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사와 심우장

by 려원

1)만 해 한용운의 심우장


길상사와 심우장은 자료 쓸 것을 예상 못하고 많이 남기지 못했다. 하여 두 군데를 함께 쓰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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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만해 한용운 선생의 심우장에서는 그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8월 이면 만해통일문학축전이 열린다. 이곳에서 매년 초대가 오는데 몇 번 못 간 기억이다. 한용운 선생의 생가는 좁은 언덕길을 따라 오르게 된다. 심우장은 지대가 높은 곳으로 아마도 성북동의 하늘을 훤히 바라보며 글을 쓰기 위해 높은 지대를 택하셨다는 것으로 기억된다.


이곳 마당에서 전망을 살피니 역시나 앞산이 보이고 아래가 보이고 하늘이 보이고 주변의 모든 풍경을 한눈에 모두 담을 수 있어서 글쓰기에는 최고 인듯했다. 같은 서울 하늘이지만 성북동은 도심 복판이 아니어서 왠지 상쾌한 공기가 흐르는 느낌이 드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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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은 1879년 8월 29일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났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키도 작고 몸집도 작았지만 머리가 총명했던 한용운은 다섯 살 때 남들은 몇 달씩 걸려야 뗄 수 있는 천자문을 단 며칠 사이에 줄줄 외웠다. 기억력뿐만 아니라 이해력도 좋아 글의 내용을 깊이 이해하는 동시에 비판할 줄도 알았다. <논어><맹자><시경><서경><주역> 같은 책들을 거뜬히 소화해 냈고 아홉 살 때는 어른들도 읽기 어려운 <서상가>를 독파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자료:시인의 가슴을 물들인 만남. 고광석 p260


시인이며 문학평론가였던 송욱은 만해 한용운을 "사상, 행동, 예술"이 모든 면에서 절세의 천재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세계에서 그와 비슷한 인물이 있는 것일까? 간디가 그와 같은가? 간디는 독립투사였지만 시인은 아니었다. 타고르가 그와 비슷한가? 타고르는 시인이지만 독립투사는 아니다. 그러면 만해는 간디와 타고르를 합쳐놓은 것과 비슷한 인물인가> 설령 간디와 타고르를 합쳐보아도 [불교대전]의 저자와 같은 석학이 나오지 않음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라고 격찬했다. 자료:시인의 가슴을 물들인 만남. 고광석 p259




2) 길상사


만해 한용운 선생의 심우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길상사가 있다. 몇 분 걷다 보면 이곳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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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은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1918년에 백석은 오산소학교에 입학했는데 오산학교는 민족주의적인 학교로 유명하였다. 1924년에는 오산소학교를 졸업하고 오산고보에 입학했다. 백석은 오산고보에 다닐 때 오산학교의 선배 시인인 김소월을 매우 선망했고, 문학에 깊은 고나심이 있었으며 영어에 소질을 보였다.


자료:시인의 가슴을 물들인 만남. 고광석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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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은 1936년 1월 20일 시집, 사슴. 을 100부 한정판으로 발간하였다. 시집에는 1919년 3.1 운동 때 독립선언서에서 서명한 민족대표를 상징하기 위해 시를 33편 수록하였다. 시집을 읽은 선배 시인 정지용은 "백석의 시는 우리 시단에 던진 폭탄이다"라고 평가했다.


신경림 시인은 백석의 첫 시집 <사슴>이 준 감동을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직도 <사슴>을 처음 읽던 흥분을 잊지 못하고 있다. 실린 시는 40편이 못 되었지만 그 감동은 장편소설 열 권을 읽은 것보다도 더 컸다. 저녁밤도 반 사발밖에 먹지 못했으며 밤도 꼬박 새웠다. 그 뒤 <사슴>을 가방에 넣고 다니며 틈나는 대로 꺼내 읽곤 했으니, 실사의 그것은 내가 시를 공부하는 대 교과서가 되었던 셈이다.

.............. 지금도 서슴없이 내 시의 스승으로 먼저 백석을 댄다."


자료:시인의 가슴을 물들인 만남. 고광석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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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을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으로 간직하며 살던 김영한(자야)은 1997년 창작과 비평사에 2억 원을 기부하여 백석문학상을 제정한다. 죽기 열흘 전 자야 김영한은 "그 사람 어디가 그러게 좋았어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1,000억이 그 사람의 시 한 줄만 못해"라고 대답했다. 생전에 김영한은 백석의 생일인 7월 1일이 되면 하루 동안 음식을 임대 대지 않았다. 사랑하는 연인 백석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을 그렇게라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노년의 자야는 백석의 시를 조용히 읽는 게 생의 가장 큰 기쁨이었다. 자야가 죽는 순간까지 그리워했던 백석은 외롭고 높고 쓸쓸한 삶을 살다가 1996년 1월 7일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 등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게 하신 것이다.


자료:시인의 가슴을 물들인 만남. 저자. 고광석 p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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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 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 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 셔츠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다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 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맨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 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 가의 나지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 앉아 대굿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여 어느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길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승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잠'과 도연명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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