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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만화가 Dec 03. 2024

치질 수술

인생의 가장 큰 위기를 꼽으라면 역시 치질 수술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세상은 찬란하게 빛나는 여러 가지 고난으로 가득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치질 수술은 언제나 자신의 지위를 단단하게 유지하고 있다.


나는 서울 지하철 2호선 사당역에 자기 이름을 집어넣은 한 항문외과에서 수술을 받았고, 3일 동안 입원했다.


당시 나는 갓 성인이 되었을 때였기 때문에, 개자추가 허벅지살을 도려내듯, 내 항문 근육을 도려내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2주일 동안 농활을 간다고 말해둔 뒤, 나 홀로 짐을 싸서 병원에 입원했다.


나는 2인실을 배정받았는데, 나와 함께 방을 썼던 이는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중국 항공사에서 기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남자였다.


그는 대한항공에서 일을 하다가, 가족들에게 좀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해 주기 위해 중국계 항공사로 자리를 옮겼다고 했다.


비행기 기장은 비행 중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보내야 하기 때문에 치질 수술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그가 말했다.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생기는, 일종의 훈장 같은 거죠.”


그는 이십 년이 넘는 직업 생활을 통해 선명한 커리어와 높은 봉급, 그리고 어여쁜 아내와 두 딸을 얻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치질에 걸렸다.


나는 똑같은 치질에 걸렸지만 (거기다 더 심했다), 그가 가진 것 중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런 자괴감을 느끼면서 수술실로 걸어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수술실에 들어가면 수술을 위한 각종 보조적인 조치들을 받는다.


그리고 옆으로 누워 몸을 동그랗게 만 뒤, 척추에 하반신 마취 주사를 맞게 된다.


그러면 바로 엉덩이와 다리가 뜨끈해지고, 이 십 년 넘는 인생 동안 짐덩이 같았던 몸뚱이가 비로소 진짜 짐덩이가 되어버린다.


마취가 잘 든 것이 확인이 되면, 간호사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이동용 침대에 엎드려 누운 뒤, 수술이 진행될 장소로 이동한다.


수술실에는 비틀스의 ‘블랙버드’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덕장에 널린 명태처럼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든 자세가 된 채로 도톰하게 올라온 치핵을 제거하는 시술을 받게 된다.


내 수술을 담당한 선생님은 마이클 키튼의 배트맨에 나온 펭귄맨을 연상시킬 정도로 아이라인이 진한 분이셨는데, 수술 내내 ‘음’, ‘어’, ‘어이쿠’ 같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자, 여기는 너무 바투 자르면 안 돼. 그러면 오히려 회복이 힘들어. 조금 남겨 두고 봉합해야 해.”


의사 선생님이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내가 바랬던 것은 오로지 단 하나,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있는 사람이 현장 실습을 나온 여자 의대생은 아니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수술은 이십 분이 채 되기 전에 끝났다.


“자, 이거예요. 하나, 둘, 셋, 넷. 총 네 개.”


의사 선생님은 랍스터 집에서 요리 전에 식재료를 보여주듯이, 수술 침대에 엎드려 있는 내 눈앞에 내 몸의 일부였던 것들을 들이밀며 구경시켜 주었다.


“와. 신선하네요.”


내가 말했다.


하하하. 의사 선생님이 웃었다.


나는 굵고 긴 거즈 뭉치를 엉덩이에 품은 채 입원실로 돌아왔다.


“무통 주사가 들어가고 있으니 ‘당분간’은 괜찮을 거예요. 혹시 너무 아프면 버튼을 누르세요.”


간호사 선생님이 내 손에 청각 검사기 같은 버튼을 쥐어주며 당부했다.


“어때요? 생각보다 괜찮죠?”


나보다 한 시간 일찍 수술을 받은 기장님이 말했다.


그리고 그는 그날 밤, 손에 들고 있는 버튼을 쉴 새 없이 누르게 된다.


3일간의 회복 과정은 각종 블로그와 유튜브에서 보았던 것과 대동소이하다.


마취가 풀리고, 소변을 눈다.


엉덩이에서 불기둥이 솟는다.


나는 버튼을 누르고, 간호사 선생님이 진통제를 놓아준다.


병원에서 나오는 밥은 놀랍도록 맛있지만, 화장실 가는 것이 두려운 나와 기장님은 양껏 먹는 것을 주저한다.


“안 먹으면 더 큰일 나요.”


간호사 선생님의 말에 우리는 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밥숟가락을 떴다.


시간이 흐른다.


나는 걱정했던 것보다 성공적인 첫 대변을 눴다. 만세.


수술 3일째가 되고, 퇴원 날이 된다.


나는 무통주사를 새 것으로 갈며 퇴원 준비를 한다.


기장님의 가족들이 병원을 방문한다.


통증은 있었지만, 유튜브와 함께 누구보다 즐거운 2박 3일을 보낸 기장님은, 가족들을 보자마자 울음을 떠뜨린다.


기장님의 둘째 딸이 아빠와 함께 눈물을 흘린다.


당시 나는 갓 스무 살을 넘긴 나이였고, 그들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홀로 의연하게 옷을 갈아입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기장님과 악수를 하며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당당한 모습으로 병원을 나섰다.


하지만 채 24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수술 부위가 터지게 되고, 하루 만에 같은 병실에 입원하게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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