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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만화가 Nov 30. 2024

[단편소설] 400년 후의 너에게

** 이전에 업로드 하였던 글입니다. 아카이빙 용으로 재업로드 합니다**


오후 두 시쯤 일이 끝나고 나면 자유 시간이다. 특별한 일정이 없다면, 나는 곧장 앞치마를 벗어 세탁물 수거함에 넣어둔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 방이 있는 3층으로 올라온다. 그리고 그곳에서 남은 시간을 보낸다. 일기를 쓰거나 가볍게 사이클을 탈 때도 있지만, 주로 책을 읽는다. 만화책이나 옛날 잡지를 볼 때도 있다. 저녁은 잘 먹지 않는다.


종종 K가 찾아온다. 그는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특히 팽창기 정치사가 그의 전공이다. 팽창기는 20세기 중반부터 21세기말 까지를 지칭하는 그들의 용어다.


"저는 언제나 우주선 속에서 무중력을 이겨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라이카를 묘사하면서 수업을 시작해요."


역사 이야기를 할 때 K는 언제나 두 눈을 반짝인다. 나는 그에게 ‘20세기 오타쿠’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는데, K는 그 별명을 썩 마음에 들어 했다. 오타쿠라는 말은 이미 사어 (死語)가 된 지 오래였고, 그래서인지 고풍스러운 맛을 풍기는 단어가 되어 버린 모양이었다.


K가 방문하는 날은 저녁을 먹어야 한다. K는 항상 두 손 가득 먹을 것을 들고 온다. 익숙한 솜씨로 냉장고에 음식을 채워 두고는, 빵과 수프, 고기 같은 것들을 식탁 위에 보기 좋게 깔아 놓는다. 그리고 매번 재배지가 다른 와인을 가지고 온다.


나는 태생적으로 술을 못하지만, K의 성의를 보아서 한 잔은 마시는 편이다. K는 자신이 가져온 와인이 20세기의 유명 와인들에 비해 어떤지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나는 와인을 거의 마셔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궁금증을 풀어주지 못한다.


K는 파티와 연회를 좋아한다. 우리는 음식을 먹고 (주로 K가 먹는다), 와인을 마시며 (주로 K가 마신다)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는 자정이 될 때까지 이어질 때도 있다. 모임이 끝나는 순간은 자연스럽게 결정된다. ‘포만감’ 있게 대화가 진행되었다는 느낌이 들면, K는 짧은 작별 인사를 건네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면 나도 청소용 로봇에게 뒷정리를 부탁해 두고는, 침대에 바로 몸을 누인다. 대개는 바로 잠이 든다. 나는 곧장 선희의 꿈을 꾼다.


꿈은 매번 동일하게 시작해서, 동일하게 끝난다.


나는 벚꽃이 피는 계절의 늦은 밤, [케틀 렌치] 앞에 서서, 오지 않을지도 모를 선희를 기다린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술집들도 하나둘씩 문을 닫을 정도로 늦은 시간이다. 아직 다 자라지 못한 벚나무에서, 설익은 벚꽃 잎이 흐드러지며 떨어진다. 나는 고개를 들어 가로등 불을 배경으로 떨어지는 꽃잎을 감상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초조해진다. 점점 귓가에서 울리는 소음이 잦아들고, 눈이 침침 해진다. 적막하다.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 마을처럼. 색이 바랜다. 마치 모래에 파묻힌 도시처럼. 나는 소리와 색이 사라진 골목에 서서, 그녀를 기다린다.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선희다.


그 순간 거리의 모든 것들이 소리와 색을 되찾는다. 나는 천천히 시선을 이동시킨다. 벚꽃 잎을 지나, 가로등을 지나, 작은 술집들이 조밀하게 모여있는 대학가의 위태로운 골목길을 지나, 큰길에서 골목으로 꺾어 들어오는 모퉁이에 서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선희를 본다.


나는 눈물을 닦기 위해 올린 손을 그대로 머리 위로 치켜들어 그녀를 향해 흔든다.


선희는 나를 향해 뛰어온다. 아니 걸어온다. 나는 그녀의 걸음걸이와, 흔들리는 팔과, 쌀쌀한 봄바람을 막기 위해 목에 두른 스카프와, 머리를 감싸고 있는 검은색 야구모자를 눈에 담는다. 그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짧게만 느껴진다. 잠깐이지만, 그녀가 영원히 내게 닿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제 때 닦아내지 못한 눈물이 눈두덩이에 고인다. 나는 눈물을 도로 눈으로 삼키기 위해 고개를 든다. 그 순간,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케틀렌치'의 네온사인 간판이 내 머리 위로 떨어진다.


