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도상국 이야기
현대 조지아 국기는 1991년 항소련 독립운동 때부터 사용된 것으로 2004년에 제정되었습니다. 흰색 바탕에 십자군을 상징하는 5개의 붉은 십자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도 설명: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 지역인 코카서스 (Caucasus)에 위치한 조지아는 서쪽으로 북해와 마주하고 북쪽으로는 러시아, 남동쪽으로는 아제르바이잔, 남쪽으로는 터키와 아르메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수도는 트빌리시(Tbilisi)입니다. (출처: UN)
미국의 조지아 주(州)와 혼동되기도 하는 유럽의 국가 조지아는 2016년 기준 GDP 약 US$143.7억 (출처: 세계 은행) 의 세계 116위의 저개발국가입니다. 1991년 구 소비에트 연방에서 독립한 조지아에는 약 456만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전체 인구의 83% 이상이 조지아인, 이외에 아제르바이잔인, 아르메니아인, 러시아인 등이 조지아 영토 내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지아라는 국명은 로마시대의 기독교 성인 게오르기우스 (St.Georgius 영문표기St.George)를 흠모한 조지아인들이 성인의 이름따서 국명을 정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러한 설에 부합하듯, 조지아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기독교 국가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유럽의 가장 오랜 기독교 국가는 아르메니아입니다)
사진설명: 조지아의 전통의상을 입은 조지아인 청년들 (출처: Vadiroma)
조지아는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의 경계 지역에 위치해 교통 및 교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강대국이었던 그리스, 로마, 터키 제국들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독립된 나라로 가장 큰 세력을 떨친 시기는 10-13세기 조지아 왕국이 강성하던 때입니다. 특히 조지아 왕국의 황금기라고 불리는 12-13세기 동안 다수의 대성당들이 건축되었고 민족 서사시 ‘표범 가죽을 입은 기사 (Knight in the Panther's Skin)’와 같은 조지아 문학사에서 중요한 작품들이 이 시기에 탄생되었습니다.
사진 설명: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쇼타 루스타벨리의 서사시- ‘표범 가죽을 입은 기사’ 필사본 컬렉션. 코카서스와 중동 지역의 중요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측면을 세밀하게 묘사하여 역사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출처: UNESCO)
황금기 이후 조지아 왕국은 약 800년 동안 몽골 제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침략으로 점점 약화되어, 봉건 제후들이 다스리는 여러 영토들로 분열되고 16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 사파비 페르시아와 터키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습니다. 18세기 후반에는 조지아로 세력을 넓히던 러시아가 조지아에 대한 완전한 지배권을 얻게 됩니다. 이 후 조지아 전역에는 러시아 제국의 지배에 저항하는 민족주의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됩니다.
1890년대부터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조지아 출신의 민족주의자 중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사람은 ‘이오세브 주가슈빌리 (Ioseb Besarionis dze Jughashvili)’ 라는 낯선 이름을 지녔던 한 청년입니다. 이 청년이 바로 러시아어로 “강철”이라는 뜻을 가진 ‘스탈린’이란 이름으로 개명하고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켜 구 소비에트 연방 총리가 되는 이오시프 스탈린(Joseph Stalin)입니다. 스탈린은 조지아의 수도 트블리시에 소재한 신학교를 다니던 중 공산주의 서적들을 접하고 점점 종교와 민족보다는 마르크스주의를 우선시하게 됩니다. 이후 러시아 사회민주당에 입당하고 볼셰비키파의 지도자로 성장하면서 조지아가 아닌 러시아로 활동무대를 옮깁니다.
사진 설명: 1902년 당시 23세의 스탈린 (1878-1953)의 사진이 표지로 사용된 시몬 세백 몬테피오레의 ‘젊은 스탈린 (Young Stalin)' 전기. 가난한 구두공의 셋째로 태어나 형제들 가운데 어린 시절 유일하게 살아남은 스탈린은 노래와 시, 문학을 좋아하는 감수성이 풍부한 소년이었습니다. 또한 운동도 좋아해서 비록 키가 작고 왼팔이 오른팔보다 짧은 장애가 있었지만 육체적으로도 건장한 편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성직자가 되길 원하여 가난에도 불구하고 신학교에 보냈지만 스탈린은 마크르시즘을 접한 후 공산주의자 및 노동운동가가 됩니다. 그가 소련의 최고 지도자로 있었던 1924년부터 1953년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반동분자라는 이유로 잔인하게 숙청되어 사후 '조지아의 인간 백정'이라는 별명이 붙었으나 러시아나 조지아에서는 '독일의 나치즘을 종식시키고 소련을 초강대국으로 만든 영웅'이라는 인식이 강해 아직까지도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입니다.
