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열문단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영 Apr 28. 2024

-3년 +3년이 지금의 '나'다 (자존감 이야기 ②)

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91

01 . 

지난 글에 이어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이어가 보겠습니다. 

(뜬금없이 나이를 공개하게 되었지만...) 올해로 마흔 살에 접어든 저 역시도 그간 삶에 크고 작은 변화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다이나믹한 인생을 사신 분들에 비하면 평범하기 그지 는 삶일지도 모르고, 한 회사를 12년째 다니고 있는 것 역시 비교적 잔잔한 사회생활이라 평가받을 수 있겠죠.


02 . 

하지만 당연히 저에게도 그간 자존감이 들쑥날쑥했던 시절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을 거쳐 성인이 되면서는 사는 지역도, 전공도, 환경도, 조건도 많이 바뀌며 어딜가나 저 스스로를 이방인처럼 느끼게 되는 순간들이 많았죠. 

더불어 회사를 들어오고 나서 신입사원 생활을 시작한 뒤로는 그런 감정이 더 증폭되었습니다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유능하고 똑똑해 보였고, 실제로 좋은 학교에서 여러 역량을 갖춘 삶을 살아온 것이 너무 대단해 보였거든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제가 잘 몰라서', '제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는데요', '이건 진짜 그냥 드리는 말씀인데' 같은 말을 자주 사용하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03 . 

그때 친한 선배가 이런 얘기 하나를 들려주더군요. 

"야. 사람들이 누군가를 평가할 때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 전체를 보고 평가하는 거 같지? 근데 실제로 사람들이 평가하는 건 과거 3년에 대한 성과, 미래 3년에 대한 기대. 딱 이 두 가지 범위 안에서 평가하는 경우가 훨씬 많아. 그러니 과거 3년, 미래 3년. 이게 너의 지금이야."


04 . 

지금 생각해도 이 말은 정말 생생하게 기억이 날 뿐 아니라 그 순간 제가 느꼈던 짜릿한 전율 역시 식지 않은 채로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돌이켜보니 저 또한 마찬가지더군요. 누군가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가지든 아니면 그 반대의 경우든 간에 그 사람이 살아온 모든 배경을 이해하고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거든요. 아니 정말 오래 봐온 사이라고 해도 그 사람의 비교적 최근 행적(?)을 바탕으로 평가하고, 또 그 평가를 바탕으로 앞으로 어떤 사이가 될 수 있을지를 예측하고 있었으니 말이죠. 


05 . 

그러니 상대는 아무 관심도 없을 나의 먼먼 과거의 어느 시점에 매몰되어 '나는 이런 배경을 가진 사람이니까...'라고 자책하는 것도 큰 의미가 없고, 같은 맥락으로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수십 년 뒤의 미래를 산정하며 '늙어 죽기 전에 ...' 같은 표현으로 내 앞날을 당겨쓰는 것 역시 아주 현실적인 행동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신 과거 3년, 미래 3년 이렇게 현재에 머무는 6년 남짓한 시간을 잘 세팅해 보는 게 훨씬 낫겠다는 조심스런 확신이 생기더라고요. 

그리고 이어지는 선배의 말은 그런 확신에 싹이 자랄 수 있도록 흙을 다지고 물을 뿌려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06 . 

"우스갯소리지만 나는 와이프가 너무 옛날 얘기 꺼내면 '그때의 나는 내가 아니야... 유효기간이 지났으니까 지금의 나로 바라봐줘...'라는 얘기를 해. 물론 그럴 때마다 비겁하다고 공격을 받지만, 사실 우리 인생은 긴 선이 아니라 하나의 단락으로 보는 게 맞는 거 같아. 

아이를 키울 때도 그렇거든. 내가 아이의 인생을 설계해 준다고 접근하면 까마득함을 넘어 두렵기까지 하지. 대신 내가 이 아이를 위해 플러스마이너스 3년씩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해보면 뭔가 캄캄한 동굴 속에서도 빛이 새어 들어오는 작은 틈을 찾은 기분이 든다니까."


07 . 

그리고 정작 그 작은 틈을 발견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저 자신이었습니다. 저 역시도 과거의 행동이나 결과에 찝찝한 부분이 남아있으면 작게나마라도 미련을 가졌던 성격이었거든요. 그래서 다음에 뭘 할 때마다 회고를 한다는 핑계로 아주 예전의 기억까지 끄집어내가며 스스로를 질책하고 비판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더 슬펐던 건 그게 곧 겸손인 줄 착각했다는 사실이고, 그게 곧 미래를 더 잘 준비하는 방법이라고 오해했다는 사실이죠. 


08 . 

그런데 '지금의 나'라고 규정할 수 있는 시간을 산정해 주니 인생의 몸무게가 너무도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 인생의 발목을 감싸고 있던 모래주머니를 단박에 털어낸 기분이었다면 공감이 되실까요. 그렇게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한 과거의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줄이고 진짜 지금의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 늘어가니 오히려 현재를 살아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까지도 선명해지더라고요. 그러니 저에겐 '앞뒤 3년을 열심히 살아라'는 말이 곧 Carpe Diem 이자 Seize the moment인 셈이었죠. 


09 . 

'오늘에 충실하라'는 말을 들었을 땐 하루하루에 대한 부담감이 생겼던 것도 사실인데, 다음의 두 가지 질문을 던지자 오늘을 어떻게 세팅하며 살아야 하는지 역시 분명해졌습니다.

'지난 3년을 돌이켜봤을 때 내가 반성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앞으로 3년을 내다봤을 때 내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었죠. 이렇게 삶의 유통기한을 정하는 순간 내 삶의 가장 신선한 한 단락이 내 눈앞에 준비되어 있는 것 같아 결코 함부로 대할 수 없었습니다. 


10 .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어쩌면 나로 규정하기 힘든 그 애매한 순간 속에 파묻혀 여러분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을 해치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그 과정을 겪어본 사람이기에 드릴 수 있는 작은 응원의 한마디는 '그건 마치 남의 인생을 걱정하고 있는 것과 같다'는 사실입니다. 

20년전 사진을 꺼내보면 '이 땐 내가 왜 이렇게 입고 다녔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굳이 들추지 않았다면 기억도, 이해도 하기 힘든 순간의 내가 있기도 하니까요, '그때 역시 나였다'는 사실도 중요하겠지만 그 누가 뭐라 해도 '지금의 나' 자신이 중요하다는 명제에 집중하며 우리의 한 단락을 잘 살아보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얼리버드 티켓을 끊자! (자존감 이야기 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