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돈도 비치
"아빠 회 먹으러 가자. 스시 말고 회."
미국은 회를 일본어인 스시라 부른다. 억울하지만 할 수 없다. 그런데 미국에서 스시가 아닌 회라니.
오늘은 토요일. 공휴일이다. 은퇴한 나야 별 의미가 없지만 사위의 빨간 날. 프레지던트데이까지 사흘의 공휴일이라며 오늘 점심은 회로 하잔다. 스시가 아닌 회란다. 절에 온 색시 신세지만 해산물 좋아하는 나야 입 찢어질 소리다. 서둘러 차를 정비.
미국의 주유소는 대부분이 셀프다. 기름 넣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노숙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약간은 위험하게 느껴진다. 법 좋아 하는 미국에서도 이런 사람에게는 방법이 없는 모양이다. 한인 타운에 잠시 들렀다 약 한 시간 좀 더 달려 도착한 레돈도비치. 역시 미국의 관광지다. 경치 좋고 잘 꾸며진 모습이 한국의 관광지와 별 다른 모습이 아니다. 단 미국의 해변가에는 횟집이 없다.
그런데 이곳에는 있다. 좀 색다른 미국 풍경.
시내 구경 보다 먼저 횟집으로. 해변이니 당연히 갈매기가 보이지만 펠리칸의 모습이 색다르다. 덩치 큰 이녀석들은 사람이 가까이 가도 도망가지 않는다. 오히려 공격까지 하려한다. 사람 무서운 줄 모르는 녀석들이다. 미국 서부 해안에 서식하는 브라운이란 이름의 펠리칸인데 멸종 상태까지 갔다가 지금은 숫자가 많아졌단다.
그 한 곳에 한글이 딱. 영어가 병기 되어 있기는 하지만 큰 글씨는 한글이다. “한국 횟집” 스시도 아니고 라우 피시도 아닌 그냥 횟집이다. 반갑다. 무조건 그집으로. 사위도 그 집에 갈 작정을 하고 왔단다. 손님들의 반 정도는 백인들이다. 이젠 회를 먹는 백인들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젓가락질도 곧잘 한다.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유명하다는 던지니스 크랩에, 싱싱한 회에, 매운탕에, 소문만 듣던 랍 스타까지 이건 갑자기 재벌된 기분이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호강했다. 소주까지 곁들여서. 이젠 미국 생활도 며칠 남지 않았다. 아메리칸 랍스터는 서부에서는 잡히지 않는단다. 여기서 먹는 놈은 동부에서 공수해온 랍스터다. 쉽게 말해 가격이 매우 비싸다는 말. 두 마리로 맛만 보고 캘리포니아 크랩의 한 종류인 던지니스 게로 기분을 내었다. 나 혼자 오면 돈이 있어도 먹지 않을 랍스터.
인터넷에서 찾은 레돈도 비치는 서핑의 명소고 해안 도로를 따라 자전거나 트래킹을 하기 좋다고 나온다.
그런대 70대인 우리가 서핑을 할 수도 없고 가족 여행이니 우리 부부만 자전거를 타기도 멋쩍다.
해변 산책과 사진을 즐겼다.
사위의 말. "LA 의 이민자들이나 유학생들이 향수를 느끼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교통이 편리한 산타모니카. 다음이 횟집이 있는 레돈도 비치다. 유학 당시에는 이곳까지 오기 힘들고 한국과 가장 가깝고 버스가 다니는 산타모니카. 졸업하고 여유가 생기면서 이곳에 왔다는 말." 유학 생활의 어려움 이해.
그런데 미국에서 지명을 서핑하면 부유한 도시다. 심지어는 학교도 좋고 생활하기 안전하다. 이런 말까지 나온다. 집에 돌아와 하이볼 한 잔 하며 딸과 대화.
미국은 빈부 격차가 매우 심하다. 산타모니카의 해변에는 부유층의 요트가 즐비한 반면 다운 타운 가는 길의 고개 위에는 텐트 생활하는 노숙자들도 많다. 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할렘가가 실제 존재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보다 더 학군을 중시한단다. 좋은 대학 가는 8학군 이런 말이 아니고 학군 나쁜 곳은 학생들이 마약을 가지고 등교하는 경우도 있다는 말. 총격이 난무하는 미드가 완전 허구는 아니라는 말이다.
딸과 잔을 부딪치며 덕담 한 마디.
"열심히 살아야 한다." 애비의 짠한 마음.
캘리포니아 크랩의 일종인 던지니스 크랩은 비교적 껍질이 얇아 나무망치 대신 크랩크래커를 사용한다.
나무 망치로 게발을 깨는 서양인도 있기는 있다.
레돈도 비치의 석양이 아름답다는데 그냥 그랬음. 자기 PR 잘하는 미국인들의 관광지 선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