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재빨리 올라탄 젊은 여자분이 자기 층의 버튼만 누른 채 한쪽으로 비켜선다. 뒤따르는 내게는 눈길 조차 주지 않는다. 나 역시 내 할 일만 하고 모서리로. 얼굴은 서로가 벽 쪽으로. 내릴 때는 얼굴도 보지 않고 고개만 까딱. 그리고는 도망치듯 사라진다. 기분 나쁠 법도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다. 코로나의 위력.
매일 샤워를 한다. 그래도 아내는 홀아비 냄새가 난단다. 그래서 더 열심히 샤워. 집 앞 탄천변의 산책길 따라 한참 더울 때 걷기 운동. 땀은 났을 것이다. 모두 마스크 착용. 냄새보다 거리 두기. 노친네! 성희롱 이런 생각도 안 했을 터, 모든 것이 거리 두기!
아침! 컴 앞에서 생각 정리 중, 아내의 장 보기. 책상에서 내려와 휴식 중 잠시 잠이 든 모양이다. 잠결에 문소리와 캐리어 끄는 소리. 깜짝 놀라 벌떡. 재빨리 짐을 날랐다. 가방을 대신한 캐리어도 바닥을 깨끗이 닦아 제 자리로!
라떼는 엄처시하, 공처가 이런 말이 있었다. 아내 무섬증. 요즘은 마포불백. 마누라도 포기한 불쌍한 백수. 이건 농담 삼아하는 말. 아내가 무서운 것은 당연 아니다. 시간이 무서운 거다.
거리두기 4단계! 모든 만남이 다 사라졌다. 남는 것은 시간뿐! 반어법 삼아 하는 말. 시간이 부자인 사람!
은퇴 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기가 있었다.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허파꽈리가 망가졌다는 나는 집 밖을 나갈 수가 없었다. 앉았다, 일어섰다. 누웠다. 잠시 잠들었다 깨면 tv는 혼자 잘도 놀고 있었다. 한 달여 지나니 자가진단 우울증! 마스크 쓰고 정신없이 싸돌아 다녔다. 과유불급! 넘쳐나는 자유는 공포 그 자체였다. 나? 시간에 쫓기던 교사였다. 종소리만 나면 벌떡! 습관은 무서운 거다. 퇴임 후, 음악 소리가 없어도 시간마다 엄습하던 갈 곳 잃은 두려움!
다시 모든 만남이 비대면으로 바뀌었다. 소속감이 없어졌단 말. 사실 나는 비대면 모임은 만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퇴근 후 한 잔 술에 피로를 풀고 집으로. 이게 일상이던 우리 세대는 실감하리라 생각. 너만? 젊은 세대의 이해를 바라는 건 무리겠지.
반려동물이라도 한 마리. 이건 싫다. 실망하더라도 사람이다. 동물? 무척 좋아한다. 너무 좋아해서 생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집에서 셰퍼드 한 마리 키운 기억. 닭뼈를 부수어 준 기억. 개가 그냥 넘기다 목에 걸렸다. 얼시구나! 동네 사람들의 몫으로. 지금 같으면 턱도 없는 소리. 그 기억이 반려동물이란 말 조차 거부하게 만든 것 같다.
오늘은 밴드를 통해 기타반 만남. 강사의 손을 따라 아르페지오 연습. 스트록은 시끄러울 것 같아 옆 집 눈치. 당연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차라리 유튜브로 연습하는 게 낫지.
다시 넘쳐 나는 시간. 코로나야 제발, 빨리, 어서 좀 가자!
“이거 쓰고 가라! 추우면 면역력 떨어진다.”
아내가 내민 것은 등산용 방한 마스크다. 나는 남들보다 허파가 작다. 숨쉬기가 걱정되지만 수술 경력이 있으니 천천히 걸을 각오를 하고 마스크 위에 또 마스크. 위의 마스크는 귀까지 덮고 두께도 바이러스 방지용보다 훨씬 두텁다. 집 앞 강변 산책로 도착. 추위 탓에 자전거 도로는 비었지만 운동하는 분들은 여전들 하시다. 날씨가 추우니 걸음이 평소보다 빨라진다. 8,000보를 걷고 집에 오니 40여분. 평소보다 10여분 빨리 도착. 마침 엘리베이터 점검 중! 12층까지 계단으로. 오늘은 운동량이 많다. 천천히 걷는 중 뒤에 젊은 분. 거리 두기인가? 앞지르지 않는다. 오르막이 힘겨우니 괜히 신경이 쓰인다. 조금 빨리 걸으니 숨이 차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숨 가쁜 것을 느끼지 못했다. 평소에는 마스크 하나도 답답했는데 오늘은 속도를 조금 더 내었건만! 추위는 숨찬 것까지 잊게 만드는 힘이 있는가 생각하며 선두 양보. 이후 날씨가 풀려도 마스크는 두 개씩. 폐활량 운동에 도움!