K는 선희의 아주 먼 후손이다. 놀랍게도 그는 선희가 썼던 물건들을 갖고 있다. 처음 그와 따로 만났을 때, 그는 마치 고고학자가 고생물 알 화석을 만지는 것 같은 정교하고 세심한 손놀림으로 선희의 노트북을 내 앞에 올려 두었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다. 물론 하나같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물건들이고, 대부분은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것들이) 내가 사고를 당한 후에 선희가 사용한 것들이다. 내게 익숙한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오래전에 잃어버린 일기장을 되찾은 사람 마냥 노트북과 선희의 사인이 들어간 책을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 뒤로 K는 틈만 나면 나를 찾아온다. 우리는 일종의 공생관계를 형성했다. 나는 K에게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의 생활상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상아탑의 세례를 받고 있는 K에게 사료는 차고 넘쳤지만, (인류는 진공관의 발명 이후, 손이 미치는 모든 것들을 게걸스럽게 디지털 정보로 변환시켰다) 나의 증언은 그의 연구에 생동감을 더해주었다. 한편 K는 나의 개인 사서이자 교습 선생으로, 내가 4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무사히 사회에 안착하여, 남은 삶을 견뎌낼 수 있도록 돕는다.


어떤 연유로 내가 다시 의식을 되찾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아무도 알지 못한다. 나는 초저온으로 설정된 부동액에 보관되어 있었다. 평소대로 수명 업무를 진행하던 직원이, 내 바이탈 신호의 변화를 감지했다. 나는 그들이 제대로 대응할 틈도 없이 깨어났다. 다시 의식을 차렸을 때 희미하게 느껴지던 웅성거림이 지금도 기억난다.


나는 긴 꿈과 짧은 깸을 반복했다. 나는 꿈을 꿀 때 더 자세히 보고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무한하게 반복되는 선희를 보았다. 그녀가 흔드는 손. 다가오는 발걸음. 꿈속에서 나는 다시 꿈을 꾸었다. 그녀와의 첫 만남.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기 위해 앉아 있던 선희와, 그녀에게 커피잔을 내어주는 나의 떨리는 오른손. 몇 개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 위에 포개어졌던 그녀의 손과 입술.


“정신이 드시나요? 제 목소리가 들리실까요?”


그에 비해 현실에서 내 귀를 자극했던 것은 탁하고 거친 목소리였다. 온전치 못한 망막 위로 이리저리 불빛들이 날아다녔다. 나는 다시 잠들고 싶었다. 아니, 선희를 보고 싶었다. 선희를 보기 위해서는 깨지 않는 꿈을 꾸어야 했지만, 외부의 자극들이 끝없이 나를 땅 위로 끌어내렸다.


회복은 아주 긴 시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그 무렵 나는 이미 세계적인 슈퍼스타가 되어 있었다! 전 세계가 나를 주목했다. 400년 만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인간. 나는 말 그대로 살아있는 화석이자, 구시대의 현신이었다. 그들은 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100년이 4번 지나갈 동안 개벽한 세상을 보고 놀라는 것을 보고 싶어 했다. 물론, 당시 나는 지난한 회복 과정 (심지어 내가 원하지도 않았던) 속에서 다시 잠들 방법 만을 모색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사실들을 알 수는 없었다.


의식이 돌아온 후 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두 눈을 뜰 수 있었다. 직접 소변을 볼 수 있게 되기까지 1년이 걸렸다. 이미 노화와 죽음이 정복된 세상에서도, 책장 사이에 끼인 나뭇잎처럼 앙상하게 말라붙은 신체에 수분을 돌게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의식이 명확해져 갔다. 나는 이제 선희를 만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내가 400년 동안 보았던 것은 뇌 속에 한 올 남아있던 기억의 잔향이었고, 그림자였다. 내가 아는 모든 것들이 완벽히 사라진 것이다. 먼지 하나까지도.


