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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치아 Sep 15. 2024

에필로그. 매일 폴댄스로 스트레스 푸는 여정의 시작

폴댄스 동작·콘셉트 사전

어린 시절부터 '이름'이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반면 어린 시절 상대적으로 '얼굴'이 예쁘다는 말은 덜 들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첫 딸의 외모에 관심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피부가 촉촉해지라고 존슨앤존슨즈 베이비로션을 매일 밤 발라줬고, 유치에서 영구치로 넘어가는 시기에 앞니만큼은 예쁘게 자리 잡아야 한다며 치과에서 뽑아줬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엄마는 내가 유치원에 가기 전까지 계속 내 헤어스타일을 숏컷으로 잘랐다. 거기다 어린 시절 '남자색'이라고 부른 '파란색'류 옷을 주로 입혔다. 지금도 '나 이 색 싫은데'라고 속으로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커서 엄마에게 물어보니 이유가 있었다.


"여성스러운 게 안 어울리더라구"


어린이 시절 사진을 보면 저 단호박 같은 말이 단번에 이해된다는 것은 슬픈 현실이다. 우리 엄마는 참 현명하시게도 안 예뻐 보일 바에, 스타일리시해 보이기라도 하는 편을 택한 것 같다.


초등학생 때는 보통의 몸매, 보통의 학생이었다. 그때만 해도 공부를 잘해서 초등학교 시절에는 반장, 부반장을 많이 했다. 100미터 달리기는 늘 20초를 넘길 정도로 운동신경이 빵점, 음악도 거의 바닥 수준이라 부끄러울 때가 많았지만 그림은 잘 그리는 편이었고 '모범생'으로 통했었다.


중학교 때에 비로소 미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엄마가 집에서 '홈트'하는 걸 자주 봤다. 당시 '이소라 다이어트 비디오'가 선풍적인 히트를 쳤는데, 엄마는 당연히 그걸 구매해 즐겨 봤고, 이후 엄마는 '조혜련 다이어트 비디오'도 샀다. 엄마가 운동할 때 나도 가끔씩 따라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등교 전 10분씩 매번 홈트를 하고 학교로 갔다. 그래서 중학생 때 나는 날씬했다.


고등학교 때에는 인생 최고 몸무게를 찍은 때다. 과체중이었다. 이건 다 성적이 안 나와서다. 학군을 옮겨 고등학교에 진학한 결과 거의 반에서 꼴찌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때 무슨 운동인가. 공부를 못하면 엉덩이 싸움이라도 해야지. 스트레스 받는데 매일 밤 과자도 한 봉지씩 먹고. 그래서 그 몸무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꼴찌 탈출'에 집착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다시 외모에 관심을 갖게 됐다. 엄마는 이때부터 더욱 적극적으로 "여자는 살찌면 안 돼"라고 나에게 주입했다.


그렇게 살도 좀 빼고, 화장도 하고, 꾸미다 보니 20대 중반 이후에는 예쁘다는 말을 좀 들었다. 절정은 30대 초반이다. 칭찬을 받기 좋은 직업 특성 덕에 '미녀 기자'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니까 나는 타고난 미녀는 아니지만, 노력과 운(직업운)으로 예쁘다는 말을 조금이나마 더 듣게 된 케이스다.


타고나지 않았기 때문에 끊임없이 노력할 수밖에 없다. 타고난 미녀는 가만히 있어도 아름답겠으나, 나는 내 안에 꽁꽁 숨겨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 끌어 내야만 하니 노력은 필수다.


그 결과 '인생에서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뭐야'라고 물었을 때 20대 이후로는 줄곧 '아름다움'이었다. 돈을 좋아하고, 배우는 것을 좋아하지만 '부'의 추구나, '배움'의 추구는 아름다움의 추구보다 항상 하위에 놓였다.


그런데 3년 전, 그런 나에게 사고가 생겼다. 죽을 뻔한 사고였는데, 럭키하게도 죽지 않고 살았다. 대신 얼굴 쪽이 다쳤다.


'이제 누가 나를 예쁘다고 해줄까?'


아름다움을 최우선 가치로 놓은 나에게, 얼굴을 다친 그 사건은 여전히 극복해야 할 과제다. 사고 직후에는 긴 치료 기간이 필요했기에 휴직해야 했는데, 그 상황은 자존감을 짓눌렀다. 일을 너무나 좋아했던 사람이라 갑자기 일을 못하게 되니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얼굴은 다쳤지만 다른 몸은 너무나 건강해서,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없을 수 있는 긴 휴식기에 책도 많이 읽고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문득 프랑스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던 1년 동안에 몇 번 배웠던 룸바가 떠올랐다.


