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의 유기물을 먹고사는 조개는 미처 몸 밖으로 배출하지 못한 이물질이 몸속을 돌아다니다 조갯살을 파고 들면 그걸 공격으로 받아들인대요. 조개는 제 살을 파고드는 끔찍한 고통에도 이물질을 제거할 궁리는 않고 진주핵이라는 미끌미끌하고 맑은 물질로 이물질을 감싸고 감싸고 감싸고, 덮고 덮고 또 덮어…… 스스로를 보호한대요. 그걸 끝없이 반복하다 보면 마침내 한 알의 진주가.
좋아하는 시인 실비아 플라스의 시집 <에어리얼>의 서문은 그녀 딸이 썼어요. 그 글에서 딸은 가스오븐에 머리를 처박고 죽었을지언정 어머니가 죽음으로 소비되기보단 '삶'으로 축하받길 원한다고 말해요. 어머니인 실비아 플라스가 실존했고 자신의 능력을 다해 살았고 행복하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고 고통에 시달리기도 했고 황홀해하기도 했으며 자신과 남동생을 낳았다는 사실을 축하받길 바란다고. 그러면서 엄마인 실비아 플라스는 불안한 정서적 상태와 벼랑 끝 사이에서도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었음에도 <에어리얼>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며, 예술은 추락할 수 없는 거라고 다정하고도 단단한 목소리를 내요. 기념이 아닌 축하받는 삶…. 그 문장 앞에서 오래 그리고 골똘히 생각했어요. 축하받는 삶은 어떤 삶일까.
지난봄부터 붙들고 있던 소설에서 여자는 말해요.
'당신은 뒤늦은 내 청춘의 사랑이야'
더는 자식을 낳을 수도 없고 물려줄 유산도 없는 여자한테 찾아온 사랑에 그녀는남자 몸으로 파고들면서 몇 번이고 말해요. 당신은 뒤늦은 내 청춘의 사랑이야.그리고 단 한 문장을 기다려요. 중단 없는 사랑으로, 아주아주 오래. 나는 또, 골똘히 오래 생각했어요. 청춘은 뭐고, 사랑이 뭔지….
노옵따아란 파고, 쉼없는 사랑의 되밀림 속에서
… 나는 꽉 닫힌 채 흔들렸어요. 덜컹덜컹, 흔들리기만.
질겅질겅 씹히고 툭툭 채이고
푹푹 찔리고 싹둑싹둑 썰리고
꽉꽉 짓밟히고 풀풀 나리는
한 잎*의 조개로,
그이가 이 세상에서……
- 안나 아흐마또바
그이가 이 세상에서 사랑한 것이
세 가지 있습니다
저녁의 노래와 백색 공작과
빛바랜 미국 지도였지요
그이는 어린애의 울음과
딸기쨈을 곁들인 차와
여자의 히스테리는 싫어했습니다.
…… 그리고 나는 그의 아내였습니다.
덧
글 제목은 실비아 플라스의 시(詩) <레이디 라자로>에서 인용했어요. '*'은 오규원 시인의 시(詩) <한 잎의 여자>에서 인용했고, 사진은 지난여름이었나… 낯선 이들과 간 김중만 사진전에서.
은밀한알림.
2년 전 여름, 동선 작가님과 영화 이야기로 모험을 떠났던 저는 이 가을 끝자락 또, 모험을 떠나기로 했어요. 이 모험엔 우리 두 사람의 씀벗이자 여기 당신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폴폴' 작가님이 함께여서 얼마나 더 영화로울까, 콩닥콩닥여요. 시공간을 허물고 이제 막 떠난 이 길이 이미 충분히 영화로워서. 그렇지요, 오직 사랑하는 아끼는 두 분?
'앞선 이와 내가 본 것의 차이를 알아차리기 전에 다음 걸음이 옵니다. 시야에서 사라져도 같은 산이라 안심되는 기분. 그 기분으로 입구에 선 사람들의 이름을 부릅니다. 이름을 부르는 마음은 아마 이런 마음일 거예요.
아끼는 마음.
어디까지나 당신에게 닿으려고 시작된 마음.' (박화진, <아끼는 마음> '프롤로그' 중에서)
'우리 지금,
잘 하고 있는 거 맞나요?' (동선, <영화처럼 산다면야> '저자의 말' 중에서)
'이 모험이 정말 멋진 건 모험을 떠나는 이들의 조합. 나이와 종을 뛰어넘은 어울림. 진짜 모험가는 알아요. 동선 님 말처럼 모든 건 심장, 그러니까 마음에 있다는걸.'(이연, <영화처럼 산다면야> 중에서)