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대구 촌놈 소꼴 뜯어로가자."
초등학교, 그때는 국민학교였다. 여름방학을 맞아 할머니 댁에 가면 어릴 적 친구들이 소를 몰고 가며 나를 부르는 소리다. 풀을 담는 꼴망태를 메고 소를 몰고 같이 산으로.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농사일을 그만둔 할머니 댁에는 소가 없었다.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소를 모는 일은 재미다. 어릴 적에 아버지 직장을 따라 대구로 온 나는 시골이 낯설다. 나는 호기심, 개구리 무서워하는 대구 촌놈 놀리는 친구들은 재미. 소는 풀을 뜯고 친구들은 풀을 벤다. 망태에 꼴이 차면 그제야 신나는 물놀이. 내게 그것은 아름다운 추억이다. 그들에게 그건 일! 그들이 소에게 들이는 정성은 상상 이상이다. 아침마다 사람 밥보다 소죽을 먼저 끓였다. 그들에게 소는 농사의 도구이자 가장 큰 재산이었다. 우골탑! 소 팔아서 대학 시킨다는 풍자. 상아탑은 우골탑. 딸의 말을 빌리자면 역찢남의 추억담! 당시 대구는 대한민국의 3대 도시였다.
아파트가 작아 네 식구가 살기는 많이 불편하다. 저녁 시간. 퇴근 후 화장실 대기하는 딸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한 마디! "좀 큰대로 이사할까!" 의문형이 아니다. 난 은퇴자. 이사가 불가능. 코로나 이후의 한 풍속. 무슨 일을 하던 반드시 손부터 닦는다. 하나뿐인 화장실이 바쁘다.
"뭔 소리.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면 대궐이다. 아빠가 최고다."
경기도 중에서도 집값 비싸다고 소문난 곳이다. 가슴이 뭉클. 35년의 결정체. 누군가 시대의 혜택을 입어 부동산을 장만했다. 맞는 말. 지금은 내 수입으로 이런 집 살 방법이 없다. 도시
화, 산업화 세대들의 삶. "안 먹고 안 입고 살았다." 추억 속의 소 한 마리. 바쁠 땐, 꼭 필요할 때 팔 수도 있는 가장 큰 재산! 그 소의 구실을 하는 현재의 집. 어떤 사람이기에 부동산을 몇 채씩 가질 수 있을까?" 이건 의문형.
"화장실 냄새 안 나나." 아내의 소리에 청소용 솔을 찾는다.
신문 기사 한 토막.
"집은 생필품인데 세금이 웬 말이냐?"
그 기사의 댓글 중 하나. "그럼 집이 생필품이지 사치품이냐?"
어안이 벙벙하다. 지금까지의 내 생각을 다 바꾸어야 하나. 혹시나 싶어 사전을 찾았다. 나! 국어 전공. 사전은 인터넷 사전! 정말 꼰대는 아니라고 자부한다.
재산, 자산, 생필품, 물품!
내 생각이 맞았다. 집은 생필품이 될 수가 없다.
재산은 경제적 가치가 있는 것.
생필품은 생활에 꼭 필요한 물품.
물품은 재산 중 부동산을 제외한 유체물. 따라서 부동산인 집은 생필품이 아니다.
사전 찾기 전의 내 생각. 생필품은 소비재. 집은 재산. 내가 맞았다.
속이 후련하다. 생필품 하나 사기 위해 35년 고생했다면 내 삶이 너무 가치 없다는 생각.
내가 컴퓨터를 사면 소비재가 된다. 반면 PC 방에서 컴퓨터를 사면 자산이 된다.
5년이 넘아가는 내 골동품 노트북! 오늘은 전자랜드나 가볼까!
미국. 특히 LA를 다녀 보면 두 번 놀란다. 공항에서 다운타운 가는 길에 보이는 텐트들. 노숙자들의 보금자리다. 그 반대쪽! 산타모니카 해변의 품위를 드높여주는 요트 선착장. 우리나라에서 보는 고기잡이 배들의 모습과는 반대의 뜻이 담긴다. 미국 부호들의 장난감! 이것이 미국의 민낯이다.
