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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May 26. 2024

당신에게 주는 온전한 달콤함 ('설득' 이야기 ①)

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96

01 . 

여러분은 여러분이 하고 계신 업무에서 가장 많이 반복해 쓰는 말이 무엇인가요? 아마 곰곰이 생각해 보면 꽤 여러 단어들이 스쳐 지나갈 겁니다. 그리고 직무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고유명사를 하나씩 지워본다면 여러분의 일 속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가치나 태도에 관한 단어들이 남게 되겠죠. 그러니 한 번쯤 '나에겐 어떤 단어들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을까'를 고민해 보는 것도 의외로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던져주는 회고법이 됩니다. 


02 . 

제게도 그런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설득'이란 단어입니다. 기획이나 브랜딩이라는 분야는 내가 가진 생각을 표현해 내기 전에 반드시 누군가를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뿐 아니라, 어쩌면 누군가를 설득해서 특정한 생각을 심어주거나 특정한 행동으로 유도하는 것이 본질 중의 본질일지도 모르니까요. '이렇게 해서 설득이 되겠어?', '이거 너무 설득력이 없는 것 같은데요?', '그쪽을 설득하려면 이번엔 진짜 제대로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그분은 이미 우리를 설득할 마음이 없어요' 등등 하루에도 설득이란 단어를 수없이 입에 달고 다니는 삶을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03 . 

이번 달 독서모임의 주제로 저는 '설득'을 선정했습니다. 그리고 꽤 유명한 과학 커뮤니케이터이자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맥레이니의 ⟪그들의 생각을 바꾸는 방법⟫을 읽을거리로 다뤄봤죠. 극단의 시대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만큼 전 세계적으로 두드러지는 양극화라는 현상을 어떻게 봐라봐야 할지 그리고 그런 대립각에 서있는 서로는 다른 상대를 어떻게 설득시킬 수 있을지, 또 그 설득의 과정에서는 어떤 방식이 진정으로 효과적인지를 이야기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은 겁니다. 덕분에 멤버분들과 아주 가까운 사람의 생각을 바꿔놓는 각자의 노하우부터 '왜 인간은 타인을 설득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원론적인 부분까지 심도 있는 이야기를 다뤄볼 수 있었습니다. 


04 . 

설득에 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어원에 관한 작은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설득하다라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 'persuade'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반전의 어원을 가진 단어이기도 합니다. 온전히 혹은 완전히란 뜻을 가진 접두사 'per에 달콤하다는 뜻의 'sweet'의 원형인 단어 'suade'가 결합해 만들어진 단어이기 때문이죠. 그러니 어원으로 파악해 보자면 적어도 타인으로 하여금 '온전한 달콤함'을 심어주는 게 바로 누군가를 설득하는 행위가 됩니다. 비즈니스 세계나 정치판에서 다뤄지는 '설득'이란 단어를 떠올려보면 쉽게 연상되기가 어려운 어원이기도 하죠. 


05 . 

때문에 저는 누군가를 설득한다는 것은 결국 이타심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상대를 설득하기로 마음먹은 자체가 일단 타인을 이해해 보기로 마음먹은 행동에서 비롯되는 건 아닐까 싶어요. 어떤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선 일단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니까 그 전제 조건만 생각해 봐도 타인을 설득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은 그래도 누군가의 입장에서 먼저 고민하는 노력을 하는 사람인 거죠. 


06 . 

그래서 저는 기획 일을 하고 싶다거나 혹은 마케팅, 브랜딩과 관련한 일을 하고 싶다고 하는 사람 중에 타인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없거나, 나아가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의지가 부족한 사람을 보면 (조금 심하게 말해서) 이 업의 본질을 거부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저 내 머릿속에 떠오른 멋진 생각을 기똥차게 풀어내면 사람들이 좋아해 줄 거란 생각으로 접근하면, 백 번 양보해서 한 두 번은 성공할지 몰라도 결국 아주 빨리 본인 한계에 부딪히고 말 테니 말이죠. 


07 . 

반면 타인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거나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어도 늘 특정한 답을 자기 마음속에 꼭꼭 숨겨두고 상대를 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그래 얘기해 봐 어디. 근데 그거 알아? 내 맘속엔 이미 정답이 있고 나는 네 대답이 끝남과 동시에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란 태도인 거죠. 이런 부류 역시 몇 번의 눈가림은 할 수 있어도 머지않아 불통의 아이콘이란 딱지를 얻을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설득의 전제 조건은 이타심이고, 그 이타심에 진정성이 없다면 누구의 환영도 받을 수 없으니까요. 


08 . 

그러니 우린 설득에 대한 인식을 조금은 새롭게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그저 누군가에게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합당한 논리와 이성적인 근거를 들이밀면 그 사람이 알아서 생각을 정리해 내 의견에 동조해 줄 거라는 착각을 해선 안된다는 얘기죠. 대신 그 사람이 왜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 그 사람의 입장에서 충분히 들어보는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일종의 상대 논리에 대한 서사를 확인하는 거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09 . 

'바빠 죽겠는데 언제 그렇게 남을 설득하고 있냐'란 생각이 드실 수도 있겠지만 이건 시간이나 에너지의 문제라기보다는 의지치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특히 업무로서 연결이 되어있는 관계라면 서로 생각의 합을 맞추지 못한 채 삐걱대는데 쓰는 리소스를 고려했을 때 누군가를 이해하고자 사용하는 노력은 의외로 굉장히 싸게 먹히는(?) 효율적인 접근법인지도 모릅니다. 방향과 방법 양쪽 모두에서 윈윈인 전략인 거죠.  


10 . 

때문에 혹시 여러분도 모르는 사이 '설득'이란 단어가 입 밖으로 새어 나오려고 할 때 잠깐 멈추고 이런 생각을 해보시는 것도 괜찮습니다. '내가 지금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나?'라고 말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우린 말 그대로 '설득을 위한 설득', '답이 정해진 문제에 대한 형식적인 설득'을 하는 걸 수도 있으니까요, 우리 업의 본질이 되는 이 단어를, 이 행위를 조금 더 진정성 있게 사용해 보는 건 어떨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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