손가락을 움직여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된 후부터는, 주위를 맴도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보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아주 긴 시간이 지났다’는 것 밖에 없었다. 그 사실만큼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사람들의 외모와 표정, 심지어 걸음걸이에서도 이질감을 느꼈다. 나는 그들의 친절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에 휩싸이곤 했다. 그나마 그들 모두 흰 가운을 입고 있다는 사실이, 내가 알고 있던 세계의 연장선에서 내가 눈을 뜬 것임을 짐작케 해 주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모두들 흠칫 놀라곤 했다. 그럼에도 나는 내 주위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 언제고, 여기가 어디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들은 내게 미소를 보냈고, 내가 불편한 점을 말하면 바로 필요한 조치를 취해주었지만, 내 질문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기구에 의지하지 않고 걸음을 뗄 수 있게 될 때쯤, 나는 나에게 배정된 회복실과 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방으로 안내되었다. 복도 쪽에서 볼 때는 작은 방처럼 보였는데, 생각보다 내부가 넓고 높았다. 불투명 유리로 된 자동문을 통과하자, 잔디를 연상시키는 초록색 카펫이 깔린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문이 있는 쪽을 제외한 나머지 세 면은 모두 거대한 유리창으로 덮여 있었는데, 그 너머로 수풀의 윗부분이 보였다. 그리고 방 중앙에 일인용 소파 8개가 완벽한 원형으로 배열되어 있었다. 나는 창 밖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사람들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몇 분 뒤, 정확히 일곱 명의 사람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흰 가운을 걸치고 있지 않았다. 헤어 스타일도 어색하지 않았다. 심지어 두 명은 2023년에 유행했던 박스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다들 갓 스무 살이 넘은 정도로 보였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앞으로 모든 질문은 저희에게 해주세요.”


리더로 보이는 금발의 여성이 내게 악수를 건네며 말했다. 이질적인 느낌은 하나도 없는 유창한 20세기 한국어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고, 가볍게 흔들었다. 의식을 회복한 후 처음으로 해보는 악수였다. 상대방의 손과 팔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날 진행 된 첫 상담 세션에서, 나는 내가 의식을 잃은 지 400년 넘는 시간이 흘렀음을 알았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나는, 나에게 아이작 뉴턴보다도 더 먼 과거의 인물인 것이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사실이었지만, 실제 숫자를 직접 듣게 되니 몸이 땅 밑으로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7인의 상담가 중 몇 명이 나를 부축하여 회복실로 데려다주었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을 때쯤에는 베갯잇이 흠뻑 젖어있었다.


매일 진행되는 지루한 재활과 별개로, 일주일에 한 번씩 일곱 명의 상담가들과의 세션이 진행되었다. 나에게 악수를 건네었던 금발의 여성을 포함한 몇 명은 정신과 전문의였는데, 그들이 대화의 방향과 속도를 조절했다. 나머지는 대화를 보조할 수 있게 특별히 선발된 전문가들이었다. (K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상담은 대부분 나의 질문과 그들의 대답으로 채워졌다. 일반적인 정신과 치료와 다른 점이라면, 나의 질문은 짧고 추상적이었으며 그들의 대답은 길고 구체적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으면, 그들은 내게 2023년부터 시작된 400년 간의 ‘근대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세션은 절대 1시간을 넘기지는 않았다.


네 번 정도 세션이 추가로 진행되었을 무렵, 나는 그동안 진행되는 이야기가 어떤 방향성을 갖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마치 거대한 기류에 휩쓸려 흩날리다가도 결국 자동차의 보닛 위에 안착하는 송진가루처럼, 이리저리 산발적으로 진행되는 나의 질문과 그들의 대답,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우는 역사 강의가 무언가를 맴돌고 있었다. 나는 그 ‘무언가’가 두려웠고, 그래서 그들에게 내가 느낀 위화감에 대해 직접적으로 물었다. 서로 빠르게 눈빛을 교환한 뒤, 리더인 제니 포울링 (내게 악수를 건넨 금발의 여성)이 긴장된 표정으로 말했다.


“200여 년 전, 몇몇 과학자들의 인상 깊은 연구와 행운의 도움으로, 인류는 죽음과 노화를 극복하게 되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또한 어느 정도 짐작했던 부분이었다. 상담이 진행되면서, 나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앳된 외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시선이 젊은이의 그것이 아님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들은 눈빛만 늙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50년 뒤, 세 주체의 대합의를 통해… 죽음이 법적으로 금지되었고요.”


