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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BFirefly Sep 11. 2020

장마

여기 강릉에서 우리들 가운데 살던 목성인 JBFirefly가 고향으로 돌아간 뒤 나는 그가 남겨두고 간 물품 가운데에서 이런저런 언어의 이런저런 단어의 뜻을 적어놓은 문서를 몇 가지 발견하게 되었다. 이는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JBFirefly가 목성에서 온 간첩으로서 수행한 임무 가운데 하나는 지구의 몇 언어를 연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서 가운데에는 ‘장마’라는 한국어 단어의 의미를 적어놓은 미완성 문서도 있었다. (이는 그가 이 문서 자체를 끝내 완성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고, 단지 내 수중에 들어온 종이 문서가 미완성이라는 뜻이다. 달리 말해, 내가 발견한 문서는 그가 아직 다 마무리짓지 않은 상태에서 출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완성본은 이제 그와 함께 목성에 있다고 봐야 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장 마 (帳馬)


(1)  어떤 말을 줄여서 표현할 때 제외되는 부분


‘장마(帳馬)’에 제일 먼저 부여된 의미이다. 이는 ‘장마(帳馬)’가 ‘포장마차(布帳馬車)’를 ‘포차(布車)’로 줄여 말할 때 제외되는 두 음절이라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예를 들어 ‘강릉고등학교’를 ‘강고’로 줄여말할 때 사라지는 ‘릉’, ‘등’, ‘학’, ‘교’와 이들의 모든 조합은 ‘장마’의 예가 된다. 


‘장마’를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휘장 말’이 된다. 여기에서 ‘말’은 동물의 한 종류를 가리키며 언어를 가리키는 ‘말’과 발음이 같다. 동물을 지칭하는 ‘말’이 단음이고 언어를 지칭하는 ‘말’은 장음이라는 차이만이 있다. 우리 속담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에서는 ‘말’이 일차적으로 언어를 가리키면서 또한 동물인 ‘말’도 환기시키는 언어 유희가 일어난다. 문자적으로 동물인 ‘말’을 가리키는 ‘장마’가 위의 정의에서처럼 언어인 ‘말’을 가리킬 때에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2)  회피되는 정서적 체험


의미 (1)에서 언어 표현의 일부를 제외하는 것은 주어진 표현의 의미를 더 쉽게 전달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장마’는 반드시 언어가 아니더라도 어떤 상태나 활동을 더 쉽게 하기 위해 제외되거나 회피되는 어떤 것도 뜻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게 되었다. 그런데 이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사람들 가운데 인문학자 김우창의 글을 탐독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은 이 단어를 김우창의 책 <지상의 척도>에 나오는 다음 구절과 연관짓게 되었다. 


        넓고 잡다한 세계에 대해서 우리는 매우 피상적인 지식과 관심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고 또 이 관심에서         될 수 있는 대로 정서적인 요소를 제거하여 감정적 부담을 가볍게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일 것이다. 현대         생활에서 강화되는 지적인 면 자체가 깊은 체험의 충격을 피하기 위한 방법일 수 있다. 어떤 심리학자들              이 이야기하듯이 의식은 체험을 기피하는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이 사람들은 이 인용문에서 지적하듯 지적인 사고가 정서적 요소를 체험에서 제외할 때 이러한 정서적 요소를 ‘장마’라고 부르게 되었다. 머지 않아 이런 용법은 더 널리 받아들여져 ‘장마’라는 말에는 ‘회피되는 정서적 체험’이라는 또 다른 정의가 더해지게 되었다.


(3)  탄창 (彈倉)


