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상냥이 Jun 29. 2021

그날, EP03-13화

우리에게 다시 푸르른 날은 올까?

-EP03-12화에서 이어집니다-


"짹짹. 짹짹."

"위이이잉. 쿠덩, 쿠덩, 턱턱."

"우우웅"

"일어났어? 해가 벌써 중천인데 이제야 일어나냐. 진짜 잠만보. 빨리 일어나 뺄래 좀 돌려."


여느 때와 같았던 느긋한 일요일. 아내는 아침부터 바빴다. 활짝 열린 창문에서는 새소리가 지져귀었고 아내가 고른 흰색 레이스 커튼은 바람에 살랑였다. 햇살은 커튼을 맞고 산란되어 거실을 따뜻하게 비춰주고 있었고 베란다에 놓인 작은 화분들은 햇살 속에서 예쁜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찰싹! 빨리 일어나라니까!"

"아웅, 어제 너무 늦게 잤단 말이야."

"그러게 밤새 게임을 하냐! 으이그. 오빠가 10대 어린이야? 토요일만되면 아주 게임에 빠져가지고!"

"이번에 우리 회사에서 론칭한 거라 리뷰해야 한단 말이야. 그래서 그랬지 뭐."

"그래그래. 오빠 게임회사 다니는 거 참 다행이야 그렇지? 그 나이 먹도록 게임만 하다가는 어떤 마누라가 좋다고 하겠냐. 이그."


아내가 내 등짝에 선명한 손자국을 내고는 빨리 일어나라며 타박을 한다. 잠시 새우눈을 떠 머리맡에 있는 탁상시계를 바라보았다.


[AM 08:59]


속았다. 아직 멍한 얼굴로 일어나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해가 중천이라는 말에 속아 일어난 게 못내 아쉬워 이내 아내를 다시 불렀다.


"자기야~"

"일어났으면 빨리 나와서 이 닦고 밥 먹어야지!"

"자기야 이리 와 봐~"


아침을 차리다 말고 아내가 방으로 들어왔다. 머리를 뒤로 말아 올려 질끈 묶은 아내는 아내가 좋아하는 핑크색 레이스가 달린 앞치마를 하고 있었다. 심쿵. 심장이 두근거렸다.


"일어났으면 나오지 않고 왜 불러."

"여기. 등에 뭐가 난 거 같아. 아아. 한 번만 봐주어봐."

"등에? 종기가 났나? 아파?"


살짝 등을 보이며 엄살 피우는 내게 아내는 걱정되는 얼굴로 다가와 등 뒤에 앉으며 말했다.


"어디? 괜찮은데?"

"아이, 잘 좀 봐봐. 여기 날개 쪽말이야."

"어디! 아무렇지도 않는구먼 어디서 엄살이야."

"엉? 괜찮아?"

 

나는 아내를 바라보며 몸을 돌려 앉아 못 말린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아내를 와락 껴안으며 침대로 눕혔다. 3:0 국대 레슬링 선수도 울고 갈 만한 태클 솜씨라고 혼자 생각했다.


"꺄아악! 야!"

"으헤헤 일루와 봐~"

"아침부터! 이 사람이 정말!"

"에헤헤 일요일 아침부터 왜 이렇게 바빠~ 일루 와~"

"딱!"

"악!"

"얼른 일어나. 국 넘치겠어. 그리고 그런 건 예고를 하고 나오는 거야. 20대 파릇파릇했던 시기에나 통했던걸 아직도 하려 하냐."

"쩝"


아내에게 꿀밤을 맞고 멋쩍을 표정을 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아내는 주방으로 뛰어갔다. 은근슬쩍 싫지 않은 표정을 하고 있는 아내를 보고 이내 따라 나갔다.


"우와앙~ 맛있는 냄새!"

"빨리 씻고 오라 했다."

"넵."


얼른 고양이 세수를 하고 자리에 앉은 나는 아내가 차려놓은 배추 된장국 한 숟가락을 호로록 마셨다. 리뷰하느라 피곤했던 전날의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이었다.


"역시 맛있어. 음~ 어쩜 이리 된장국을 맛있고 달달~하게 만드나 몰라."

"백종원 레시피."

"응?"

"그 아저씨가 만들어놓은 레시피대로 한 거야. 딴소리 말고."

"그래도 자기가 만들어서 그런지 더 맛있는데~"

"씨익."


