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욱, 클라라 주미 강, 최하영
"아빠 내일은 품위 있게 데이트 한 번 해라." 딸의 말을 요약하면 할리우드볼 공연 보러 가잔 소리다.
요약하면 "뉴욕에는 브로드웨이, 엘에이에는 할리우드볼이란 말이 있다. 할리우드볼에서 엘에이필하모닉 베토벤 연주 있다. 공연 제목이 '올 베토벤!' 데이비드 로버트슨이 지휘하는 엘에이하모닉이 베토벤만 세 곡 연주한다. 한국 사람도 세 사람 출연한다. "
팸플릿을 보니 한국 연주자들이 소개되어 있다.
"피아니스트 선욱 김,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주미 강, 첼리스트 하영 최"
이게 웬 떡! 인터넷을 뒤져 할리우드볼과 내일 공연에 대해 알아보았다. "자연적인 분지에 1922년 개장한 야외공연장, 유명 건축가들이 지은 풍선 모양의 객석과 아치형의 무대가 있다. 1년에 한 번 코리아 뮤직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친한 공연장이다." 한인 동포들의 힘이 큰 까닭인가 k팜의 위력인가 한국 음악인들의 공연이 자주 열린다. k문화의 발전상을 보면 앞으로 더욱 우리나라 음악이 연주될 것이라 예상.
공연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코리올란 서곡과 트리플 협주곡, 그리고 교향곡 5번"
제목처럼 모두 베토벤의 곡들이다.
정도의 지식만 숙지하고 당일 한인촌으로. 모처럼 아내와 고상한 데이트. 코리아 타운. 말만 들어도 생각나는 순대국밥. 아내는 순대는 한국 가면 실컷 먹을 수 있단다.
꿩 대신 닭. 아내의 권유로 북창동 순두부. 여행 가면 그곳 음식을 우선하는 나지만 순대는 자주 생각이 난다.
촌놈이라 그런가?
든든하게 배 채운 후 할리우드볼로. 차에서 내려 볼 셔틀로 공연장으로. 무언가 잘 못 되었다. 가족 모두 관람인 줄 알았는데 손주들이 감상하기는 너무 어리단다. 영어 서툰 두 노인네를 위해 딸이 가이드. 사위와 손주들은 다시 집으로. 미안한 마음. 하지만 베토벤의 음악이 미안함을 커버하고도 남는다.
공연 시간이 조금 남아 공연장 감상. 먼저 의자.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나무 의자다. 백 년 역사의 공연장. 엉덩이 걱정 보다 레트로 느낌. 고상하다? 고급스럽다? 어쨌든 기분 좋은 필이 팍팍! 멀리 그 유명한 할리우드 사인도 보인다.
야외 공연장의 특색인가? 음식 반입이 자유다. 무대를 등지고 앉은 사람들은 모두 와인잔을 앞에 두고 있다.
한국 사람인 나는 마시는 건 모르지만 소리 내며 먹는 것은 못 하겠다.
드디어 공연 시작. 세 작품 중 첫 번째는 코리올란 서곡!
공명을 위해 분지를 택했다는 정보는 있었지만 정말 라디오나 LP판으로 듣는 소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영웅 서사라서 더 웅장? 글쎄다. 정말 귀 호강. 실내 공연과는 또 다른 느낌.
두 번째는 트리플 협주곡. 베토벤 유일의 삼중협주곡이란다. 그런데 오케스트라와 협주하는 삼인이 모두 한국 사람이다. 한국계가 아닌 한국 국적의 세계적인 연주자들. 피아노 김선욱, 첼로 최하영, 바이올린 클라라 주미 강! 강주미 바이올리니스트만 독일과 2중 국적. 화면에 나타나는 얼굴도 전형적인 한국의 미남 미녀형!
이 세 연주자는 오케스트라 단원이 아니고 초청된 협연자들이다. 기분 짱! 국뽕이 아니라 팔은 안으로 굽는다.
공연 후 인사 때도 휘파람 응원까지. 코리아 타운이 가까워서? 아니, 2만여 좌석 중 아시아계는 찾기조차 힘든 수준이다.
세 번째는 너무나 우리 귀에 익은 교향곡 5번. 우리에겐 운명교향곡으로 더 알려진 곡이다.
철없던 시절 자주 하던 아재 개그, 아니 할배 개그. 요즘 젊은이들도 알런가?
설사 교향곡. 좔좔좔좔-- ㅋㅋㅋ
멋진 데이트 후 차 기다리며 볼 천천히 감상. 길눈 어두운 세 사람을 위해 사위가 차를 몰고 픽업 왔다.
평소라면 잠잘 시간인 손주들도 아빠와 함께.
미국은 법이 엄하다. 10살 미만인 손주들을 집에 혼자 두면 큰일 난단다. 심한 경우 친권 박탈도 불사.
이번 공연은 할리우드볼의 여름 클래식 시리즈 중 하나.
LA 여름의 더위와 사위와 손주들을 향한 미안함까지 덜어주는 청량한 연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