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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Sep 07. 2023

필경사 바틀비

2019년 1월 15일의 나



책의 제목이 뇌리에 꽂힌 날로부터 56일 만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동안 뭐가 그리 바빠서 이리도 오래 걸렸나 싶은 마음과 지금이라도 읽게 되어 참 다행이다 싶은 마음이 동시에 든다. 불쑥불쑥 왔다 갔다 하는 마음은 내가 다스려야 할 일이고 중요한 것 그리고 확실한 것은 <니체와 철학하기> 3번째 시간에 채운 강사님이 니체의 ‘자유’ 개념을 설명하면서

https://m.blog.naver.com/2gafour/221402429924

예로 든 소설 속 인물 ‘바틀비’를 만나봤고, 허먼 멜빌이 ‘바틀비’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소설 속 인물 특히 주인공은 어느 정도 작가의 경험에서 탄생되기 마련인데, 바틀비는 역자 해설에도 나와 있듯이 ‘작가의 슬프고도 간절한 페르소나’이다. 최근에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이런 문장을 썼었다. ‘비록 그(프레디 머큐리)의 육신은 이 세상에 더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의 목소리와 그의 인생은 아직도 그리고 앞으로도 이 세상에 남아 계속될 것임을.’ 오늘 ‘바틀비’를 통해 또 한 번 느꼈다. 허먼 멜빌의 신체는 사라졌지만 그의 정신은 ‘바틀비’와 함께 지속될 것임을. 그렇기에 저자가 당대에는 비록 인정받지 못하는 작가였지만, 오늘날 미국 낭만주의 문학의 3대 거장으로 평가받는 것임을.




사실 ‘바틀비’에 대한 해석이나 평가는 내가 아니어도 이미 저명한 철학자들이 많이 내놓았기 때문에 나는 이 짧은 소설에 이토록 많은 의미를 담아낸 작가에 주목하고 싶다. 이 작품은 마음먹으면 1시간 남짓이면 다 읽을 정도로 짧지만 화자와 바틀비 그리고 화자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다른 직원 3명, 총 5명에 대한 작가의 입체적 묘사가 탁월하다고 생각된다. 특히, 정오를 기준으로 컨디션을 바통 터치하는 터키와 니퍼즈, 그들로 인해 화자가 겪는 고통에 대한 묘사는 읽던 책을 잠시 덮어놓고 눈을 감고 그 장면을 떠올려보게 만든다. 내가 그 시대, 그 나라, 그 직업을 경험해보지 않았어도 그 사무실 안에서의 그들의 기운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정말 부끄럽지만 한 때 단편소설이랍시고 끄적였던 파일들이 이 노트북에 저장되어 있다. 당시에 개인적으로 몰두할 수 있는 것이 필요했고, 그것이 나에게는 소설 쓰기였다. 돌아보면 청소년 시절에 요즘 팬픽이라고 불리는 형태의 글을 혼자만의 노트에 썼던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나의 것을 쉽게 공유할 수 있는 문화나 환경이 아니었기에 그 노트들은 내 방 한구석에 쌓여 있다가 몇 번의 이사를 하는 과정에서 다 사라졌다. 하지만 몇 년 전 썼던 단편소설은 완성본만 무려 9편인데 (그중 6편을 브런치에 공개했다니!!) 이 노트북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언제든지 클릭 몇 번으로 그 글들을 다시 읽어볼 수 있다. 그러나 나도 그것만큼은 “하지 않는 쪽을 선호합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부끄럽고 민망하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그런 감정 때문만은 아니다. 그 글들의 심각한 문제를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서이다.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괴롭지만 그 글들은 철저히 ‘나’만 공감할 수 있는 글이었기 때문이다.




멜빌 그리고 다른 많은 위대한 작가들 중 그 누구도 ‘자신’만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지는 않는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그 글을 읽는 사람만이라도, 그 글 전체의 내용에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어느 한 구절에라도 ‘타인’들이 공감하는 글을 쓴다. 내가 썼던 글들은 몇 개의 신문사의 신춘문예 관련 담당자 중 몇몇이 한 두 페이지는 읽어봤겠지만 아마 바로 쓰레기통으로 버려졌을 것이다. 대화를 할 때도 자기 이야기만을 하는 사람은 힘든데, 안 그래도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글에 자기 이야기만을 담으면 누가 읽겠는가? 그동안 주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잘한다’는 칭찬을 종종 들어왔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것은 그저 ‘호응을 잘한다’의 조금 더 기분 좋은 조금 더 친화적인 표현이었던 것 같다. 더구나 내가 다른 사람의 말에 공감할 줄 아는 것과, 다른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은 얼마나 다른 것인가? 그 차이를 좁히기 위해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관찰하겠다는 다짐을 다시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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