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보이는 산꼭대기에는 여전히 눈이 쌓여 있다. 누군가 오늘 아침 저기까지 올라가서 신년의 해 뜨는 사진을 찍어 보냈다. 공원은 눈이 녹아 진흙투성이였다. 축축하고 미끄러운 길을 빠르게 달리는 사람들이 있었고 나는 뒷짐을 진 채 천천히 걸었다.
개들을 보았다. 엉덩이에 털이 풍성하게 난 흰 개, 유모차에 탄 작은 까만 개, 개 놀이터에 가만히 서서 핸드폰을 만지는 주인 옆을 서성이는 늙은 갈색 개. 동물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새해가 오기 전에 슈테파니 슈탈의 <내 안의 그림자 아이>를 읽었다. 책에는 연약한 자아를 인식하기 위한 몇 가지 예제가 있었다. 혼자 그것들을 해보려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누군가 있으면 좋을 텐데, 과거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기까지 안전장치가 되어 줄 인도자가 있으면 좋을 텐데.
인터넷 창에 <그림자 아이>, <집단 상담> 따위를 검색해 보았다. 그림자 아이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단체의 리더는 목사였다. 거기서 교육비를 내고 교육을 받으면 그림자 아이 치료를 할 수 있는 자격증을 주고…. 누구라도 좋으니 믿고 의지할 정도의 상태는 아니다. 인터넷 창을 금방 닫았다.
과거에 들었던 말, 스스로에 대한 판단, 그에 대한 감정을 써 보았다.
‘나는 방해되는 존재야’
‘나는 필요 없는 존재야 ‘
‘나는 아파도 참아야 해’
어린 나의 생각은 나이 든 나조차 외롭고 슬프게 만든다.
나는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평생 애썼다. 나는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내 마음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려 노력했다. 나는 아픈 것을 오랫동안 참는 바람에 크게 아팠다. 올해는 방해되고 필요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 위해 이상하게 구는 것은 좀 그만두고 싶다.
돌아오는 길에 밟아서 뭉그러진 개똥들을 보았다. 1월 1일이라고 모든 것이 사라지고 아름답고 깨끗하게 새로울 수는 없다. 12월 31일에 개 똥구멍을 막을 수도 없는 일이다. 개똥은 누가 밟았을까. 눈 속에 파묻혀 밟았는지조차 몰랐을 수도 있지. 아무런 쓸모도 없고 밟으면 기분이 나빠지는 개똥. 그리고 그걸 싸재낀 존재만으로도 사랑스러운 귀엽고 착한 개들.
편의점에서 바나나 우유를 하나 사고 택배를 찾으며 점원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했다. 그 사람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더니 내 뒤통수에 대고 큰 목소리로 “안녕히 가세요. 또 오세요.” 했다. 나를 위해서 인사했는데 그 사람도 우연히 기뻐 보이는 것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