나의 계속되는 칭찬에 아내는 씨익 웃어 보였다. 토요일, 주말인데도 하루 종일 놀아주지 않고 일만 하는 내 뒷바라지를 하느라 피곤했을 아내인데 일요일 아침까지 일찍 일어나 밥을 차려주는 아내에게 못내 미안했다.


"있다가 밥 먹고 빨래 좀 돌려줘. 내가 청소기는 돌렸는데 닦지는 못했어. 화장실도 청소해주고."

"웅웅! 후루룩."

"맛있냐."

"후루룩, 꿀꺽. 캬."


나는 맛있냐고 묻는 아내에게 된장국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는 것으로 대답하고는 그윽한 눈으로 아내를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내 아내가 사랑스러운 눈빛을 보내며 나를 보며 말했다.


"다 먹었으면 청소를 해 볼까? 청소 다 하면 내가 선물 줄게."

"선물? 무슨 선물?"

"비밀이지. 벌써 말해주면 김 빠지잖아. 일단 청소 해. 내가 검사할 거야."


갑자기 전투력이 상승한 나는 빈 그릇을 싱크대에 던져놓고 세탁실로 달려갔다. 룰룰루~ 휘파람을 불며 세탁기를 열어 빨래를 집어넣고 세제를 부었다.


"빨래가~ 이만큼이니까~ 세제는~ 요오오오만 크음~"

"띠리리. 표준모드. 세탁 시작합니다."

"우우 우웅~"


힘차게 돌아가는 세탁기 모터 소리를 들으며 나는 일회용 걸레 한 장을 뜯고는 집안 구석구석 닦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에~ 먼지는 많은 것이냐 아~"

"으이그."


아내는 흥얼거리며 청소하는 나를 보며 귀엽다는 듯 미소를 보냈다. 나는 전날 리뷰 작업으로 어지럽혀있는 게임기와 노트들을 정리하고 노트북의 전원을 껐다.


"딸가닥. 착착."

"내 바압벌이~ 인누와 인누와아~"

"이번에 나온 게임은 어때? 잘 될 거 같아?"

"아직 잘 모르겠어. 오픈 베타이긴 하지만 반응은 괜찮은 거 같아. 버그가 좀 있는 거 같아서 그거 리뷰하느라고 밤샜네. 헤헤."

"그래도 몸 봐가면서 해. 작업하다가 시간 지나면 오늘 해도 되잖아. 일요일인데."

"일요일은~ 당신과 함께하는 나아알~"

"참나. 귀엽기는."

"으허허허~"


거실을 정리했더니 꽤나 넓은 공간이 보였다. 나는 일회용 물걸레로 바닥을 쓱싹 닦았고 먼지 털이용 부직포로 TV를 정성스레 닦았다. 그러다 갑자기,


"딱!"

"악!"

"파사삭!"


TV 앞에 놓여있던 작은 액자 하나가 팔에 걸려 발등 위로 떨어졌다. 액자가 깨지며 유리 파편이 흩어졌고 놀란 아내가 나에게 뛰어와 보고는 속상한 마음에 소리쳤다.


"또 왜! 이그! 조심 좀 하지! 그렇게 덜렁대더니! 어디 봐 바!"

"아니이, 난 살살~ 살사알~ 닦고 있었는데 갑자기 팔에 걸려서.."

"피나잖아! 다른 데는! 다른데 다치진 않았어?"

"우웅. 괜찮아.. 헤헤"

"오빠! 넌 다쳤는데도 웃음이 나냐! 아프지도 않아?"

"여기 이렇게 내 천사가 달려와줬는데 왜 아파~"

"어찌 그리 무디냐. 진짜. 이리 와 봐! 약 바르게."

"위험해. 여기 유리부터 좀 치우고."

"나 슬리퍼 신었으니까 괜찮아. 이것만 발라주고 갈 테니까 깨끗하게 치워. 알았어?"

"알았어요~"


그렇게 우리는 여느 가정과 같은 행복한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연애시절 같이 찍은 사진이 들어있는 액자가 깨진 게 못내 마음속으로 걸렸지만 별일 아니라는 듯이 금세 잊혔다.



"당신 내일 회사 일찍 가야 한다 하지 않았어?"

"움? 웅. 내일 신규 게임 개발 계획이 잡혀있어서. 회의 좀 해야 해."

