권세와 명리와 재물을 쫓는자

세상은 그래서 피비린내가 난다 「박경리.마음 전문」 박경리 유고집.버리고 갈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