그 시절 룸바가 준 황홀한 느낌을 잊은 적 없다. 어떤 경험도 그와 비슷한 느낌을 주지 못해서다. 당시 일본인 여자 선생님이 룸바를 가르쳤다. 그녀는 늘 맞잡은 손으로 자신의 '스피릿(Spirit)'을 느끼라고 강조했다.


그러던 어느 수업 날, 선생님의 에너지와 영혼이 손으로 전달되는 느낌이 심하게 강렬했다. 그때 나는 춤을 추다가 눈물을 터뜨렸다. 동시에 최고조의 기쁨과 해방감이 들었다. 그 감정의 정체를 지금도 무엇인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사람들이 만나기 어려운 매우 진귀한 순간을 맛보았다고 확신하며, 나는 그 순간을 지금도 찾고 있다.


그래서 고통의 시기, 룸바를 배워보려 했던 것 같다. 감정의 절정을 끌어내 다시 열렬히 살고 싶었나 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룸바 수업을 하는 곳이 많지 않을뿐더러, 있다면 카바레풍의 연습실이거나, 좀 느끼해 보이는 선생님이 있어 선뜻 수강 신청을 하기 어려웠다. 느끼고 싶은 것은 그게 아닌데. 좀 우아하고 깔끔할 것 같은 곳은 너무 비쌌다. 그렇게 룸바를 대체할 것을 찾다가 발견한 것이 스피닝 폴댄스였다.


룸바와 폴댄스가 비슷한 점은 다음과 같다


1.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2. 음악의 리듬감이 느린 것들이 많다.

3. 유연성과 힘을 요구해 운동이 되고 몸매를 가꿀 수 있게 한다

4. 아름답다


폴댄스를 택한 결정은 옳았다. 룸바에서 가능한 타인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니나, 룸바를 배우는 공간의 몽환적이거나 황홀한 느낌은 풍겨 나온다.


그리고 나에게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이 있다는 걸 발견하게 했다.


나는 폴을 탈 때마다 매번 내 아름다운 구석을 찾아낸다. 급격히 휘어보는 동작에서, 평소에 보지 못했던 몸 선의 아름다움, 힘든 일과 후에도 근육을 쫀득하게 짜내는 건강한 아름다움, 처음엔 왕어색했지만 조금씩 익숙해지는 매혹의 손짓과 표정의 아름다움 등. 폴댄스는 그런 내 안의 아름다움을 꺼내준다. 내 안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면 자연스럽게 자존감이 올라가는데 이건 정말 중독적이다.


그래서인지 정말 몸매도 예뻐지고, 자세도, 몸짓도 예뻐진다. 지금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유연하고, 근육질이고, 몸무게도 덜 나간다. 그래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자로서 도무지 폴을 놓을 수가 없다. 오늘도 폴을 꼭 잡고 왔다.


폴의 또 다른 장점은 디테일의 중요성과, 하면 된다는 의식을 체득시킨다는 것, 그리고 무대를 준비하는 마음가짐을 단련한다는 것이다. 몸에 박힌 이 관념들은 의외로 일을 할 때에 엄청나게 도움이 된다. 업무를 좀 더 디테일하게 챙기게 되고, 안될 것 같은 일 앞에 포기하지 않고 도전과 강행을 유지하게 하며, 발표나 미팅에 대한 시뮬레이션, 상황에 걸맞는 애티튜드 갖추기들을 자연스럽게 여기게 된다.


2022년 5월 처음 폴댄스를 시작할 당시 접한 종목은 '스피닝 폴'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그조틱 폴'에 폭 빠져 대부분 이그조틱 폴댄스만 한다. 폴댄스 종류는 스피닝 폴과 이그조틱 폴로 나뉘는데, 둘의 차이는 폴이 돌아가느냐 안 돌아가느냐다. 폴이 돌아가는 스피닝 폴은 대체로 우아한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고, 춤을 춘다기보다 기술을 펼친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고급 과정으로 갈수록 힘이 많이 들고 허리가 부러질 듯한 유연성이 요구되며, 폴에서 아슬아슬한 동작을 하면 떨어질 것만 같은 스릴이 있지만, 완성할 때의 쾌감이 엄청나다.


이그조틱 폴은 영화에서 주로 많이 나오는 폴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체로 섹시한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고, 기술을 펼치기도 하지만 춤을 추는 느낌을 주는 게 훨씬 중요하다. 기술이 좋아도 뚝뚝 끊어지고 영혼이 없으면 꽝이다. 고급 과정으로 갈수록 역시 힘과 유연성을 요구하지만, 동작이 되느냐 안되느냐까지 좌우할 정도는 아니다. 또 땅바닥 위에서 춤추는 동작이 많아 스피닝 폴보다 공포감을 많이 유발하지 않는다. 그리고 스피닝폴보다 콘셉트가 중요한데, 이게 '변신'의 묘미를 주는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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