"그럼 빨리 자."

"아까 선물 준다며!"

"아까 오빠 다치고 나서 깜빡했다 뭐. 그럼 아까 이야기하지! 이제 생각났냐?"

"그, 그래도!"

"일루 와. 내가 재워줄게. 오늘 말 잘 들은 내 선물이야."


아내는 나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나를 가슴에 꼭 안아줬다. 나는 그런 아내의 품에 안겨 행복한 주말을 마무리했다. 이날 이후로 아내의 얼굴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품에 안겨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지금도 선명한 아내의 살내음이 몹시 그리워졌다.



***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오케이 리. 여기는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세요."


박 상사의 복부를 지혈하며 마크가 대답했다. 박 상사와 김 소장이 부상인 것은 우리에게 치명타와 같았다.


"동현아. 잘 부탁한다. 아저씨 빨리 돌아올게."

"네. 걱정하지 말고 빨리 다녀오세요."


돌아서는 찰나, 김 소장이 나를 불렀다.


"아, 남수 씨 이거 가져가세요. 나가실 때 이곳 문 잠그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 네. 소장님. 빨리 돌아오겠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중문이 있었던 식당은 놈의 공격으로 벽면이 완전히 허물어져 있었고 놈들의 배양소로 사용되던 숙소까지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내가 없을 때 갑작스러운 놈들의 공격이 이어지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 것이었다.


"입구, 잠금 설정."


나는 지하 1층 입구를 김 소장의 신분증으로 잠그고 경계자세를 취하며 소리 나지 않도록 한 발자국씩 움직였다. 헬기는 지상에 위치해 있었으니 한 개 층만 올라가면 되지만 지금은 혼자 움직여야 한다. 지상 1층으로 나가는 계단부터는 빠르게 움직일 생각이었다.


"탁. 탁. 딸깍."

"팟"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전등의 스위치를 켰다. 어둠 속 희뿌옇게 보였던 계단이 밝아지며 시야가 넓어지기 시작했다.


"땅! 땅땅!"

"흠칫!"


아무도 없는 계단에서 갑자기 무언가 땅 하고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나는 흠칫 놀라 조심스레 거총을 한 채로 계단 난간의 위와 아래를 겨누었다. 아무것도 없음을 확인하고는 1층으로 들어가는 문에 손을 뻗어 천천히 열었다.


"철컥, 끼이이이"


종희가 희생되었던 1층 로비가 눈에 들어왔다. 가슴 한편이 쓰려왔지만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계단 문을 닫은 로비 주변을 한번 눈으로 스캔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타탁, 타 타탁!"

'후욱. 최대한 빨리 다녀와야 해. 놈들이 또 어디서 나타날지 몰라.'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100미터를 13초대에 뛰던 나였지만 40대 중반을 달려가고 있는 지금은 배 나온 아저씨일 뿐이었다. 운동 좀 하라던 아내의 말을 듣지 않고 놀고먹었던 것이 못내 후회되었다.


"퍽!"

"으아악!"

"데굴데굴. 탁."

벽면을 따라 빠르게 뛰어가던 나는 갑자기 무언가 발에 걸려 데굴데굴 굴렀다. 뒤 돌아 확인하니 어떤 가방 같은 것이 하나 놓여있었고 나는 아픈 다리를 절뚝이며 가방을 들어 올렸다.


"이건 웬 가방이지? 우리가 가져온 건 아닌 거 같은데."


처음 보는 가방을 어깨에 들쳐 메고 다시 아파치가 있는 곳까지 달려가기 시작했지만 지하 10층에서 있었던 놈과의 전투에서 다친 무릎에 다시 통증이 왔다.


'아윽. 아까 다친 곳을 또. 젠장.'


절뚝거리는 다리를 끌며 아파치에 도착한 나는 조종석 문을 열고 올라탔다.


"부조종석 뒤쪽이라고 했지."

"덜컥!"

"아! 여기 있다!"


내가 아파치에 올라 이머진시 케이스에서 퍼스트 에이드 키트를 꺼내는 동안 검은 그림자 하나가 아파치 앞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아직 잿빛 낙진이 떨어지고 있는 하늘은 붉게 빛나며 태양이 넘어가고 있었고 어둠이 빠르게 가라앉고 있었다.



-EP03-14화로 돌아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날, EP03-12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