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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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문화에 관한 마지막 이야기를 이어가 보고자 합니다. 제 주변 지인분들도 그렇고 종종 DM 등을 통해서 질문을 주시는 분들도 그렇고 대부분 이상적인 조직 문화에 대해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과 수평적인 조직 체계'를 꼽아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본인은 필요 이상으로 수직적인 분위기에서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고 개인의 성장 역시 가로막힐까 두려움이 앞선다는 분도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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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지나치게 수직적인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기에 말씀 주신 포인트들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첫 번째 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앞으로 회사라는 공간이 Workplace의 개념에서 Work community로 점점 진화된다면 그 안에는 '수평적인 체계'가 아주 명백한 시스템으로 자리 잡게 될 겁니다. 그래야 물리적 공간에서 화학적 관계로 넘어가는 그 패러다임의 전환을 제대로 흡수할 수 있을 테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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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진짜 제대로 된 수평적 문화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수평적인가'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야 합니다. 그저 서로를 '~님'이라고 부르는 문화, 직급 체계가 없는 문화 등의 외형적인 요소만으로 단정할 수는 없을 테고, 그렇다고 '서로를 존중해 주는 분위기', '윗사람도 아래 사람에게 예의를 지키는 태도'처럼 개개인에게 일괄적으로 적용할 수 없는 기준을 만들 수도 없을 테니까요. 적어도 비즈니스를 꾸려나가야 하는 조직 안에서는 무엇을 수평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합의가 있어야 함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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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에 대해 제가 생각하는 몇 가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우선 저는 수평적인 문화란 '너와 나의 권위가 같아진 상태'가 아닌 '역할과 권한에 대한 상식적인 합의가 이뤄진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즉, 모두가 동등한 상황에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누가 어떤 지위를 가지고 어떤 업무를 수행하게 되는지, 그리고 그에 대한 목표와 보상은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에 대해 서로가 납득하고 합의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간혹 회사를 학교나 협동조합의 구조로도 끌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조금 회의적인 편입니다. 비즈니스란 엄연히 의사결정 구조가 존재해야 하고 그러려면 당연히 누군가는 모두의 의견 가운데 결정이란 것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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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는 타이밍의 문제를 들고 싶습니다. 저는 수평적인 문화란 '매 순간 수평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순간에 수평 모드로 잘 전환할 수 있는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회사는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곳입니다. 그러니 태생적으로 평화로운 바다처럼 잔잔함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곳이 아니라 매일 치열한 현장 안에서 무수히 많은 문제를 다뤄야 하는 곳인 거죠. 때문에 겉으로만 수평적인 외형을 갖추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정말 필요한 순간에 개개인의 의사를 잘 존중할 수 있고, 능력 있는 인재들의 목소리가 위계에 의해 가려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고압적인 성격과 태도로 유명했던 스티브 잡스마저도 늘 타운홀 미팅을 통해 자기 의사를 표현하고 모두에게 자유로운 발언권을 보장했던 사실을 기억하면 더 이해가 빠르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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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조직 문화를 세팅하기 위해 관심을 기울이는 과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아주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이 아니고서야 대부분 HRD, 혹은 CX라고 불리는 인사 조직에서 조직 문화를 담당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데 이런 전문 조직에서 일어나는 가장 흔한 실수는 '그래서 요즘 다른 회사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에 집중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사회적으로 관심 있어 하는 분야, 업계에서 중요시하고 있는 트렌드를 중심으로 조직 문화요소를 만들게 되고 결과적으로 우리 조직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에는 귀를 기울이지 못하는 촌극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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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문화를 설계함에 있어서는 '우리 구성원들과 결부된 실질적인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바탕으로 '어떻게 해야 더 좋은 인재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외부의 트렌드보다는 내부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그 해결책 역시 내부의 힘을 빌려야 하는지 외부의 힘을 빌려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죠. 흔히 조직에서 '~의 발전을 위해 ~을 도입하겠다'고 선언하는 순간에는 늘 잡음이 따르기 마련인데요,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건 회사가 우리 조직의 문제점을 잘 이해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접근법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가가 구성원들 스스로의 판단 기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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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는 그저 '수평적인 분위기가 만연한 조직'보다 '장치, 제도 등 시스템적으로 조직을 받쳐줄 수 있는 백업 자원 풍부한 조직'이 훨씬 수평적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조직 문화에 있어서 사람이 끼치는 영향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지만 좋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좋은 영향을 끼치도록 하기 위해서는 시스템과 프로세스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사람들이 안정감을 느낄 수 없고, 자신이 조직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크지 않다고 느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른바 몇몇 사람에 의한, 몇몇 사람을 위한 조직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뒤따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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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뼈아픈 말이지만 최근에 들었던 말 중에 꽤 크게 공감했던 말이 있습니다.
"똑똑한 사람이 가장 화가 나는 순간은 여기 똑똑한 사람이 나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다."
어찌 보면 꽤 오만한 말인지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스마트한 사람을 외롭게 두는 조직이야말로 가장 어리석고 비효율적인 조직은 아닐까란 생각을 해봅니다. 적어도 좋은 사람들과 치열하게 고민하며 생산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가고픈 그 위대한 열망을 너무 쉽게 꺾어버리는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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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맥락에서 저는 오늘 글의 주제였던 수평적인 조직에 대한 개념도 각자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 조직은 역할과 권위에 대한 상식적인 합의가 이뤄지고 있는지, 필요한 순간에 수평적인 모드로 빠르게 전환할 수 있는지, 진짜 구성원들이 필요로 하는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는지, 동시에 그들을 잘 백업할 수 있는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거창하게 얘기했지만 사실 조직 문화란 조직에 있는 그 누구도 외롭게 두지 않기 위한 노력일지 모릅니다. 대신 그 외로움은 역량적인 외로움, 관계적인 외로움, 비전에 대한 외로움을 모두 포괄하는 것일 수 있겠죠. 말하고 보니 조직 문화가 그저 회사 분위기에서 논의될 사항이 아니라 조직이 잘 굴러가게 하기 위한 근본적인 DNA에 대한 고민이라는 게 더욱 분명해지는 것도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