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초에서 12월로 이어지는 시즌은 누가 뭐래도 노벨상의 계절이다.
나는 노벨상 시즌이 되면 월드컵이나 올림픽이 열리는 기간처럼 즐거워진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내가 모르는 어떤 일을 한 공로를 인정받는 것을 보는 것은 유쾌한 일이다.
언론에서는 언제나 한국인 수상자의 탄생 여부에 집중하지만, 나는 이런 식의 접근이 노벨상을 즐기는 적절한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벨상 시즌을 진정으로 즐기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땡, 노벨 물리학상이 발표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노벨상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수상자들의 사진과 이름을 구경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엄청나게 똑똑하게 생겼고, 동시에 한 명도 빠짐없이 엄청나게 읽기 힘든 스펠링으로 구성된 이름들을 가지고 있다.
노벨상 선정 위원회에서는 친절하게도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수상자들의 연구 업적을 한 줄, 혹은 두 줄로 요약해서 그들의 사진 밑에 실어 놓았다.
“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구만!”
이런 식으로 마음껏 감탄한 뒤에, 다음날의 대화를 위해서 중요한 키워드 두어 개 정도를 외워두면 완벽하다.
이렇게 한 페이지를 훑고 나면, 어쩐지 내가 세계 사회의 중요하고 양식 있는 구성원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기분이 좋아지게 된다.
한편 어떤 이들은 매해 신문에 실리는 노벨상 관련 기사들을 보면서 노벨상 수상의 꿈을 키우기도 한다.
나 역시 한 때는 노벨상에 진지하게 도전했었다.
처음 노벨상을 노렸을 때, 나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어린이 신문에서 ‘노벨 물리학상’이라는 단어를 처음 봤을 때, 나는 그게 파스퇴르 우유에서 주관하는 창작동요 대회 금상쯤 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래서 집에 와서 “저 나중에 노벨 물리학상 받으려고요.”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때 부모님이 지었던 안도감 가득한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아하. 그래서 내 아들이 이렇게 이상하게 행동했었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뒤로 내가 바보 같은 짓을 할 때마다, 내 어머니는 노벨 물리학상을 들먹였다.
나는 놀이터에 나가는 것을 무척 싫어했고, 학교가 끝나면 언제나 제일 먼저 집으로 돌아와 저녁시간이 될 때까지 소파에서 낮잠을 잤다.
“원래 과학 쪽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이 사교성은 좀 떨어지지요. 아인슈타인도 그랬잖아요.”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언제나 또래 아이들보다 키가 작았고, 몸집도 왜소했다.
“우리 아이는 신체보다 두뇌 쪽이 더 발달이 빠른 것 같아요. 나중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다나 뭐라나. 호호호.” 어머니가 말했다.
그렇게 ‘노벨 물리학상’은 내가 ‘물리학’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게 되기 전까지 내 인생의 유용한 변명거리가 되어주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나는 또 한 번 진지하게 노벨상을 정조준했다.
과학이나 경제학 쪽은 지나치게 어려워 보였고, 평화상은 이미 뺏겼기 때문에, 이번에는 문학상을 노리기로 했다.
나는 문학상을 받는다면, 역시 소설보다는 시로 받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소설로 노벨 문학상을 받는 것은 엄청나게 위험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당신이 위대한 소설을 써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고 가정해 보라.
어느 날 길을 걷다 갑자기 떡볶이가 먹고 싶어진 당신은 근처 분식집으로 들어간다.
주문한 떡튀순을 기다리는 사이, 옆에서 라면을 먹고 있던 여고생들이 당신을 알아보고 수군대기 시작한다.
그중에서 좀 똑똑해 보이는 여학생 한 명이, 갑자기 당신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이에요. 늦었지만 노벨상 수상도 축하드려요. 저도 논술학원에서 읽으라고 해서 선생님 소설을 두 어 편 읽어 봤어요. 하지만 선생님, 솔직히 말하자면 선생님 소설은 제 취향이 아니에요. 뭐랄까. 너무 현학적이랄까? 공감이 잘 안 가더군요. 지나치게 노벨상을 의식하신 것처럼 보여요. 제 주위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해요. 뭐, 기분 나쁘시라고 하는 말은 아니에요. 그냥 그렇다고요. 떡볶이 맛있게 드세요.”
아이고, 생각만 해도 공포스럽다.
하지만 시인은 이런 일을 당할 걱정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를 소설보다 훨씬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고, 훨씬 거리감 있게 대한다.
내 친구들은 소설이 이해하기 어려우면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 게 뭐야. 재미 하나도 없잖아!”
반면 시가 이해하기 어려우면, 이렇게 이야기한다.
“음. 꽤 난해하군. 하지만 묘한 매력이 있어.”
그러니까 시로 노벨상을 받으면, 상대적으로 근거 있는 비판과 근거 없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대학교에 들어오자마자 ‘일반화학 실험’이라는 과목을 들었는데, 그때 이런 시를 썼다.
제목 : 아세톤
아세톤을 써보니 이제야 알겠네.
물이 얼마나 끈적거리는 액체인지를.
그 보다 더 끈적거리는 것은
그대를 향한 내 마음
장담하는데, 호메로스 형님도 이런 시는 쓰지 못할 것이다.
나는 본격적으로 노벨 문학상을 정조준하고자 했고, 그 첫걸음으로 평소에 정말 좋아했던 미모의 여작가에게 팬레터를 보냈다.
그녀가 답장으로 나의 앞길을 격려해 준다면, 그 기억을 동력 삼아 잽싸게 노벨상 수상 고지를 훔칠 생각이었다.
그리고 수상 연설의 첫 문장에서, 나에게 영감을 준 그녀의 글에 대해 이야기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녀는 답장해주지 않았다.
나는 크게 실망했고, 결국 노벨상 수상의 꿈을 접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나라는 한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잃게 되었고, 그 미모의 여작가는 스톡홀름의 겨울밤, 스웨덴 국왕 부부 앞에서 자신의 이름이 언급될 기회를 놓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