오늘은 손주들과 통화. 전화가 뜸하다 했더니 벽면에 크리스마스 장식품이 가득. 망할 놈의 코로나땜에 집에만 있으니 종이와 천 공예로 시간을 때웠다는 말. 등교 않는 학교도 3주간 방학을 했단다. 작년에는 함께 트리 장식도 하고 가족 여행도 했는데...
“할아버지 미국 갈까?”
“못 와!”
“할아버지 주사 맞고 와.”
시무룩한 손자와 친구 못 만나는 유치원생인 누나의 대답이다. 백신 맞으면 학교 올 수 있다는 선생님들의 말씀을 믿는 손녀. 걱정이다. 손주들은 영어가 모국어다. 괜히 할마 할빠와 우리말 사용해서 영어 교육에 지장이라도 있으면... 친구들과 뛰어놀아야 할 시기에 할아비 오기를 기다리다니. 다시 한번 욕 나오는 코로나! 걱정 말라는 딸의 말. 친구들을 만날 수는 없지만 화면으로는 서로 통한다는 얘기. 국어 우등상도 받았단다. 여기의 국어는 당연히 영어. 문득 코로나가 모든 것을 삼켰다는 생각. 2020년은 일사다난의 해다.
TV에서 사람들이 사라졌다. 관람의자엔 불만 덩그렇고, 사람들이 등장해도 마스크 때문에 얼굴 구별도 힘들다. 대신 그 자리는 반려동물이란 이름의 동물들이 차지했다. 취향의 차이겠지만 라떼의 눈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것도 있다, “개는 훌륭하다!” 아무리 상징적이라지만 개에게 훌륭하다는 말이 어울리는지? 젊은이들이 동물과 함께 등장하는 프로는 거의 모두가 개를 자식 취급을 한다. “엄마 다녀올게” 가장 성스러운 사랑인 모성애가 개에게도 해당이 되는지? 그래 나는 라떼다!
아예 자연인이라 외치는 프로도 있다. 사람들에게 상처 받고 자연 속에서 홀로 사는 사람들의 얘기를 다루는 프로다. 사람보다 동물들이 더 믿음직하다는 말!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지 말라”는 말까지 있다. 점점 경쟁이 더 심해지는 사회. 대비책이 필요한 시점이란 생각!
퇴근하는 딸의 말. 마스크 쓰지 않은 사람 만나면 섬찟하단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착한 사람들이 더 많다고 믿고 있지만 정말 걱정이다. 조건 반사란 말이 있다. 코로나가 지나고 나면 모두 마스크 쓸 일이 없어질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각박한 세상. 사람 보고 섬찟해진다면!
이 모든 것이 라떼의 기우이기를 두 손 모아 빈다.
늦은 결혼으로 아직 캥거루 남매를 두고 있는 은퇴 백수. 나이와 병력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에 민감한 편이다. 집 앞 강변 걷기 운동과 취미 생활로 하루를 보내는 팔자 좋은 늙은이.
카펫이 깔려 있는 2층 딸네에서 석 달간 생활한 경험. 카펫 탓에 진공청소기 화력이 세어야 하고 계단에 카펫이 깔려 있어 여자가 청소하기 힘들다. 사위가 하던 일. 할 일 없는 내가 대신. 우리 집에 와서도 때로는 내가 집안 청소. 깔끔하지 못 한 성격 탓에 내 지분은 2, 30프로 정도. 그래도 청소기 돌리고 나면 괜히 뿌듯. 이 나이에 가족을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다.
아내와 내 요리 방식은 상당히 다르다. 아내는 음식 고유의 맛 선호. 나는 와일드 쿠킹 방식을 즐긴다 . 라면을 끓여도 아내는 오직 라면만. 계란조차 넣지 않으려 한다. 나는 산악반 막내 시절처럼 나머지 재료들을 모두 넣어 그 옛날 꿀꿀이죽처럼. 어느 날 별미로 토마토 라면을 끓였다. 아내는 질색. 식초를 첨가한 맛에 딸의 말.