이 부분에서는 이해에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죽음이 금지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일까? 나는 또다시 깊고 끈적한 늪 속으로 침전되는 기분이었다. 다시 한번, 그들이 나를 부축해 주었다. 그날도 밤새 잠들지 못했다. 나는 선희를 400년 전의 세계, 그러니까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곳에 남겨두고 떠나왔다. 그리고 내 여행길은 말 그대로 ‘무한하게’ 확장되고 있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케틀렌치'에서 보냈던 그 6개월을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나는 무언가에서 멀어지는 중이었다.

그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 내가 6개월만 일찍 사고를 당했더라면, 좀 더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기 쉬웠을 것이라고.


이따금 술기운이 오르면, K는 내게 선희 씨를 제외하고는 그리운 것이 없는지 묻는다.


“글쎄요…”


나는 말 끝을 흐리며, 솔직히 터놓고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는 ‘척’을 한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다. 아니, 선희에 대한 생각이 너무 진해서, 다른 것들의 맛을 느낄 수가 없다.


나는 무엇을 그리워해야 할까?


내 고향 함병리의 사람들?

나는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경남 함병리에 있는 작은 연지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버려진 세단 안에 5만 원짜리 몇 장과 함께 놓여 있는 나를 낚시터를 경영하는 이장님이 발견해 주었다. 나는 그곳에서 자랐다. 낚시터 일을 돕기도 하고, 학교도 다니고, 운구를 하거나 상여를 지면서 자랐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모아둔 돈을 들고 서울로 도망쳤다.


짧았던 서울살이?

나는 그나마 월세가 저렴하다는 신림동 옥탑에 방을 얻었다. 화장실과 브라운관 TV가 딸려 있는 제법 번듯한 방이었다. 나는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며 월세를 메꿨다. 옥탑방의 오전을 채우던 버스 차고지의 매연. 술에 취해 흐느끼는 사람들의 울음소리. TV에서 끝없이 반복되던 최신 가요의 뮤직비디오. 라면. 또 라면. 그리고 다른 브랜드의 라면.


'케틀렌치'에서의 생활은 어떤가?

여기는 제법 그리워할 만한 것들이 있다. 요리에도, 서빙에도 재능이 없던 나를 꾸준히 써주었던 사장님. 덕분에 제법 사람 구실을 하며 식당의 잡무를 할 수 있었다. 벽에 붙어 있는 가짜 사슴과 족제비 박제들. 떡갈비 용 석쇠 위에 올려져 대접되던 스테이크. 처음 직접 내려서 마셔본 커피. 만약 선희와의 만남이 없었더라면, 나는 '케틀렌치'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했으리라. 그리고 K에게 그때 사장님의 추천으로 취미를 붙이게 된 오래된 B급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내가 매일 아침 반복적으로 마시고 있는 기묘한 맛의 영양제처럼 인상적인 기억일 뿐, 추억이라 할 수 없었다. 무한히 반복해서 살고 싶은 경험까지는 아니더라도, 무거운 찻잎이 가라앉듯이 몸에 가라앉아 있는 과거는 오로지 선희에 대한 기억뿐이었다.


죽음이 금지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처음 진행된 세션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는 감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유지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전했다. 그리고 내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더 이상의 치료도, 상담도 거부하겠다고 말했다. 그날 세션은 그것으로 종료되었다.


다음날 제니 포울링이 회복실을 방문했다. 막 아침 식사를 끝냈을 때쯤이었다.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침대에 앉고 그녀는 내가 식사용으로 사용하는 식탁에 걸터앉았다. 그녀는 아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외국어를 배우는 학생처럼 단어 하나하나를 천천히 내뱉었다.


“우리는 당신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어요.”


제니 포울링이 말했다.


“동시에 우리들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도 당신이 알아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고도로 발전되고 정교한 25세기의 세계가 놀랍도록 연약하다는 사실을 내게 설명했다. 그리고 내가 의식을 찾은 사건이 무기력한 삶을 사는 많은 이들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주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신에게 우리의 법을 강요할 수는 없다는 것이 윗선의 판단이에요.”


결국 내게는 1년의 유예기간이 주어졌다. 정확히 365일이 지난 후에, 나는 삶의 후반전을 계속할 지에 대한 판단을 내리게 될 터였다. 내가 결정을 바꿀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제니 포울링이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한 가지. 이 건 개인적으로 약속해 주세요. 유예기간 동안에는 저희의 제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해 보겠다고요. 염치없지만, 저희들의 노력에 대한 답례라고 생각해 주세요.”


