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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Mar 25. 2024

첨병 역할을 자처해 보자

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85

01 . 

이번 독서모임의 주제는 '기획자의 학습'이었습니다. 작년에 꽤 흥미롭게 읽었던 ⟪최재천의 공부⟫라는 책을 읽을거리로 선정했고, 이 책을 통해서 그동안 각자가 공부해온 영역, 방법 등을 이야기하며 앞으로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학습해나가야 하는가란 꽤 깊은 이야기들을 다뤘죠. 하지만 언제나처럼 멤버분들께서 인사이트 있는 이야기들을 던져주신 덕분에 개인적으로는 참 흥미로운 토론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02 . 

학습, 공부, 배움, 익힘 등 다양한 단어들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아마도 이 모든 것들은 '배우거나 깨치고, 알아가거나 이해하게 되며, 습득하거나 익히는 일련의 과정'을 표현하고 있을 겁니다. 비록 '기획자의 학습'이란 키워드를 잡긴 했지만 사실 모든 사람에게 따라다니는 평생의 과제가 공부이고, 그마저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환경 속에서는 방향은커녕 갈피조차 잡기 어려운 게 사실이니 방금 설명한 이 일련의 과정은 인간의 숙원 사업(?)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란 생각입니다. 


03 . 

모임 멤버분 중 한 분이 써주신 독후감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책상에 앉아 교육과정에 맞게 진도를 나가며 해온 공부는 가장 난이도가 낮은 배움이었음을 몸소 실감하고 있다.'

그리고 저 역시도 10여 년 넘게 사회생활을 하며 이 말에 절실히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때의 배움이 수월하다는 게 아니라...) 사회에 나와보면 스스로가 A부터 Z까지 모든 걸 결정하고 실천해야 하는 공부의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04 . 

그래서 이번 모임을 써머리 하는 세션에서 저는 공부라는 걸 '잠시나마, 작게나마, 더 나은 나로 다가가는 작은 몸부림'으로 정리하고 그동안 익혀온 제 나름의 방법들을 간략하게 소개했습니다.

그중 네 번째 방법으로 저는 '첨병 역할을 자처해 보자'라는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첨병이란 군대에서 행군을 할 때 가장 맨 앞에서 경계나 수색, 정찰 등을 하는 일종의 선발대라고 보시면 됩니다. 본진에 있는 인원들이 무사히 이동할 수 있도록 미리 가서 상황을 살피고 다시 본진에 합류해 이동에 필요한 조건을 알려주는 꽤 중요한 역할이라고 할 수 있죠. 


05 . 

저는 기획 일을 하면서 간혹 이 첨병 역할을 하는 때가 저 스스로를 공부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자료 조사나 케이스 스터디의 수준을 넘어서 남들보다 조금 앞서 새로운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지고 다시 이걸 조직 내에 전파하거나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조금씩 영향을 줄 수 있도록 세팅할 때 스스로가 쑤욱 하고 커지는 경험을 한 것이죠. 즉, 본진에 앞서 뭔가를 수색하다 또다시 본진으로 돌아와 함께 이야기하는 과정이 제가 하는 일을 더 생동감 있게 만들어준 셈입니다. 


06 . 

저는 이 첨병 역할이 주는 장점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합니다. 

첫째는 '누구의 선입견도 없이 내가 먼저 맨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겁니다. 보통 주어진 일에 몰입해 있을 땐 각자의 의견이 난립하는 환경이라 누군가의 관점이 개입된 이야기들을 들을 수밖에 없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의 조금 앞에 있는 것들이나 조금 다른 환경에 놓여있는 것들은 순수히 저만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더라고요. 그렇다 보니 의외의 상황에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새로운 측면에서 문제를 정의할 수도 있었습니다.


07 . 

둘째는 '주관적인 확신과 객관적인 검열을 동시에 거친다는 것'입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첨병은 앞서 걷되, 본진과의 거리를 유지하며 이동합니다. 따라서 내가 새로운 뭔가를 보고 확신했다고 해도 늘 이 의견을 여러 사람과 나누고 지금 하는 일 속에서 검증받아야 하는 절차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내가 먼저 관찰한 것들이 어느 정도 의미를 갖는지, 다른 사람의 의견은 어떤지를 확인하며 밸런스를 잡아갈 수 있다고 봐요. 그러니 나 혼자만 신나서 뜬구름을 잡는 확률도 적어지고, 타인을 통해 아이디어가 더 디벨롭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커지는 거죠. 


08 . 

마지막 세 번째는 '본격적으로 진군할 때 뭘 챙겨가야 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걸 일종의 '회사원의 예습'이라고도 부릅니다. 저도 학교 다닐 때는 딱히 해본 적이 없지만 이 예습이라는 걸 해놓으면 인생 2회차에 들어서는 것 마냥 대강이라도 아는 길을 걷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때문에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해야 하는 실전에서는 뭘 준비해야 하고 또 어느 타이밍에 집중을 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알게 되죠. 그러니 첨병은 (몸은 좀 힘들지 몰라도) 일에 있어 두 번의 기회를 받게 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도 생각됩니다. 


09 . 

⟪최재천의 공부⟫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지금 주류를 보고 있으면 얼마 후에 주류에서 밀려날 것을 보는 것이고, 지금 비주류를 뒤지다 보면 거기서 주류로 전입하는 경향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

그리고 저는 이 말을 이렇게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앞서 비주류를 뒤지다 보면 주류에 합류했을 때 많은 것을 제시할 수 있고, 주류에 있다가 또 조금 더 나가 비주류를 살피다 보면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고 말입니다.  


10 . 

사실 주어진 일만 쳐내기에도 힘든 것이 우리들 생활이라는 걸 왜 모르겠습니까만... 그래도 그 와중에 스스로를 학습시키고 무엇인가를 배워나가는 걸 게을리할 수 없다는 걸 여러분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 분야를 새로 시작해야지', '저걸 한 번 제대로 공부해 봐야지'라는 생각만 할 게 아니라 우선 가볍게 '조금 빨리 걸어서 내가 먼저 앞을 한 번 보고 올까'란 생각으로 첨병 역할을 자처해 보면 어떨까요? 아마 그럼 여러분의 본진에 예상보다 큰 변화가 찾아올지 모르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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