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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Feb 19. 2024

치고 달려야 하는 순간 vs 놓치지 말아야 하는 순간

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76

01 . 

흔히 야신이라 불리는 김성근 감독님의 예전 인터뷰를 보다가 이런 문장을 발견했습니다.

"타격은 잘 칠 수도 있고 못 칠 수도 있다. 10번 중에 세 번 치는 3할 타자만 되어도 주전은 물론이고 중심타선에 세울 수 있으니까.

대신 수비는 다르다. 수비는 10번 중에 9번만 성공해서도 안된다. 수비는 10번 중에 10번 성공해야 한다. 1번의 에러(실수)가 상대에게 4점, 5점도 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타격으로 슬럼프에 빠진 친구들에겐 '다음에 잘해라'할 수 있지만 자꾸 수비에서 실수하는 친구들에겐 '너 한 번만 더 그러면 다음(?)은 없다.'라고 말한다.

인생에선 치고 달려야 하는 순간보다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순간들이 더 많다."


02 . 

늘 소름 돋을 만큼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멘트를 구사하시는 분이지만 이번엔 그 강도가 특히 더 세더군요. 더불어 저 멘트는 김성근 감독님의 야구 철학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는 말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무뚝뚝한 표정 속에서 의외의 인자함을 보이는 순간이 있나 하면 선수들이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불호령을 치며 모질게 훈련시키는 순간이 있었으니까요. 적어도 저 원칙 위해서 생각해 본다면 무엇이 용서되고, 무엇이 용서되지 않는 지가 어렴풋하게나마 선명해지는 것도 같습니다.


03 . 

모든 일을 공격과 수비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하는 일의 영역에서도 꽤 많은 것들이 이 기준선을 중심으로 양분될 수 있겠다 싶습니다.

그중엔 여분의 기회가 용납되는 일, 도전의 정신을 높이 사는 일, 실패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일, 한 번으로 모든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영역이 있고, 그와는 정반대로 하나의 구멍이 모든 것을 수포로 만드는 일,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해내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일, 실수하는 순간 상대에게 내 약점을 보여주게 되는 일, 프로와 아마추어를 구분하는 잣대가 되는 일이 있기 때문이죠.


04 . 

제가 발을 담그고 있는 기획이라는 필드 위에서는 이 수비와 관련된 일이 대부분 '태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내가 기획한 일이 매번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10번 일을 하면 10번 모두 협업으로 이어질 때가 많은 상황에서 성공 경험 역시 모두 내 것이라고 할 수는 없거든요. 그러니 의외로 기획자에게는 성공적인 기획을 못해서 받는 비난은 생각보다 덜 클지도 모릅니다. (저는 분명히 '덜 크다'고 했습니다.... 비난이 없다고는 안 했습니다....)


05 . 

하지만 야구 선수로 치면 수비에 해당하는 일, 방금 쓴 표현을 빌리자면 태도와 연관된 일들은 대부분 개개인의 역량으로 바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이 부분은 모두가 협업해서 좋은 결과물을 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그 구멍이 드러나게 되어있기 때문에 더욱 잔인한 영역이기도 한 것이죠. 99개를 잘해도 이 한 개의 실수가 레이더망에 포착된다는 것은 그저 간과하고 넘어가기엔 너무도 크리티컬 한 일이니까요. 


06 . 

그중에서도 저는 대표적으로 비즈니스 매너를 꼽습니다. 최근엔 마치 적절한 비즈니스 매너를 챙기는 게 일종의 꼰대 문화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지만 이건 정말 잘못된 관점 중 하나입니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는 나만큼이나 비즈니스 대상이 되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기본이고 이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이 불편해할 것들은 사전에 제거하는 것이 일을 진행시킴에 있어서도 큰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07 . 

과거 많은 선배들이 제게 강조했던 것도 똑같았습니다. '오타 내지 마라', '사람 이름이나 호칭 틀리지 마라', '보고서에 중복된 장표 없는지 잘 봐라', '회의자료는 미리 보내놓고 현장에서 잘 오픈되는지 미리 체크해라', '아무리 화기애애한 자리라도 불필요한 개인적인 질문은 삼가라', '확인해 보겠다고 한 것, 보내주겠다고 한 것, 의사결정해서 전달하겠다고 한 것은 절대 놓치지 말고 팔로업해라' 같은 것들이었죠. 생각해 보면 뭔가를 드라마틱 하게 잘해내야 하는 영역이 아닌 내 글러브로 안전하게 공을 잡는 일 그리고 정확한 스텝으로 깔끔하게 송구하는 일에 가까운 영역임이 분명합니다.


08 . 

그러나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등한시합니다. 물론 저 역시 여전히 실수하는 부분들이 존재하지만 이걸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다음부터 절대 실수하면 안 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접근하는 사람이 있나 하면,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그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치 '나는 타격에 집중하고 있으니, 이런 자잘한 수비 정도야 에러가 나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한달까요. 때문에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늘 조마조마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는 이미 우리의 실수와 약점을 눈치채고 있다는 게 느껴지거든요.


09 . 

그래서 저는 기본기가 좋다는 것의 이미, 기본이 잘 갖춰져있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잘할 확률이 높다가 아닌, 무엇인가를 망칠 확률이 적다는 것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저 선수가 4타수 무안타에 머물지언정, 그의 앞에 떨어지는 모든 공은 완벽하게 처리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심어주는 행동인 거죠. 그리고 저는 이런 역량이 모여 결국 좋은 타격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수비에서 에러가 반복되면 타격을 할 수 있는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되니까요.


10 . 

한 걸음 더 나아가 김성근 감독님이 더없이 훌륭한 리더라고 생각된 포인트는 이걸 팀 전체의 DNA로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제가 겪은 리더들 중에도 상당수는 타인이 기본적인 실수를 범하면 길길이 날뛰면서도 정작 본인의 기본기는 제대로 갈고닦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거든요. 이런 조직에서는 공격과 수비에 대한 중요도가 제대로 정립될 수 없음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무엇을 기본으로 생각하고, 무엇을 기회로 생각해야 하는지 그 기준을 가늠할 수 있는 조직이라면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가를 스스로 깨우치고 실행해 옮길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게 리더가 해야 할 일이고 조직이 갖춰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주말이 끝나가는 이 시점에 또 한 번 자신을 돌아보게 되네요. 부디 다음 한 주도 홈런과 안타는 못 칠지언정 수비에서의 제 몫은 잘해내는 한 주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드니까요. 시작하는 월요일은 다시금 기본기를 한 번 정리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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