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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설렘과 같은 말이다.

by 김윤철

나 혼자만 즐거우면 되었던 시절. 나만의 만족을 위해 한 산악회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조금은 산에 익숙해 저갈 무렵, 한 산 선배의 명언 한 마디.

"산은 일주일 내내 설렘이다. 산행이 끝나면 보고회 겸 막걸리 한 잔, 그러다 다음 산행 계획, 산행 준비,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떠난다."

딱 맞는 말이라 생각했었다. 다음에 만날 그 산의 매력. 떠남은 만남이고 새로운 만남은 바로 설렘이었다.




외손주 둘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오니 딸애가 약간은 미안한 투로 말을 건넨다.

"여름 방학하면 옐로스톤이나 갔다 오자."

LA는 초등4학년 이하의 학생들은 혼자 등하교를 할 수 없다. 아마 날씨 탓이 아닌가 추측.

카운티 전체가 그런지 이곳만 그런지 자세한 것은 모른다. 나는 미국인이 아니니까.

열대사막 기후인 이곳 학생들의 가방은 책 보다 물통이 더 무겁다. 물통의 크기까지 학칙에 정해져 있다고 한다. 더위와 탈수 현상을 걱정하여 반드시 학부모가 동행해야 한다.

황혼육아라야 아내와 딸이 있으니 나는 학교 함께 가주는 정도의 일밖에 없다.

한 마디로 팔자 좋은 노인네. 그런데 여행까지 시켜 준단다.


저녁 식사 후 하이볼 한 잔 하며 노트북으로 옐로스톤을 검색한다.

세상 좋다. 70 노인네가 하이볼을 어찌 알며 미국에 앉아서 비록 한글 자판 없는 컴이지만 한국의 지인들과 소식을 주고받으며 우리나라 포털인 다음 화면으로 미국 관광지를 찾는다. 과연 21세기, 디지털 시대다!


옐로스톤: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1872년 지정). 와이오밍주, 몬태나주, 아이다호주. 세 개의 주에 걸쳐 있는

서울 15배 크기의 관광지다. 1978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 유홍준 교수님의 그 유명한 말씀이 중요한 게 아니다. 설렘이다. 노인네의 가슴이 뛴다.

서울의 크기도 옳게 모르는데 서울 15배의 크기가 중요하랴? 우리나라도 아닌 미국의 국립공원 유네스코 지정이 중요하랴? 산행을 기다리며 먹거리를 준비하고 텐트를 손질하던 총각 시절의 설렘.


세상 가장 설레던 만남, 그 후 잊고 있었던 바로 그 설렘!

이틀 치 먹거리 고르던 마트에서 컴퓨터 앞으로 장소는 바뀌었지만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인공지능은 느끼지 못한다는 감정. 설렘이란 그 감정을 되씹고 있다.


"아빠! 겨울옷 이것밖에 없나?"는 딸의 말에 현실로 돌아온다.

섭씨 40도를 웃도는 여름방학에 겨울옷이라니?

동부와 서부의 시차가 세 시간이나 된다는 미국의 크기가 새삼 이번 여행의 기대를 키운다.


490512897_9297551913688567_3866488614392092062_n.jpg 하이볼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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