영화 기생충은 박서준이 분한 친구가 기우(최우식)에게 산수 경석을 건네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섬세한 연출로 이름 난 봉준호 감독이 허튼 소품을 사용할 리가 없다는 생각으로 집중하면 그것은 기우의 곁을 떠나지 않으며 그 돌로 중상을 입기까지 한다. 그 산수 경석의 의미는!
가짜 신분증을 소지한 채 찾은 동익의 대 저택. 그 안주인인 연교(조여정)의 인물 묘사. 정원의 테이블 위에 잠든 모습. 기우가 와도 문광이 깨워야 겨우 눈을 뜬다. 그 문광의 동작은 고용주인 연교를 어려워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기우와 연교의 첫 대화. 신분증은 보지도 않은 채. "이딴 서류는 필요가 없다. 내가 가장 믿는 친구의 소개로 왔는데." 그다음에도 기우의 신분을 알아보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는다. 문광의 음식을 그리워하는 동익. 그리고 문광의 빈자리를 바로 충숙으로 메우는 행동. 동익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 사람은 어리석은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건 동익도 마찬 가지다. 모든 일을 운전사인 기택에게 의지 한다. 개연성은 모르겠으나 글로벌 기업의 총수는 운전사인 기택에게 계속 속고만 산다. 살인 현장에서도 그는 운전사만 부르다 그에게 죽임까지 당한다.
기생충의 의미는 숙주에게 해를 끼치는 벌레 외에도 남에게 의지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란 의미도 있다. 봉준호의 주제 진정한 기생충은 과연 누구인가!
밖으로 드러나는 기생충에 가장 가까운 인물은 근세(박명훈)이다. "오늘도 살 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 벽까지 찧는 그의 행동은 숙주의 피를 빠는 인물에 가장 가깝다. 아니 문광이 없으면 밥까지 먹을 수 없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기생충이다. 기택네 가족은 비록 그것이 사기지만 그래도 일이라도 한다.
누가 봐도 두 가족이 기생충이고 동익네 가족은 숙주이다. 숨은 그림 찾기!
동익의 상세한 직업은 나오지 않는다. 그냥 글로벌 IT 기업의 총수로만 나온다. 그럼 기업은 소비자 없이 홀로 돈을 찍어 내는 것일까?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숙주이자 기생충 노릇을 하고 있다. 그래서 모두는 기생이 아닌 공생이어야 한다. 그것이 깨어질 때 오는 것은 파멸!
다음으로 기택이 많이 하는 말 중의 하나가 "계획"이다. 유명한 대사 "아들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걱정마라. 아빠가 다 계획이 있다." 압권은 "현실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무계획이 계획이다."
사실 자신의 계획대로 일이 이루어진다면 동익에게 사기를 칠 일도 반지하 집에 찬 물에 대피소에서 밤을 새울 일도 있을 수가 없다.
동익의 집에서 양주에 노래에 주정에 즐기는 것이 계획이라면 문광의 방문과 근세의 등장. 그리고 홍수! 이것은 현실이다. 홍수 때문에 동익은 여행 계획을 취소하고. 기택의 집은 물바다가 된다. 계획의 틀어짐에 동익과 기정은 목숨까지 잃는다.
수석은 자연의 축소판이다. 계획이 아닌 물 흐르듯 흐르는 자연. 그것은 현실이다. 기우는 수석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을 옭아매는 현실이다. 근세에 의해 머리를 강타당하는 수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기우의 현실이다.
수석을 들고 나오는 근세의 행동은 현실에 대한 극단적인 반항이다. 이 것이 현대의 일그러진 모습이 아닐까? 미국 방문 시 두 번의 조기를 보았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충일에나 걸리는 그 조기. 한 번은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 사건. 다른 한 번은 산타크라리타 고교생 총기 사건. 근세에게 총이 주어졌다면 상상도 하기 싫다. 우리나라는 파괴 대신 자학을 택하는 것이 아닐까. 입에도 담기 싫은 말.
극단적 선택.
