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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냥이 Jun 24. 2021

그날,  EP03-11화

희망이라는 것은 내가 만들어야 하는 걸까?

- EP03-10화에 이음-


박 상사에게 끌려가면서도 나의 시선은 수연에게 멈춰있었다. 수연의 가냘픈 몸을 온통 옥죄어있는 그놈의 나무줄기 같은 것들을 당장에라도 끊어버리고 싶었다. 계란형의 하얀 작은 얼굴은 더욱더 창백해져 있었고 감은 눈은 금방에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이 슬퍼 보였다. 아랫배에 고이 놓인 두 손은 여전히 희고 고왔다. 박 상사와 내가 상부와 무전하기 위해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금방 돌아온다고 다짐했는데. 이 아이는 어떻게든 지켜보려고 했는데, 혼자 둔 것이 못내 아쉽고 미안했다. 그때 박 상사가 나에게 소리쳤다.


"남수 씨! 정신 차려요!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남수 씨!"


박 상사는 나의 뺨을 세차게 때렸다.


"찰싹! 퍽!"

"정신 차리란 말입니다!"

"타타타타! 펑! 펑!"

"소장님!"


그제야 정신이 조금 들었다. 마크는 나와 박 상사를 엄호하고 있었고 동현이는 김 소장을 부축하며 몸을 피신하고 있었다. 수연을 동화시킨 그놈은 동현이가 쏜 산탄총의 화력에 잠시 주춤하더니 공중으로 날아오르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제 정신이 들어요?"

"아, 네. 지금 이게 어떻게.."


나는 박 상사에게 멍한 얼굴로 되 물었다.


"수연이를 봤습니까?"

"네. 그런데 그게 수연이가 맞아요?"

"네. 맞습니다."

"어.. 어떻게 수연이가.. 그럼! 수연이는 죽은 건가요?"

"아직 정확하게는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 놈은 수연이를 매개체로 조금 더 진화한 놈인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수연아!"


나는 박 상사의 손을 뿌리치며 수연이가 사라졌던 곳으로 달려가려고 했지만 마크가 워낙 꽉 잡고 있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역시 미식축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움직이지 마세요. 리. 지금 당신 제정신이 아닙니다! 이미 놈은 도망쳐서 없다고요!"


마크가 나를 붙잡으며 말했다. 무식한 놈! 힘만 세 가지고!


"일단 자리를 피해야 합니다. 소장님도 부상이 심할 거예요. 놈을 잡을 수는 없었지만 분명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오케이 팍, 이곳에 있으면 더 위험해요. 미스터 리, 움직일 수 있죠? 일단 자리를 피합시다."


마크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나려는 찰나 무릎에 찌릿하는 통증으로 다시 주저앉았다. 옷이 찢어져 있었고 바지에는 피가 배어있었다.


"상처가 심하지는 않습니다. 피도 나지 않고 타박상으로 보입니다. 일단 몸을 피한 뒤 치료해 드릴게요. 움직일 수는 있죠?"


마크가 내 무릎을 보더니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마크의 부축을 받으며 박 상사를 따라나서자 건물 내부에 있던 동현이가 뛰어나왔다.


"아저씨! 소장님이!"


박 상사는 동현이의 부름에 쏜살같이 달려갔다. 김 소장은 조금 전 놈이 손을 벌려 쏜 것을 맞고 날아가 벽에 부딪쳤다.


"소장님! 괜찮으십니까? 지금 어디가 불편하십니까!"


박 상사는 김 소장 옆에 총을 내려놓고 무릎 앉아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으윽, 사람들은 어, 어떤가?"

"모두 괜찮습니다. 남수 씨가 무릎을 조금 다쳤지만 별 이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안전한 곳으로 이동한 후 치료할 예정입니다."

"다행이네. 휴우. 놈은. 놈은 어떻게 되었지?"


김 소장은 동료들의 안위를 살피고 난 후 그제야 몸을 살짝 움직였다.


"소장님이 공격을 받으신 후 동현이가 즉각 사격을 했습니다. 산탄총으로 반격하니 큰 충격을 받았는지 순간 도망가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놈의 정체를 모르겠습니다."

"내가 상대해본 봐로는 속도도 빨랐고 힘도 많이 셌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그 어떤 초능력 같은 힘을 발휘한다는 걸세. 염력같이 말이야. 분명 난 직접 타격을 입지는 않았네만 내 뒤쪽에 어떤 큰 힘이 작용해서 내가 날아간 거거든. 만약 직접 충격을 받았다면 난 모든 뼈가 바스러졌을 거네."


김 소장은 놈과의 전투를 회상하면서 눈에 초점이 흐려진 것으로 보아 정신적으로 상당히 충격을 받은 듯했다. 박 상사가 김 소장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 합니다. 저희도 재정비를 해야 하고 놈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놈들을 없앨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어디로 가야 하지?"


박 상사의 부축을 받으며 힘을 주자 김 소장의 입에서 약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끄으응, 내가 괜히 짐이 되어버렸군."


