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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만화가 Nov 11. 2024

[단편소설] 사랑을 위한 달리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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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렇게 잠시 말없이 시간을 보낸다. 도나 마르티노는 애플민트 향이 나는 전자담배를 피운다. 나는 도나 마르티노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한다. 다른 건 아무것도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는다. 이대로 우리가 구조되지 못해도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취업 같은 건 이제 고민 축에도 끼지 못한다. 내일 아침에 있을 달리기조차도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오로지 도나 마르티노가 내 눈을  피하지 않고 바라봐 주며, 다시 입을 맞추어 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도나 마르티노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며 이탈리아어로 욕을 내뱉는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나는 그게 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안해. 갑자기 그 침팬지 새끼 생각이 나서.”


나는 이해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보이려고 노력하며 팔을 뻗어 손바닥으로 그녀의 어깨를 감싼다.


“그럴 때는 씨발이라고 말하세요. 씨이 바아알.”


“씨이 바아아알.”


도나 마르티노가 내 말을 따라 한다. 그리고 뜻을 묻는다. 나는 아주 아주 안 좋은 한국말이라고 대답한다


“그 침팬지 같은 놈들한테 어울리는 말이에요.”


그녀가 웃음을 터뜨리며 상반신을 나를 향해 돌린다. 나는 또 정신이 아득해진다.


도나 마르티노는 그 침팬지 새끼가 링컨 메모리얼 광장에서 버락 오바마와 악수를 할 때부터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말한다.


“마침 나는 그때 휴가를 받아 시칠리아로 돌아가 있었어.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소파에 앉아서 TV를 봤지. 할아버지는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고 했어. 침팬지가 사람이랑 악수를 하다니!  게다가 이름이 ‘이브’가 뭐람. 누가 봐도 수컷임에 분명한… 두툼한 알주머니를 달고 있으면서.”


남편이 하는 말이라면 뭐든지 토를 달고 보던 도나의 할머니는 ‘저 침팬지가 당신 같은 멍청한 사람보다는 100배는 똑똑하다’며 남편에게 시비를 걸었다. 사소한 말다툼은 싸움으로 이어졌고, 도나는 그날 휴가를 취소하고 다시 미국행 배를 탔다.


도나는 내게도 그 영상을 봤는지 묻는다. 나는 생중계는 보지 못했고, 나중에 다큐멘터리에서 영상 클립을 봤다고 대답한다.


“다큐멘터리?”


“네. KBS… 그러니까 한국의 BBC 같은 곳에서 만든 이브에 대한 특집 프로그램이었어요.”


 “그러면 그것도 형편없었겠네.”


나는 다큐멘터리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떠올린다. 미학적으로는 형편없었지만, 몇몇 장면들은 충격적이라는 상투적인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신선했다. 특히 이브가 화면을 똑바로 응시하며 어눌한 교포 발음으로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인간, 그리고 침팬지 여러분’이라고 말하는 모습은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네. 정말 형편없었어요.”


내가 동의하자 도나 마르티노가 활짝 미소를 짓는다. 그녀의 치아는 희고 고르다. 담배를 많이 피우는데도 어떻게 그렇게 이가 하얗게 반짝일 수 있는지 신기하다. 그리고 그녀의 날숨에서는 민트 향이 난다.


그녀는 전자 담배를 바닥으로 집어던지고 다시 눕는다. 그리고 이불 한쪽을 열어젖히고는 내게 안으로 들어오라고 말한다. 나는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잽싸게 그녀의 옆에 눕는다.


이제 그녀는 천장을 보고 있지 않다. 옆으로 누워 나를 마주 보아준다. 그녀의 눈동자 색은 파란색과 초록색 그 중간 어디쯤에 있다.


“혹성탈출이 인간들을 병들게 했어.”


그녀가 말한다. 도나 마르티노는 모든 곳이 아름답다. 목소리부터 귓불에 난 솜털까지. 무엇보다도 그녀의 온도. 도나 마르티노의 몸은 서늘하지만, 손 끝은 깜짝 놀랄 정도로 뜨겁다. 그녀는 말을 반복한다.


“혹성탈출이 인간들을 병들게 했다니깐… 침팬지가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지지연설을 하다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녀의 가슴이 내 갈비뼈에 와서 닿는다. 시공간이 두 피부가 닿는 그 지점으로 빨려 들어간다. 나는 누워 있지만, 쓰러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봐. 내 말 듣고 있어?”


네, 네. 듣고 있어요. 하지만 나는 그녀의 가슴이 시공간의 블랙홀로 작용한 순간부터의 기억이 없다. 그녀가 짧게 한숨을 내뱉는다.


“다시 말할 테니깐 똑바로 들어.”


애초에 비행기 조종간을 침팬지에게 맡기는 것이 말이 되냐고, 그녀는 말한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잖아요.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녀의 말이라면 무슨 말이건 추앙하고 싶지만, 내가 듣고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고의로 반박을 한다.


“차라리 네가 하는 편이 나았을지도 몰라.”


빈 말이겠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나는 도나 마르티노에게 입을 맞춘다. 입이 맞닿은 채로 그녀가 웃음을 터뜨린다. 민트향이 입속으로 들어온다.


확률은 절댓값일 뿐, 부호를 갖지 않는 법이다. 기장과 부기장이 동시에 심장마비로 쓰러졌다는 안내 방송을 들었을 때, 김형태 교수는 ‘호오’라고 감탄을 터뜨리며 이 건 로또에 당첨되는 것보다 더 희박한 확률이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무슨 헛소리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옆에 누워 있는 도나 마르티노를 보면, 교수의 말이 맞는 부분도 있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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