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얼굴은 온갖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티셔츠와 목도리.
후추통과 그림엽서.
화장지와 커플용 머그컵 세트 - 다른 하나에는 피델 카스트로가 그려져 있다 - 에도 좌상단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나는 그의 얼굴을 처음 봤을 때부터 그가 마음에 들었다.
그의 이름이 ‘체 게바라’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이렇게 외쳤다.
“정말이지 얼굴과 딱 맞는 이름이군!”
그의 고향이 아르헨티나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렇게 외쳤다.
“정말이지 얼굴과 딱 어울리는 고향이군!”
‘체’가 스페인어로 ‘어이, 이봐, 친구’라는 뜻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너무 기뻐서 거의 혼절할 지경이었다.
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이길래 온갖 브랜드에서 얼굴을 가져다 쓰는 건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 것은 대학에 입학한 후였다.
우연한 기회에 체 게바라의 젊은 시절을 그린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보게 되었다.
내가 정말 되고 싶었던 종류의 인간이 화면 속에 있었다.
나는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졌고, 그래서 한 권의 책을 샀는데, 바로 장 코르미에가 쓰고 실천문학사에서 번역판을 출간한 [체 게바라 평전]이다.
[체 게바라 평전]은 붉은색 표지가 인상적인 엄청나게 두꺼운 책이다.
나는 언제나 그 책을 사람 많은 카페에 갖고 가서 읽었다.
내가 즐겨 보던 다른 책들과 달리, 분명 [체 게바라 평전]은 카페 테이블에 당당히 올려놓고 볼 수 있는 류의 책이었다.
‘이봐요들. 이 것 좀 보라고요. 나 이런 책 읽는 사람입니다. 잠깐 제가 화장실 다녀올 동안 가까이들 오셔서 제목 한 번씩들 보고 가세요.'
그런 느낌으로 책을 읽었는데, 그러다 보니 어쩌다가 정말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보게 되고 말았다.
책장을 덮으면서, 아쉽지만 나는 내가 결코 체 게바라 같은 사람이 될 수 없음을 알았다.
내가 체 게바라보다는 차라리 아라비아 망토개코원숭이와 닮은 점이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는, 말하자면 비행기용 8기통 엔진이 달린 할리 데이비슨 같은 사람이었다.
반면 나는 균형이 맞지 않는 보조바퀴가 달린 7세용 네발 자전거에 가까운 인간이다.
그는 스스로의 길을 생각하고, 불확실성의 안갯속으로 기꺼이 발을 집어넣는 사람이었다.
나는 주로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감탄사를 내뱉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그는 쿠바 혁명을 성공시킨 뒤에도 또 다른 혁명을 위해서 콩고와 볼리비아로 떠났다.
나 같았으면 플렌시오 바티스타가 자리에서 물러난 바로 그 순간부터 해변에서 모히또나 마시고 포카나 치며 여생을 보냈을 것이다.
그는 산골마을을 전전하며 힘든 게릴라전을 이어가면서도, 아바나로 가는 길을 열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한편 나는 어금니 사이에 낀 시금치 조각이 신경 쓰여서 대학 입학 면접을 망칠 뻔 한 사람이다.
심지어 나는 그처럼 구레나룻과 턱수염이 이어지지도 않는다.
물론, 나는 그를 20세기의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고 지칭한 어느 철학자의 견해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그는 산비탈을 따라 구르는 낙석 같은 사람이었고, 비유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주위 사람들의 심장을 향해 AK 소총을 거리낌 없이 갈기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첫 번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태어난 지 40만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한 인간이 이전의 존재들과 다른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정말이지 얼굴처럼 대단한 사람이군!”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감탄사를 내뱉는 것이 바로 나의 역할이다.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가죽끈으로 된 체 게바라 목걸이를 샀다.
종종 사람들이 목걸이에 그려진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남미 출신의 혁명가지요!”
그러면 어째서인지 나를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가끔씩 죽고 난 뒤에 저승에서 체 게바라를 만나러 가는 상상을 해본다.
그는 자신의 얼굴이 팝아트의 상징이 되어버린 일에 깊은 좌절감을 느끼고,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
똑 똑.
내가 문을 두드린다.
“누구요?”
체 게바라가 묻는다.
“안녕하세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막 올라온 사람인데요..”
내가 대답한다.
“무슨 용건이요?"
그가 다시 묻는다
.
“그냥 얼굴 한 번 보고 싶어서요.”
“뭐라고?”
“체 게바라 씨. 전 정말 선생님의 팬입니다. 대학생 때는 선생님 얼굴이 새겨진 목걸이를 하고 돌아다니기까지 했어요. 비록 회사에 들어간 후에는 상사가 눈치를 주는 바람에 빼버리고 말았지만 말이죠.”
나는 그 순간 체 게바라 씨가 스페인어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자신의 AK-47에 실탄을 장전시킨다고 해도 전혀 놀라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