요트와 텐트. 우리 기억에 생생한 1992년 LA 흑인 폭동. 당시 한인촌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 따라서 우리 기억 속에 아직도 남아 있다. 흑백 분규로 시작된 폭동이 느닷없이 한인촌 약탈로 변질된 것이다. 같은 도시에 너무나 대조되는 삶의 모습들. 공생이 깨어질 때는 파멸이 온다.
미국의 한 매체가 아카데미상 수상작 중 "기생충"을 가장 앞자리에 놓았다는 기사를 읽었다. 감독조차 수상을 포기한 듯한 말. "아카데미상"은 미국의 로칼 영화제다. 미국인들이 영어로 자막을 읽어야 하는 영화가 이렇게 우수성을 인정받는다는 것은 봉 감독의 현실 묘사가 미국인들의 마음도 움직인 것이다. 다 같이 상생을 생각할 때가 된 것 같다.
딸과의 가족 밴드를 통해본 미국 해변 가의 모습. 손주들이 노 마스크의 친구들과 놀고 있다. 걱정. 물론 딸 내외는 백신 2차 접종까지 완료. 그래도 내 눈에는 마스크 없는 얼굴이 낯설다.
왜일까? 남의 눈을 의식하는 우리나라와 철저히 개인주의 국가인 미국의 차이? 이런 단순한 차이? 아닐 것만 같다. 문화의 차이? 과연 그 문화가 무엇일까?
민족 시인이라 불리는 신동엽은 그의 시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에서
마음속 구름을 닦고 쇠 항아리를 찢으면 티 없 이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다고 노래했다.
또한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서사시 “금강”에서는 이미 우리는 하늘을 보았다고 말한다.
1894년의 고부. 1960년의 4월에 비록 짧은 순간이지만 하늘을 보았다고 이야기한다.
다 아는 역사이지만 1894년의 고부는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나는 곳이다.
1960년의 4월은 4월 혁명을 말한다. 신동엽의 하늘은 우리의 힘으로 찾을 수 있는 곳이다.
가수 밥 딜런은 단순한 가수가 아니다. 그의 노벨 문학상 수상. 처음에는 평화상의 오보인 줄 알았지만 문학상을 확인했을 때 거부감은커녕 누구보다 기뻤다. 평화와 반전의 선봉에 섰던 의식 있는 가수. 우리 세대에서는 이름만 있고 노래는 전혀 들을 수 없는 가수. 그래서 더 신비에 싸였던 인물. 밥 딜런!
그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바람만이 아는 대답”에 나오는 하늘은 인간의 힘으로는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찾아야 사람들은 하늘을 볼 수 있는가? 그것은 불어오는 바람만이 아는 대답이다. “
성급한 일반화일 수도 있지만 서양의 시나 노래에서 직접 하늘을 논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나의 얕은 지식일 수도 있다. 하늘은 인간의 운명을 점지하는 신의 의미가 더 강한 것 같다.
우리는 하느님, 서양은 하나님! 그는 유태인이다.
그의 노래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에서도 “사물이 보이지 않을 만큼 날이 어두워지고, 길고 검은 구름이 몰려와도” 그에 맞설 생각보다도 절망하는 모습이다.
“아델”의 리메이크로 더 유명해진 노래 “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make you feel my love” 에서도 얼굴에 비가 쏟아질 때도 비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따뜻이 안아주는 행동이 있을 뿐이다.
서양의 노래에는 비를 가리는 행동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냥 비가 멈추기를 기다리거나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피하는 행동들이 있을 뿐이다. C.C. R의 노래. “누가 이 비를 멈추어 줄 것인가?”
거울 속의 얼굴에 콧수염이 보기 싫을 정도다.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는 말. 마스크 덕에 젊었을 때 좋아했던 배우 “크라크 케이블”의 흉내를 원 없이 내고 있다. 이 배우는 귀가 크기에 시선을 돌리기 위해 수염을 길렀다는 말이 있다. 나 역시 보통 귀는 아니다.
노력과 순응! 이것이 팬더믹을 대하는 동서양의 대응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