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만화가 Dec 10. 2024

웃으면 안 되는 일

나는 라디오 DJ 들을 정말 존경한다.


그들은 아주 우스운 이야기를 하다가도, 심각하고 슬픈 사연이 나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목소리 톤을 낮춘다.


어쩌면 인간은 웃으면 안 되는 일과 웃어도 되는 일을 구분하는 본능을 타고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나는 다들 웃음을 터뜨릴 때 혼자 심각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모두들 시선을 떨어뜨릴 때 입꼬리를 올리기도 한다.


몇 년 전에, 동계 올림픽에 출전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어느 스웨덴 재벌이, 예정된 (그렇다, 예정된) 조모상 때문에 올림픽 출전을 포기한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예정된 조모상이라니!


나는 신문을 폐지함에 버리러 걸어가는 동안, 이 실없는 기사에 대한 농담을 열댓 개쯤은 생각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누군가의 죽음 위에 가볍게 말을 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원하지 않는 때에 누군가를 잃는 일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적절하지 못한 주제에 대한 농담은 재미도 없고, 웃음을 이끌어내지도 못한다.


누군가의 죽음과 불운. 갑작스러운 사고. 시력의 상실. 가까운 이의 배신. 건강의 악화. 그리고 자녀의 질병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렇다.


하지만 아주 때때로, 정말 강력한 웃음은 이런 경계를 훌쩍 뛰어넘어 버리곤 한다.


내 외할아버지는 아주 아주 아주 어렸을 때, 그러니까 한반도에서 일본말이 울려 퍼지던 시절에 청각을 잃었다.


어찌나 제대로 잃었는지 바로 옆에서 경운기가 지나가는 것도 못 알아챌 정도였다.


외할아버지는 그 사실이 부끄러워서 가족들에게 자신의 불행을 숨겼다.


어찌나 잘 숨기셨는지, 숨긴 채로 결혼도 하시고, 농사도 지으시고, 아들 딸도 낳으시고, 손자 손녀도 보셨다.


그 와중에 마을 이장도 하시고, 마을 어르신들과 장가계도 다녀오셨다.


뒤늦게서야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챈 자식들이 외할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시고 갔다.


다행히 딱 맞는 보청기가 있었다.


하지만 외할아버지는 보청기 끼는 것도 부끄럽게 생각하셨다.


보청기가 든 옥색 상자를 TV 밑 서랍장에 넣어 두시고, 옛날처럼 독순술로 사람들의 말을 읽었다.


자식들과 손주들이 보청기를 끼라고 하면, 안 들리는 척 (진짜 안 들리셨겠지만!) 마당으로 나가셔서 애꿎은 똥개들만 괴롭히셨다.


그러다 어느 날, 씨름 중계를 듣기 위해 오랜만에 보청기를 끼고 계시던 외할아버지가, 마당에 있는 강아지들이 짖는 소리를 들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람?"


외할아버지가 물었다.


TV를 보시던 외할머니는 콩자반을 뒤적거리던 젓가락을 내려두고, 어이없다는 눈길로 외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개소리 아닙니까."


외할머니의 대답에 외할아버지는 눈을 동그랗게 뜨셨다.


"이게 개소리라고?"


"예. 이게 개소리지요."


 "이게 개소리구나..."


외할아버지는 놀랍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인지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의 반응에 빵 터지셨다.


"이야. 팔십 년을 사시더니 인제야 개소리를 아셨나 봅니다. 하하. 이 양반 참."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계속 웃으셨다.


어찌나 크게 웃으셨던지 몸이 들썩거려서 밥상이 흔들릴 정도였다.


할아버지는 얼굴을 붉히시고는 마당으로 나가서 또 죄 없는 강아지들만 괴롭히셨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외할아버지는 보청기를 자랑스럽게 끼고 다니신다.


내 생각에 좋은 웃음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