이 말을 할 때 그녀는 어딘가 절박해 보이는 느낌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 K가 처음으로 회복실로 찾아왔다. 7명의 상담가 중 눈에 띄는 인상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가 문을 두드리고 홀로 방에 들어왔을 때, 나는 조금 당황했다.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그는 특유의 붙임성 있는 표정으로 내게 인사를 건네고는, 종이에 인쇄된 자신의 명함을 내 손에 쥐어 주었다.


“K입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그리고 나선희 씨의 8대손입니다.”


그리고는 본인이 알고 있는 선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가방에서 선희의 물품들을 꺼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야기는 결국 내가 울음을 터뜨리면서 끝나고 말았다…


그렇게 K와의 비정기적인 대담이 시작되었다.


고백하건대, 초기에는 그의 방문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내가 처한 상황을 고려해 봤을 때, 그가 순수한 교류의 목적으로 나를 찾아왔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K도 자신에게 암묵적으로 주워진 역할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나선희 교수님의 후손이 아니었다면,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는 없었겠죠.”


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그에게 기대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K는 내가 선희와 교류했던 짧은 기간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지만, 이는 오히려 과거 세계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 때문인 듯했다. 그는 먼 옛날의 영화와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표정으로 나와 선희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큰 감흥을 맛보는 것 같았다.


가령, 내가 선희를 처음 만났던 날에 대한 이야기가 그랬다.


당시 나는 [케틀 렌치]의 접시 닦이로 일하고 있었고, 선희는 가을 학기 개강을 맞아 아르바이트를 구하던 참이었다. 예정된 면접 시간보다 일찍 가게를 방문한 그녀에게, 나는 직접 내린 커피를 내어 주었다. 그녀는 볕이 잘 들어오는 창가 자리에 앉아, 유리로 만든 냅킨 홀더에 꽂혀있는 메뉴판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면접 볼 때 메뉴 외우는 건 안 나와요.”


내가 커피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녀는 귀를 붉히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중에 그녀는 그때 자신이 내게 ‘외우고 있던 것 아닌데요?’라고 쏘아붙였다고 말했는데, 나는 그 대답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녀의 두 눈과 흰 피부, 목덜미 뒤로 넘어가는 머리카락을 본 순간, 내 귀 역시 붉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 면접에서는 [케틀렌치]의 메뉴를 말해보라는 질문이 나왔다!)


K는 내가 선희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을 때를 단 한 장면으로 설명하는 것을 놀라워했다. 무한한 시간을 부여받은 이후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긴 호흡으로 관계를 음미하게 된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니까, 400년 후의 세계에는 일반적으로 한 순간에 반한다는 말이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한 순간이라는 말이 갖는 의미가 전혀 달라졌다는 것이 더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그래서 팽창기의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일종의 멀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나는 K에게 ‘‘팽창기’의 책과 영화들이 불로불사의 세계를 대부분 디스토피아적으로 그린 것 같다고 말했다. K는 자신도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예상은 빗나갔다고 했다.


“죽음이 금지되었다고, 모든 것이 의미를 상실하게 된 것은 아니에요. 학자들은 새로운 철학을 탐구해야 했고, 종교인들은 새로운 교리 해석을 제공해야 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예술이 사라지고 사람들의 마음이 무너져 내린 것은 아니에요.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드라마가 평론가들의 비판을 받는 현상도 여전히 그대로고요.”


그리고 재밌다는 듯 쿡쿡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인간이 더 이상 죽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 발표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머지않아 세계가 파멸할 것이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그 말을 믿었던 이들은 200년 넘게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고요.”


K는 지금의 세계와 400년 전의 세계 중 어느 한쪽을 지지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했다. 오로지 그 둘 간의 차이가, 그를 즐겁게 했다. 그 즐거움이 솔직하고 가벼워 보여서, 두 어 달 때쯤 지났을 때부터는 나도 긴장을 풀고 그의 방문을 즐기게 되었다.


내게 주방일을 다시 한번 해 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해 준 이도 K였다.