“맛있다. 스파게티 맛이다.”
늦둥이 왈. “건강한 맛이다.”
이후 휴일 별미로 라면 담당은 나다. 토마토 라면. 시골서 가져온 땅콩으로 하는 탄탄면 등.
지난여름. 탈수기 장만 전. 빨래 개키는 일을 내가 거든 적이 있다. 별생각 없는 손놀림. 아내와 딸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딸의 말. “생활의 달인 감이다.”
개킨 빨래를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빨래에 각을 잡고 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항고라 불리던 반합의 반찬통으로 모포를 접고, 손가락에 침까지 묻혀가며 편지지로 옷의 각을 잡던 군시절의 습관이 나도 모르게 그만! 몇십 년 전의 추억 소환. 그 뒤로 우리 집 빨래는 내 담당.
오늘은 모처럼 카메라를 메고 집 앞 탄천으로 새 촬영을 나간다. 요즈음은 작은 새에 빠졌다. 논병아리. 할미새. 보호 동식물이라는 물떼새까지. 육안으로는 보기조차 힘든 작은 새들이다.
집에 와서 빨래가 있다면 당연히 내가 개킨다.
좋은 세상! 폰으로 올드 팝 한곡!
마리안느 훼이스풀의 “This little bird”
기타 강사님의 목소리가 더욱 애절하게 들리는 것은 단순히 기분 탓만이 아니다. 노래 자체도 고음. 허스키한 강사님의 목소리가 힘겹게 느껴진다. C.C.R의 “누가 이 비를 멈추어 줄 것인가?” 이 코로나 시국에 딱 맞는 선곡. 화면 한 구석. “누구 출첵이란 자막.” 줌조차 가동되지 않는 비대면 기타 수업 모습이다.
오늘은 불금. 요일이 의미가 없는 백수지만 일부러 바쁘게 계획을 잡아놓은 닐이다. 기타는 10시 수업 시작. 9시 반 정도 출석. 강사님 오시기 전 선배 교육생들과 손 풀기. 10시부터 수업. 나이 탓에 늘지 않는 솜씨를 탓하며 강사님 리듬에 따라 연습. 음치에 가까운 목소리라 노래는 입속으로. 휴식 시간에는 간단한 간식과 함께 커피 타임. 나보다는 젊으신 분들과 기타나 세상 이야기. 마지막엔 신나는 노래와 함께 모두에게 감사 인사. 노년의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어느 날 갑자기 수업 폐쇄. 답답해할 때. 강사님의 연락. 수강료조차 없는 비대면 수업. 교육생도 보이지 않는 수업. 강사료 걱정까지. 모두 힘이 날 리가 없다. 학창 시절! 비틀스보다 더 좋아한 적도 있던 C.C.R이건만 어깨를 들썩일 수가 없다. “내년에는 얼굴 보고 합시다.” 희망 담은 강사님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 같은 느낌 적인 느낌. 몇 주 전부터 연습해 온 노래. “have you ever seen the rain” 과 “who”ll stop the rain “ 이 노래들이 이렇 게나 고음의 노래인 줄 미처 몰랐다.
폰을 보니 사진 봉사단에서 문자가 와 있다. “갑작스러운 변경이 죄송하단 말과 함께 간담회 장소 변경. 카페에서 강의실로.” 기타와 사진. 둘 다 간단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바쁘다 란 느낌보다 이것도란 생각. 한 해가 끝날 때의 모임은 간단한 음료라도 마시며 카페에서. 그런데 이런 작은 즐거움마저 허락되지 않는 답답한 현실이다.
점심 후 강의실로. 입구부터 삼엄하다. 마스크 확인에 열을 재고 회원증 검사를 하고 사인을 받고. 드디어 입장. 마스크로 가린 얼굴들이 거리를 두고 앉아 있다. 인사조차 주먹만, 말은 거의 없다. 앞에는 투명 플라스틱 가림막.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거리 두기. 새삼 코로나의 위력. 언제까지... 사진 품평과 내년의 계획 이야기.
복지관 문을 나서니 날씨가 싸늘. 낙엽이 밟힌다. 낙엽 따라 가버린 코로나가 되길 빌어본다.
모처럼 정말 모처럼 바쁜 일정 저녁 후 맥주 한 잔으로 KS 야구 시청. 관객들이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 암표까지 극성이던 코리안 시리즈인데.
모든 것이 힘들다. 과연 누가 이 광란의 비를 멈추어 줄 것인가.
“who”ll stop the ra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