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발을 끼는 날은 잠영을 한다. 나는 잠영을 좋아하기 때문에 강습 중에 그 순서가 가장 기다려진다. 양손을 포개어 앞을 향해 팔을 쭉 뻗고 수영장 바닥까지 잠수해서 자유형 발차기 또는 접영 발차기를 해서 갈 수 있는 거리만큼 간다. 숨을 참을 수 없는 한계점에서 물 위로 떠올라 자유형으로 숨을 채우며 끝까지 수영한다.
딱 한번 25미터 끝까지 가보았고 보통은 절반 조금 지나치면 숨이 모자라서 물 위로 올라오게 된다. 내 수영을 교정하고 싶지 않아서 영법에 관한 정보를 거의 찾아보지 않는데 잠영에 관한 영상은 좀 봤다. 좋아하니 욕심이 났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오래 참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혀 심장박동수를 낮춘다. 한계점에서 침을 한 번 삼켜 숨 참을 작은 공간을 확보한다. 왕도는 없고 그저 참는 것이었다.
지금 내가 사용하는 방법은 무서워하지 않는다.이다. 원한다면 언제든 물 위로 올라갈 수 있을 만큼 얕은 수심이다. 절대 익사하지 않는다.라고 애써 상기한다. 그러고도 온몸을 둘러싸는 나보다 커다란 물은 나를 압도한다. 물을 잊기 위해 눈앞에서 빠르게 지나치는 수영장 바닥 타일의 빗금을 유심히 본다. 발차기에 집중한다.
잠영할 때 좀 더 오래 참고 싶다면 앞을 보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쭉 뻗은 몸으로 아래 바닥만 보고 헤엄칠 때는 기도가 단단히 잠기는 느낌인데 고개를 들어 앞을 보면 기도가 조금 열리는 느낌이 든다. 시선이 앞을 보면 앞으로 참고 가야 할 거리가 멀고 막막하게 느껴져서 그 순간 턱 하고 숨이 막힌다.
한 번은 내 잠영이 앞사람보다 빨라서 수면 위로 자유형 하는 사람 아래로 몸이 겹친 적 있었다. 갑작스럽게 가까워지는 타인의 몸이 물속에서는 더욱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부딪힐까 봐 서서히 올라가려 하는데 숨이 막혀서 심장이 답답했다. 무서웠다. 그 후로 앞사람과 간격을 넓히느라 오랫동안 기다리고 출발했다. 부딪히는 것이 두려워서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앞을 보게 된다. 이미 앞사람은 멀어져서 내 앞으로는 수영장 물만 보인다. 더 이상 숨을 참을 수가 없다. 수면 위로 떠올라서 보면 절반 조금 지났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잠영한다면 좀 더 길게 잠영할 수 있을까. 그런 곳에서라면 굳이 잠영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물 위에 둥둥 떠서 천천히 발을 굴리며 바닥을 보다가 내가 원할 때 숨 쉬고 다시 바닥을 보아도 좋겠다. 레인 시작에서 끝까지 힘차게 갈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잠영이 좋은 이유는 가장 혼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수영이라서다. 하지만 함께 있기 때문에 혼자 있는 순간이 좋다. 만일 혼자서만 계속 있다면 그게 좋다고 느끼지도 못할 것이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과 다 함께 손을 맞잡고 파이팅을 외치며 수영 시간을 마무리하는 순간 역시 혼자 있는 순간만큼 기쁜 경험이다.
잠영할 때 마음속으로 노래를 불러도 오래 참을 수 있다고 한다. 시도해 봤는데 다음 가사를 떠올리느라 몸에 힘이 들어가서 금방 숨이 차올랐다. 지금은 눈앞으로 흐르는 타일을 노려보는 것이 나에게 가장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