김 소장은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다. 어깨와 등 쪽에 타박상을 입었지만 뼈에는 이상이 없었기에 움직임에는 큰 무리가 없었지만 빠른 움직임에는 무리가 있었다. 당장 몸을 피해 치료를 하고 재정비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야 했다.


"지하 1층으로 가시죠. 그곳에서 잠시 몸을 피하고 재정비를 해야겠습니다."


지하 1층, 현재는 놈들이 사람에게 인간 배양을 하고 있는 연구원들의 숙소와 식당이 같이 있는 곳이다. 박 상사는 식당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럼 제가 헬기에 다녀오게요. 팍. 헬기에 퍼스트 에이드가 있습니다."


마크는 대학 미식축구팀에서 활약했던 이력이 있다. 쿼터백이었고 유망주였지만 어깨 부상을 당해 더 이상 미식축구는 하지 못했다. 이후 의대에 진학해 의학을 전공했고 현재는 미군의 군의관이었다.


"그러시죠 마크. 대신 혼자는 다녀오시면 안 됩니다. 동현이와 같이 다녀오십시오. 동현아, 대위님을 잘 부탁한다."

"네. 상사님."


동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굳은 표정으로 말하고는 마크 옆으로 움직였다.


"그런데, 놈에게 잡혀있는 수연이는 어떻게 구해야 하죠? 잘못 조준하기라도 하면 수연이가 죽을 수도 있잖아요."


내가 박 상사에게 물었다.


"아직 아무것도 알고 있는 건 없습니다. 한 가지 방법은 총을 쓰기엔 무리가 있으니 칼로 마무리를 해야 하지만 움직임이 너무 빠르기도 하고 워낙 예민해 가까이 갈 수가 없다는 것이죠. 방법을 찾아보도록 합시다."


"그럼, 빨리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박 상사는 우리를 이끌고 지하 1층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내부 계단이 무너진 지금은 외부로 이동을 해야 했다. 건물 외부에는 제작된 엔진 실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벽과 바닥이 온통 엔진 연소 실험으로 그을려있었고 두꺼운 콘크리트 뒤쪽에는 지상으로 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 입구를 이용하면 되었다.


박 상사는 제일 앞에서 우리를 이끌며 이동했고 우리는 그 뒤를 따랐다. 부상을 많이 당한 소장님이 걱정되었지만 마크의 부축으로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쿵! 꾸으윽!"

"터턱! 딱딱딱딱"


갑자기 머리 위에서 쿵하는 큰 소리가 남과 동시에 놈들이 나타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즉시 벽에 붙어 몸을 숙였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총을 겨누고 숨을 죽이며 경계를 했다.


"꾸으윽. 딱딱딱."

"쿠쿵!"

"쿠쿠쿠쿠쿠쿠쿵!"

"쿠쿠쿵!"

"쿠쿠쿠쿠쿵!"


지상 1층에서 한 마리의 놈이 보이더니 주변을 살피고는 어디인가를 바라보며 이상한 소리를 냈고 놈이 바라본 방향에서 갑자기 다수의 놈들로 보이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주변 상황을 살펴보던 놈은 지금까지 봐 왔던 놈과는 전혀 다르게 생긴 종이 었다.


한 단계 더 진화된 모습이었고 귀여웠던 모습은 없어지고 흉측하게 변했으며 키는 2미터가 훨씬 넘어 보였다. 팔다리는 얇았고 팔꿈치와 무릎에는 뾰족하게 뼈가 도드라져 보였다. 허리는 길었고 척추뼈는 살짝 둥글게 굽어있었으며 척추 관절은 단단해 보였다. 적갈색의 피부는 익룡의 것처럼 매끈해 보였지만 피부가 두꺼워 웬만한 총탄 정도로는 공격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이놈들은 또 뭘까요? 박 상사님. 혹시 또 진화한 걸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새로운 종인 것 같습니다. 인간에게 배양해서 나타난 생물인 거 같습니다. 있다가 놈들이 모두 나가게 되면 빨리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10여 마리 정도의 놈들이 건물에서 뛰쳐나왔고 외벽을 타고 올라가 금빛으로 빛나고 있는 텔레포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문득 이상한 생각에 나는 김 소장에게 물었다.


"소장님. 소장님의 헬기가 저 포트를 통해 나오신 거 맞죠?"

"네. 맞습니다. 저도 어디론가 통할 수 있는 포트라고 생각해서 헬기를 몰았던 것이죠."

"그렇다면 저 포트의 끝은 어디인가요?? 소장님이 계셨던 괌인가요?"

"네, 하지만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잠시 후 박 상사가 우리에게 신호를 보냈다.


"쉿, 잠시만요."


우리는 박 상사의 시선을 따라 놈들이 움직이는 곳을 바라보았다. 텔레포트로 움직이던 놈들 위로 수연과 동화된 놈이 나타났다. 유일하게 공중에 떠 있는 놈은 그놈 하나였고 놈들을 부하 다루는듯한 몸짓을 보이고 있었다.


수연은 놈들의 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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