사진 설명: 1945년 2월 우크라이나의 얄타에서 영국의 처칠 수상과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과 자리를 함께한 스탈린.
1917년 2월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이 붕괴되자 조지아는 '조지아 민주공화국' 이라는 공식 국명으로 서방 사회와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승인받습니다. 그러나 1921년 스탈린이 이끄는 소련의 붉은 군대가 다시 조지아를 점령하고 볼셰비키파 정부를 세우게 됩니다. 이 때 조지아와 소련 정부 내에 조지아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볼셰비키 온건파와 소련 중앙정부에 철저히 순종하는 볼셰비키 강경파 사이에 갈등이 벌어집니다. 특히 소련이 조지아를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과 함께 자캅카스 연방 (Transcaucasian SFSR)에 편입시키려고 하자 볼셰비키 온건파의 격렬한 저항이 발생되고 이를 진압하기 위해 강경파 스탈린은 조지아 민족주의자 십만 명 이상을 시베리아 강제수용소로 보냅니다. (한 때 조지아의 민족주의자였던 스탈린이 자신의 권력과 야욕을 위해 수많은 조지아인들을 숙청했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1936년에 자캅카스 연방은 해체되고 조지아는 1991년 독립을 할 때까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연방(USSR)’의 종속국이 됩니다.
지도설명: 구 소련 (USSR)의 지도. 오렌지 색의 15개 국가가 모여 소련을 이루었으나 1991년 독립국으로 해체됩니다.
1989년 11월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의 공산정권이 붕괴 조짐을 보이면서 조지아는 독립을 주장하며 소련에 대항합니다. 이에 소련군은 시위하는 조지아 군중에게 총을 발포하여 수많은 사상자가 나오면서 반소련 독립운동은 더욱 크게 확산됩니다. 조지아는 소련 연방이 공식적으로 붕괴되는 1991년 12월로부터 8개월 전 독립을 선언하며 소련으로부터 분리됩니다. 그러나 친러 성향의 남오세티아와 압하스 지역의 독립 선언 및 정당 갈등으로 1992-1994년간 조지아는 내전에 돌입하고 1997년에 이르러서야 정권이 안정됩니다. 이 후 2003년 정부의 부정부패를 규탄하는 무혈 시민 운동 ‘장미 혁명’을 통해 1992년부터 집권했던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이 퇴진하는 등 다양한 정치적 변혁기를 거칩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전날에는 조지아에서 독립해 러시아로 편입하려는 남오세티야를 둘러싸고 ‘5일 전쟁’으로 불리는 러시아-조지아 전쟁이 발발하여 코카서스 지역 전반에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습니다.
사진 설명: 2008년 발발한 러시아-조지아 간의 참혹한 전쟁 실상과 종군기록을 보여주는 레니 할린 감독의 헐리우드 영화 ‘파이브 데이즈 오브 워 (2011)’
현재 조지아와 러시아 관계는 2012년 새로운 친(親)러시아 행정부 출범 이후 단절되었던 외교 관계나 무역이 재개되는 등 일부 분야에서 관계가 개선된 상황이지만 여전히 조지아 내에서는 2008년 전쟁으로 인한 강한 반감과 남오세티아와 압하스 독립 문제 및 에너지 자원의 소유권 갈등으로 인해 러시아에 대한 여론이 호의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러시아는 조지아에 대해 회유책을 써가며 관계 개선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태도 변화의 이유는 조지아가 현재 우크라이나를 놓고 러시아와 대립중인 유럽연합(EU)과 미국 중심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희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2월 EU가 조지아인에 대해 무비자 여행을 승인하자 러시아 역시 무비자 여행을 승인을 검토 중이라고 대응하였는데 이 또한 러시아의 EU에 대한 민감한 태도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역사적으로 우여곡절이 많은 조지아는 사실 ‘코카서스의 이탈리아’라고 불릴 정도로 음식이 맛있기로 유명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19세기 러시아의 대문호 푸쉬킨(Alexander Pushkin)이 “음식 하나하나가 시와 같다 (every Georgian dish is a poem)”라고 극찬한 것처럼 조지아 음식은 여러 민족과 문화가 섞여 다채로운 맛을 냅니다. 특히 조지아는 와인의 최초 발생지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주장을 입증하듯 흑해 연안에서 8천년 전의 포도씨가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사진 설명: 다채롭고 맛있기로 유명한 조지아의 전통 음식들. 사진 왼쪽에 보이는 힝칼리 (킨칼리)라고 불리는 조지아의 전통 만두는 만두피가 두껍고 그 안에 고기 및 육즙이 들어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출처: 조지아 관광청).