‘장마’의 원래 뜻에 포함된 ‘제외’라는 개념은 어떤 사람들의 의식 안에서 ‘소외’라는 개념과 연결되었다. 두 개념에 공통적으로 어떤 대상으로부터 벗어난다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러한 연상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더 나아가 소외의 개념을 특정한 이야기에 나오는 특정한 사람과 연관시키게 되었다. 그는 바로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소설 “안타까운 사건 (A Painful Case)”에 나오는 ‘제임스 더피 (James Duffy)’이다. 이 아저씨는 다른 사람과 사랑의 관계를 맺고 이로부터 행복을 느끼는 경험으로부터 소외된 사람이다. 더피는 자신의 이런 현실을 작품의 끝부분에서 ‘the Magazine Hill’이라는 언덕 위에서 절실히 깨닫는다. ‘장마’를 ‘소외’와, ‘소외’를 제임스 더피와 연관시킨 사람들은 나아가 이 단어를 더피가 자신의 소외를 자각할 때 서있던 언덕의 이름과도 연관시키게 되었다. 그리고 ‘magazine’의 한 의미가 ‘탄창’이므로 ‘장마’에 ‘탄창’이라는 정의도 부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정의는 곧 널리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이런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magazine’이라는 단어에는 ‘탄창’ 외에 몇 가지 의미가 더 있고, 사실 이 단어의 가장 널리 통용되는 의미는 ‘잡지’인데, 왜 하필이면 ‘탄창’이라는 뜻이 ‘장마’와 결합된 것일까? 내가 생각하기에 [복수 (復讐) = revenge]


이 곳이 이 문서에서 완성되지 않은 첫번째 부분이다. JBFirefly는 “내가 생각하기에”라는 말 다음에 자기가 생각하는 이유를 상술하지 않고 그냥 “[복수 . . .”라고만 적어놓고 있다. 물론 여기에서 ‘복수’는 그가 생각하는 내용의 핵심이 되는 개념일 것이다. 하지만 ‘탄창’이 ‘장마’의 뜻이 된 것과 ‘복수’ 사이에 구체적으로 어떤 연결 고리가 있을 수 있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 아무튼 JBFirefly의 기술은 계속된다.


(4)  어떤 사람을 배제하기 때문에 그에게 행하는 친절 


‘장마’의 원래 뜻에 포함된 ‘제외’라는 개념은 어떤 사람을 긍정적인 평가 대상으로부터 ‘배제’하는 것과도 연결되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어쩌면 가리는 기능도 있는 ‘휘장’을 뜻하는 ‘장(帳)’이라는 글자 때문에) ‘장마’는 이러한 배제가 암시되는 친절을 뜻하게 되었다. 이런 아이러니한 친절을 다루는 우리 속담이 바로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라고 할 수 있다. 미운 놈에게 미운 내색을 하면 이 놈이 기분 나쁘다고 빗나간 짓을 하는 등 탈이 날 수 있으므로 오히려 더 잘 해준다는 뜻이라고 이해된다. 때로 사람은 싫어하는 인간이 어리석은 짓을 할 때 이를 그만 두도록 직언하지 않고 이 인간이 이 어리석은 짓의 결과로 낭패에 빠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오히려 칭찬을 하기도 하는데 이것도 ‘장마’의 예가 될 수 있다.


(5)  소외된 자의 역설적 행복            


[cf. 예수의 팔복 (마태복음 5:1 ~ )]


여기에서 다시 JBFirefly는 제대로 된 설명 대신 나중에 쓸 설명의 단서만 남기고 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그가 적어놓은 단서로부터 의미 (5)가 무엇을 말하는지 쉽게 추론할 수 있다. ‘장마’는 먼저 정의 (3)에서처럼 ‘소외’와 연관되었고, 그 다음에 소외된 사람이 약하기 때문에 겪는 고통이 더 높은 차원의 행복을 열어줄 수 있다는 생각과 연결되었음을 알 수 있다.


(6)  술에 취했을 때 느끼는 슬픔       


[정의 (5). 그리고 마르멜라도프.]


JBFirefly는 정의 (6)에 대해서도 그 발생 과정을 기술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가 남긴 단서가 어떻게 이 정의와 연결되는지를 곧바로 추리하기가 어렵다. 분명한 것은 이 과정을 알려면 ‘마르멜라도프’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마르멜라도프’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에 나오는 주정뱅이 아저씨의 이름인 것까지는 안다. 이 아저씨와 정의 (5)는 어떻게 연관되어 정의 (6)을 낳는 것인가? 이 물음에 답하려면 <죄와 벌>을 읽어보아야 할 것이다. 아무튼 JBFirefly가 ‘장마’라는 단어에 대해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지구에 남기고 간 문서는 이처럼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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