나는 내가 생각해도 놀랄 정도로 흔쾌히 K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오히려 왜 더 빨리 그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아쉬울 정도였다. 우스꽝스럽게 들릴 수도 있지만, 세제가 풀린 뜨거운 물로 치즈 라자냐를 굽는데 쓴 스테인리스 쟁반을 닦고 싶었다. 그 촉감이 그리웠다.


내가 의사를 전달 하자, 아주 빠른 속도로 나를 위한 주방이 회복시설 내에 마련되었다. 회복시설 안의 모든 조리 과정은 당연히 자동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조리와 급식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설거지거리 중 일부를 배정받았다. 그리고 그것들을 긴 시간에 걸쳐 닦고 말리는 일을 했다. 실상 필요가 없는 행위였기 때문에 ‘일’이라기보다는 ‘놀이’라고 하는 것이 맞았지만…


여러 측면에서 ‘주방 놀이’는 만족스러웠다. 우선 재활 치료 사이에 뜨는 시간을 빠르게 보낼 수 있었다. 설거지를 하는 때만큼은 생각을 쉴 수도 있었다. 그리고 제니 포울링을 비롯한 의료진들의 활짝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와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이들은 내가 ‘주방 놀이’를 시작한 것이, 삶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들은 마치 가출했다 돌아온 자식을 보는 것 같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오히려 내게 처음 제안을 건넨 K는 자신의 말이 불러일으킨 변화에는 별 흥미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내가 사고를 당한 후에 출간된 책과 만화책들을 가져다주었고, 내 감상을 물었다. 그리고 내 평이 그들의 일반적인 의견과 다르면 즐거워했다. 내가 ‘선희라면 이 책을 좋아했을 거야’라고 말했을 때는 어찌나 흥분했는지 와인을 병 째로 들고 들이키기까지 했다.


생활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 무렵, 나는 K에게 처음 선희가 내게 주었던 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제주도에서 열리는 학회 때문에 1주일 정도 아르바이트를 쉰다면서, 그녀는 병아리가 그려진 노란색 카드를 내게 건네주었다. 그 카드를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모른다. K에게 그때 일을 설명하려고 하니,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특히 편지의 첫 문장이 기억에 남아요. ‘나는 네가 나를 하루라도 잊을 거라고 생각지 않아.’라고 쓰여 있었어요. 그리고 그 말은 400년 동안 사실이 되었어요.”


K는 빵을 든 채 입으로 가져가던 손을 멈추더니, 그대로 굳은 채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갑자기 손에 들고 있던 음식을 접시 위에 내팽개치고는 황급히 자리를 뜨는 것이었다. 잠시 후 회복실로 다시 돌아온 그의 손에는 아주 오래된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뛰어왔는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창고에… 있었어요. 출판 연도가… 훨씬 전이라… 선희 교수님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어요…”


그의 손에는 카렌 블릭센의 [아웃 오브 아프리카]가 들려 있었다. 표시해 둔 페이지를 먼저 읽어보라는 말을 남기고, K는 본인의 거처로 돌아갔다.


나는 주변을 정리한 후 책을 집어 들어 파란색 테이프로 마킹된 페이지를 펼쳤다. 검은색 펜으로 줄이 그어진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저 줄이었지만, 나는 그 줄을 그은 이가 선희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백인이라면 편지에 예쁜 말을 써서 보내고 싶으면 이렇게 쓸 것이다. 〈나는 당신을 영원히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인은 이렇게 쓴다. 〈우리는 당신이 우리를 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다음날 나는 주방으로 출근하지 않았다. 재활 치료를 받으러 가지도 않았다. 의식을 되찾은 후 처음으로, 나는 밤을 새웠다. 그리고 선희의 줄, 동그라미, 메모가 채워진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반복해서 읽어 내려갔다.


나는 제니 포울링을 호출했다. 중요한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조금 이르지만, 내가 내려야 할 결정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잠깐 침묵을 지키던 그녀는,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저녁 무렵에 회복실로 들르겠다고 말했다.


남는 시간 동안, 나는 다시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책의 내용이 아닌, 책에 남겨진 선희의 흔적을 따라갔다. 그제야, 한 가지 사실이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어째서 나는 K를 보고 절망하지 않았던 것일까? 오히려 나는 K가 선희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안도감을 느꼈다. 나에게 K는 선희가 남긴 흔적이자, 메시지였다.


나는 책을 덮었다. 그리고 침대에 앉아,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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