조지아는 2003년 장미혁명 이후 새로운 민주주의 국가로 혁신하기 위해 기존의 부패한 장관들을 포함한 다수의 고위 공무원들과 경찰들을 대거 해고하는 한편 세금의 종류와 수를 축소하는 등의 급진적인 정부개혁과 경제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러한 피나는 노력 덕분에 2011년에는 GDP 성장률 7.2%를 기록하였고 세계 은행이 189개국 (2016년 기준)을 대상으로 선정하는 ‘비지니스하기 좋은 국가 (Ease of doing business index)’ 순위에서 112위 (2004년)의 하위권에서 8년만에 최상위권인 16위(2012년)로 순위가 급상승하였습니다. 이는 세계 은행이 평가를 시작한 이래 최고의 도약으로 기록됩니다. 2015년 기준으로 24위로 순위가 다소 하락했지만 여전히 코카서스 지역에서 사업 및 투자하기에 가장 좋은 나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도표 설명: 1990년부터 2015년까지의 조지아 GDP 그래프. 2014년 유가하락으로 인해 주요 수출국인 러시아와 주변국들이 큰 타격을 받으면서 2015년의 GDP가 다소 감소한 모습입니다.
조지아는 2011년 이후 경제 성장율이 다소 둔화되어 2016년 GDP 성장률 2.7%를 기록했는데 이는 주요 무역국인 러시아와 주변 코카서스 지역의 불경기로 인해 수출, 송금 유입 및 투자가 감소되고 (2015년 기준 각각 24%, 23%, 34% 하락) 주요 산업인 관광업이 침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무역상대국들의 화폐 평가절하와 자국 내 정치적 불안까지 겹쳐 조지아 화폐 라리(Lari)가치는 2015년 1월부터 정부가 개입한 9월까지 크게 하락 (약21%) 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지아는 유럽, 아시아, 중동의 교차점에 위치해 다양한 시장의 접근성, 인프라 및 에너지 관련 프로젝트들을 통한 꾸준한 사회 인프라 개선, 높은 정부 청렴도 등 여전히 다양한 투자 매력을 지닌 나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작년 8월 조지아 정부와 한국의 수자원공사 (K-water)가 이탈리아 건설사 살리니 임프레질로(SaliniImpregilo)와 함께 추진 중인 넨스카 수력발전소 건설 (Nenskra hydropowerproject)은 조지아가 독립한 이후 최대 규모의 수력발전 프로젝트로 완공 시점인 2020년 이후에는 조지아 전역은 물론 해외까지 수출될 수 있는 전력이 생산될 전망입니다.
사진설명: 2014년 한국의 수자원공사와 함께 넨스카 수력발전소 건설을 지원하기로 협약하는 조지아 정부 (출처: Nenska 홈페이지)
또한 간편한 인허가 제도, 낮은 관세율, 주변 국가들과의자유 무역 협정, 노동자의 높은 교육 수준 및 영어 구사력도 향후 조지아 경제발전에 긍정적인 요소들로 작용될 것입니다. 이러한 친사업적인 환경을 바탕으로 현재 지속되고 있는 정부의 환율조정 정책과 아제르바이잔, 이란, 러시아 등의 주변국들과의 전력망 보완 정책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어 현재의 경제 침체기를 완만히 극복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해 봅니다.
저자 약력: 런던 소재 국제금융기구인 유럽개발부흥은행 (EBRD) 근무. 유럽, 중앙아시아, 북아프리카 등EBRD의 27개 개발도상국 관련 업무 담당. 해외 투자 은행, 사모 펀드, 임팩트 펀드, 프랑스 OECD 근무.
* 아름다운 자연으로도 유명한 조지아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은 아래의 다큐멘터리를 추천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LXWC4enm_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